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 1월16일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 법안(Raise the Wage Ac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 1월16일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 법안(Raise the Wage Act)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약 5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은 24명의 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로드>는 미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를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각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알아봤다.

◇ ‘Raise the Wage Act’, 10년째 요지부동 최저임금 올려라

최저임금 인상은 국내에서도 첨예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슈지만,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지난 1월16일(현지시간) 오는 2024년까지 현행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두 배인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원 181명, 상원 31명이 공동 발의한 임금인상 법안(Raise the Wage Act)은 지난 3월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에서 찬성 28, 반대 20으로 통과된 뒤 하원 본회의에 상정돼 오는 7월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주별로 최저임금을 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주에는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등 5개 주는 주 법령을 통해 정해진 최저임금이 없어 연방 최저임금인 7.25달러가 적용된다. 조지아주와 와이오밍주는 연방 최저임금보다 낮은 5.15달러의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지만, 그 외의 다른 주들은 모두 연방 최저임금과 같거나 그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주 법령으로 정해두고 있다.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는 현재 환율로 따지면 한국 최저임금 8350원과 거의 동일한 금액이다. 다른 점은 한국은 최근 들어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인상하면서 현재 수준에 이르렀지만, 미국은 10여년 전 7.25달러로 인상된 후 계속 같은 수준을 유지해왔다는 것. 저임금 노동자 옹호단체인 ‘전미고용법프로젝트’(NELP)에 따르면,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연방 최저임금인 7.25달러의 현재 실제 가치는 약 6달러 정도다.

이 때문에 노동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이 제기됐고, 광범위한 요구가 민주당을 통해 법안으로 이어진 것. 2017년 기준 미국 노동자의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0.337로 OECD 36개 회원국 중 31위에 불과하다. 만약 법안대로 최저임금이 15달러까지 인상될 경우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0.697로 두 배 이상 상승하며, 순위 또한 5위까지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4월2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사진=조 바이든 전 부통령 트위터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4월29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데 찬성 입장을 밝혔다. 사진=조 바이든 전 부통령 트위터

◇ 민주당 대선 후보, 최저임금 인상 지지

‘Raise the Wage Act’가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법안인 만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주요 후보들이 법안 발의에 참여했거나, 법안에 대한 지지를 공식 표명한 상황. 

이중 '최저임금 15달러'에 가장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당내 경선 지지율 2위를 수성 중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샌더스 의원은 이미 지난 2016년 대선에서도 당시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15달러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샌더스 의원은 결국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지난 2016년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 초안에 “현행 최저임금은 사실상 ‘기아 임금’(starvation wage) 수준으로, ‘생활임금’(living wage) 수준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샌더스 의원은 최근에도 아마존, 월마트 등을 지목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대기업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마존 최고경영자의 성을 따서 ‘베이조스 저지 법안’이라고 이름 붙인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 법안은 500명 이상 고용 기업이 15달러 미만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들이 정부로부터 주거·식비 등을 지원받으면 수혜금액 전액을 고용주에게서 환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올리며 계속된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했다.

지지율 3위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Raise the Wage Act’의 강력한 지지자 중 한 명으로, 이미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한 상원의원 명단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 내에서 가장 왼쪽에 서있다는 평가를 받은 워런 의원은 지난 1월 아이오와주에서 행한 연설에서 “내가 어렸을 때는 최저임금으로 3인 가구를 부양할 수 있었다. 오늘날 최저임금은 엄마와 아기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내 지지율 1위이자 진성 민주당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어떨까? 오바마 전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며 오바와 전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파로 분류됐던 바이든 전 부통령 또한 최근 ‘좌클릭’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최저임금 인상안을 공식 지지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4월29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기업은 노동자로부터 마지막 한 푼까지 짜내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먹고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최저임금 15달러를 법제화할 시간이 이미 많이 지났다”며 “이 나라는 월스트리트 은행가들과 기업인들, 헤지펀드들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위대한 미국 중산층에 의해 세워졌다. 그것이 미국의 역사이며, 우리는 함께 미국의 뼈대를 바로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지지층을 흡수하면서도 자신만의 차별화된 공약을 내세워야 하는 바이든 전 부통령은 최저임금 15달러 인상 지지를 통해 자신이 오바마의 그림자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에 대한 지지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오락가락’ 트럼프, 임금인상 지지 여부 두고 저울질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이처럼 ‘Raise the Wage Act’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확실시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어떨까? 의외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뚜렷한 반대 입장을 취하는 대신, 지지와 반대를 오가며 저울질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5년 트럼프 대통령은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인상하겠다는 뉴욕주의 결정에 “지나치게 높다”며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해 말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며 15달러 인상안을 지지한다고 말해 자신의 이전 발언을 뒤집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연방 최저임금을 10달러까지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공약(15달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최저임금 인상 여부는 각 주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연방 최저임금 인상을 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경제성장을 통해 임금수준이 자연스럽게 상승되도록 유도하자는 것. 지난 2월 발표한 연두교서에서는 “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들의 임금은 지난 수십년의 기간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며 자신이 이끈 경기호황이 임금상승을 이끌었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이처럼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여 온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최저임금 15달러’가 이미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최근에는 좀 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스페인어 방송채널 ‘노티시아스 텔레문도’와의 인터뷰에서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지지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항상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주장이 맞부딪히는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지난 10년간 동결된 연방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미국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오는 2020년 대선에서 양당 후보들의 희비를 판가름할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최저임금 15달러를 전폭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들과 지지와 유보 사이에서 미묘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 중 어떤 후보에게 표심이 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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