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방자치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방자치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황 대표는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후 최대라고 합니다”라며 “지금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가 고통스럽습니다 ... 문재인 정권 포퓰리즘의 시작, 그 후 1년, 2년...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삶이, 우리의 꿈이 멀어져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해외이주가 증가하고 있다는 황 대표의 발언은 지난 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한국 떠나는 국민, 금융위기 후 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 해외 이주 신고자 수는 2200명. 2016년 455명에서 2년 만에 약 5배가 됐다”며 “2008년 이후 최대치이고, 네 자릿수 인원을 기록한 것도 9년 만에 처음이다. 자산가는 국내 정치·경제적 상황을, 중산층은 환경·교육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황 대표의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뉴스로드>는 외교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황 대표 주장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자료=외교부
해외이주 신고자 현황(1984~2018년, 현지이주 신고자는 제외) 자료=외교부

◇ 해외이주 5배 증가? ‘해외이주법 개정안’ 때문

우선 외교부의 해외이주통계를 살펴보면 황 대표의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문재인 정권 2년 만에 약 5배나 늘어나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주장 자체는 사실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이주 신고자수는 2200명으로 문 대통령 취임 전인 2016년 455명에 비해 약 4.8배 늘어났다.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2008년 2293명을 기록한 후 점차 감소 추세임을 고려할 때, 지난해 10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한 것도 맞다. 

하지만 해외이주 신고자수가 증가한 것을 정부의 실정, 또는 어려운 나라살림 탓으로 돌리는 것은 통계자료를 너무 단순하게 해석한 결과다. 우선 해외이주 신고 유형은 크게 결혼 등 가족관계를 기초로 한 ‘연고이주’와 그 외의 ‘무연고이주’로 나뉜다. 무연고이주는 또한 사업이주, 취업이주, 기타이주 등 3개 항목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지난 2016~2018년 해외이주 신고를 유형별로 분류하면 2016~2018년 가장 크게 늘어난 것은 기타이주(1448명)다. 한국에서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늘었다면 취업·사업이주가 늘었어야 하지만 사업이주는 2년간 불과 10명이 늘었고, 취업이주는 되려 46명 감소했다. 해외에 기반을 가진 사람들의 연고이주 신고는 333건 증가했지만 기타이주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2016, 2018년 유형별 해외이주 신고 현황. 자료=외교부
2016, 2018년 유형별 해외이주 신고 현황. 자료=외교부

그렇다면 기타이주 신고가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뭘까? 이는 2017년 12월21일부터 시행된 해외이주법 개정안으로 거주여권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국외 영주권자나 장기 체류허가를 받은 외국 이주자에게 ‘거주여권’을 발급해 신분을 증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재외국민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되면서 거주여권의 필요성이 사라지자 폐지가 결정된 것. 외교부는 이미 황교안 대표가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2014년 이러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해외이주 사실을 증빙하는데 사용된 거주여권이 사라지게 됐고고, 이를 해외이주신고를 통해 대체하도록 하면서 영주권을 취득한 현지이주자들의 신고가 크게 늘었다는 것. 외교부에 따르면 2018년 기타이주 신고자 1461명 중 국내에서 해외로 이주한 독립이주자는 겨우 6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395명은 개정안 시행으로 인해 뒤늦게 신고한 기존 영주권자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과 2018년 신고자수 차이(1745명)의 80%가 해외이주법 개정안이라는 변수로 설명되는 셈이다. 

만약 지난해 기타이주 신고자수 중 독립이주를 제외한 1395명이 통계에서 빠질 경우, 2018년 해외이주 신고자수는 805명으로 오히려 2017년(825명)보다 줄어들게 된다. 2016년에 비하면 두 배나 늘어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수치로 보면 약 350명밖에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그다지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다. 또한 1980년대 매년 3만건 이상의 해외이주 신고가 접수됐음을 감안하면, 805명이라는 수치를 “해외이주가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보기도 어렵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이주가 5배 증가했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은 2017년말 해외이주법 개정안 시행을 고려하지 못해 벌어진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문재인 정부 들어 해외이주가 5배 증가했다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주장은 2017년말 해외이주법 개정안 시행을 고려하지 못해 벌어진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 박주민, “해외이주법 개정안, 황교안 국무총리시절 국회 통과”

결국 황 대표의 발언은 통계자료의 질적인 측면을 파악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을 인용하면서 벌어진 실수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8일 “황 대표가 조금만 사실관계를 확인해도 금방 알 수 있음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을 주장했다”며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주장하는 일들이 반복되니 저희도 지적하는 게 지친다”고 꼬집었다. 

박 최고위원은 이어 “해외이주법 개정안은 황 대표가 국무총리 시절인 2016년 6월에 정부입법으로 발의돼 그해 국회를 통과한 법"이라며 "당연히 황 대표도 이 법에 대해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황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해당 발언에 질문을 받자, 본질을 봐달라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황 대표가 해외이주신고 증가를 주장한 글은 삭제되지 않고 여전히 황 대표의 페이스북에 게시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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