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7월20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여성들이 모여 故 탓티황옥씨 추모 기자회견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0년 7월20일 오전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여성들이 모여 故 탓티황옥씨 추모 기자회견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2010년 7월 8일, 한 여성이 한국인 남편에게 칼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여성은 베트남 출신의 탓티황옥씨. 결혼대행업체 주선으로 한국인 남성 장모씨와 만나 호찌민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녀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입국한 지 8일 만에 참변을 당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스물이었다. 

사고가 벌어진 지 12일 뒤, 여성단체 회원들과 이주여성 30여명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모여 “나도 그 베트남 이주 여성일 수 있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우리들도 언제든지 폭력에 희생될 위험 속에서 그저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라며, 가정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이들을 보호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탓티황옥씨의 죽음에 분개하며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나도 그 베트남 이주 여성일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던 한 베트남 출신 여성은 7년 뒤인 2017년 6월2일, 잠든 상태에서 시아버지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사망 당시 31세로 한국국적까지 취득했던 이 여성은 결혼생활 10여년 만에 어린 아들의 눈앞에서 범행을 당했다.

최근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폭력 성향이 강한 개인의 일탈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이미 오랜 기간 논란이 됐던 문제이며, 이번 사건은 그러한 문제제기에도 우리 사회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수많은 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탓티황옥씨의 죽음 뒤에도, 매년 가정폭력에 의해 세상을 떠나는 이주여성들이 있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2010년~2017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은 총 19명으로 집계된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편이었으며, 동거남, 전남편, 시아버지 등에 의한 살인사건도 있었다. 

※국내 사망 이주여성 명단 (집계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레*** (2007년 3월 대구, 베트남) 임신한 몸으로 갇혀있던 아파트 9층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떨어져 사망
후*** (2007년 6월 충남 천안, 베트남) 입국 한 달만에 남편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해 갈비뼈 18대 부러져 사망
쩐*** (2008년 3월 경북 경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14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체** (2010년 3월 강원 춘천,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수면제 먹이고 방화하여 사망
탓**** (2010년 7월 부산, 베트남) 입국 일주일만에 조현병 환자인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강** (2010년 9월 전남 나주, 몽골) 가정폭력 피해 몽골여성 E씨를 보호하려다 E씨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황** (2011년 5월 경북 청도, 베트남) 출산한지 19일 만에 남편에 의해 칼로 난자당해 사망
팜*** (2012년 3월 강원 정선, 베트남) 조현병 남편에 의해 사망
리** (2012년 7월 서울 강동구, 중국) 평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
김** (2012년 7월 강원 철원, 중국) 남편의 폭력으로 4일 동안 뇌사 상태로 있다가 사망
응*** (2014년 1월 강원 홍천, 베트남) 남편이 목졸라 살해
전*** (2014년 1월 경남 양산, 베트남 ) 남편이 목졸라 살해
서** (2014년 7월 전남 곡성, 베트남) 남편이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
아*** (2014년 8월 충남 천안, 캄보디아)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살해
김** (2014년 11월 경기 수원, 중국) 동거남이 살해
응*** (2014년 11월 제주, 베트남) 한국 남성이 살해
누*** (2014년 12월 경북 청도, 베트남) 남편이 살해
이** (2015년 12월 경남 진주, 베트남) 이혼 후 자녀 면접권을 가진 전남편이 아이와 함께 살해
부*** (2017년 6월 서울, 베트남) 시아버지가 살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빗발치지만, 문제해결은 고사하고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우선 관련 통계 자체가 많지 않다. 여성가족부에서 3년마다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이 조사는 결혼이주여성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가족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서도 부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폭언, 욕설 및 신체적 폭력’이 다뤄질 뿐,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가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실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국 결혼이주민 920명 중 387명(42.1%)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 최근 1년간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여성응답자 비율 12.1%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법적·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데다 도움을 청할 만한 사회적 관계도 부실한 이주여성들이 더욱 높은 확률로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약 40% 이상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약 40% 이상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자료=국가인권위원회

이는 거주지역별로 살펴볼 경우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정폭력 유형 중 △활동자유 구속 △경제적 학대 △고국과의 단절강요 △심리언어적 폭력 △건강상불이익 등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결혼이주민보다 중소도시, 농어촌에 거주하는 결혼이주민일수록 경험할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폭력 유형 중 심리·언어적 학대가 81.1%로 가장 비중이 높았지만, 폭력 위협(38.0%), 흉기 위협(19.9%)의 비중도 적지 않았다. 감금(11.9%), 성추행·강간(15.5%), 낙태강요(11.9%)도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수치를 기록했다. 비록 ‘최근 1년간’으로 기간을 한정하기는 했지만,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서 신체적 폭력 피해율이 불과 2%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혼이주여성일수록 더 높은 수위의 폭력에 노출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있었을까?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당한 뒤 도움을 요청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겨우 27.0%로 “요청한 적 없다”고 답한 응답자(31.7%)보다 적었다.(무응답 41.3%) 한국 거주기간이 1년~3년인 결혼이주민의 경우 “누구에게 요청해야 할지 몰라서”(14.6%), 또는 “체류자격이 불안정해질까봐”(9.8%)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칫 고국으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취약한 사회적 관계망으로 인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이 방치되고 있는 셈.

실제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 외에는 도움을 구하거나 의논할 사람이 가족 외에는 없다고 답한 경우는 항목별로 30~40%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가·취미생활을 함께 할 사람, 몸이 아플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은 각각 40.7%, 38.5%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한 장기거주자들은 어떨까? 가족 외부의 모국인 커뮤니티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면서 위급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망을 구축했을까? 이들도 이유만 다를 뿐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0년 이상 거주한 결혼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12.6%)였다. 반복된 피해경험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체념이 가정폭력 문제를 악화시기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30일 대법원은 보험금을 노린 남편이 캄보디아 출신 아내를 살해한 사건에 대해 살해 동기가 분명하지 않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판결에 대한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우선 대전고법에 배당된 파기환송심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결론이 나지 않는 재판을 기다리며 유가족과 이주여성들의 슬픔만 더욱 깊어지고 있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와 가정폭력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들이 도움을 호소하다 결국 체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이처럼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미루는 우리의 무관심때문일 수 있다. 실제 지난 2010년 탓티황옥씨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에도 매년 2명 꼴로 가정폭력에 의해 결혼이주여성이 사망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사망사건이 아니더라도 숨겨진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건처럼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가해자를 비난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가정폭력의 굴레에 얽매인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이 개선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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