[풍경이 있는 시] 꽃
[풍경이 있는 시] 꽃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6.22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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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 꽃-여름, 혼합재료, 10x12 inch, 2014
김민재, 꽃-여름, 혼합재료, 10x12 inch, 2014


꽃이 피는데
꽃은 그냥 피는데
꽃이 핀다고 하더니,

꽃이 지는데
꽃은 그냥 지는데
꽃이 진다고 한다.

 

우리는 사물을 접하면 그것을 분석해서 언어화합니다. 존재가 이미 우리의 말과 글로 표현되고 개념화되었을 때 그 개별적 존재의 가치는 잃어버립니다. 가지가지의 다양한 꽃은 ‘꽃’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 뭉뚝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람을 그 자체로 보질 않고 사람을 언어로 작동시키면, 어떤 사람, 무슨 일을 하는 사람, 어떻게 생긴 사람, 그 사람의 나이와 고향, 졸업한 학교로 인식할 뿐, 자연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소멸됩니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우열과 비교, 차이만 남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분별심分別心[나와 너,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따위를 헤아려서 판단하는 마음]을 극도로 경계했겠지요. 

꽃 피는 것의 자체, 꽃 지는 것 자체를 방심放心으로 바라볼 때 꽃의 전체-모양과 색깔과 향기, 흔들림, 변화, 떨어짐-를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꽃이 핀다’고 말하지 말고 ‘꽃이 진다’고 말하지도 말고, ‘그냥 피는 꽃’, ‘그냥 지는 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볼 수는 없을까요. 그래야 언어가 닿기 전의 싱싱한 시원始原의 꽃을 마음에 스며들게 할 수 있으니까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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