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길 위에서 발견하는 믿음
[임순만 칼럼] 길 위에서 발견하는 믿음
  • 임순만
  • 승인 2019.07.1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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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막 여름 여행에서 돌아왔다. 특별히 정해놓은 일정이 없이 산과 계곡을 따라 길을 걸은 좀 색다른 여행의 뒷맛이 촉촉하게 살아난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자신을 재촉하거나 바쁜 일정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면, 이번 여행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최대한 늑장을 부리며, 동행자가 제안하는 대로 길을 따라 걷다가, 어두워지면 숙소를 정해 하룻밤을 자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여행이었다. 

적상산에도 갔고, 남원 매동마을에서는 밤이 모자라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러 계곡에서 푸른 소나무와 맑은 물을 넘치도록 만났다. 상주해수욕장에서의 야영, 남해금산의 푸른 하늘가, 서암정사나 정취암 같은 암자들의 고적하고 늠름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런 곳에는 열매랑뿌리랑 가득 담아주는 민심이 있었다. 그런 넉넉한 것들을 만나며 지리산을 중심으로 선량함과 감동이, 존중과 연대가 끊이지 않는 여행이었다. 

자신을 방기해 던져두고 시간 속을 유영하듯 한 이런 여행을 ‘환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은 오랜만에-아니 난생 처음으로-이런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걷고 있는 내 자신이 현실의 내가 아닌, 나도 모르는 어떤 시공간 속에 던져진 다른 나라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다가오는 다른 나를 만나며 환상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인칭 소설에 등장하는 ‘나’라는 주인공이 작가와 동일인물이 아니듯, 집을 떠나 끝없이 이어지는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나는 분명 기존의 내가 아니었다. 

거대한 산이 품고 있는 무수한 자락과 계곡은 때로 길을 잃게도 만들었지만, 우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지리(智異)라는 글자 그대로의 새로움을 얻어 잃은 길을 찾거나 다른 길과 만날 수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어느 능선에서는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회한과 낭만을 감동적인 어법으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망명작가 밀란 쿤데라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옛날의 그 한량들,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이었다. 

느릿느릿 식사를 했고, 길을 걸으며 산천의 자유를 만끽하다보면 세상사로부터 멀어진 나 자신이 참된 순례자일 뿐만 아니라 길 그 자체가 되어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우리가 나누는 평범하지만 격의 없는 대화는 분명 상당한 수준을 갖춘 텍스트처럼 펼쳐졌고,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조금씩 더 활짝 열어젖힌다면 세상에서 가장 맑은 존재의 순수함에 닿을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기까지 하였다. 물론 이런 즐거움은 동행자가 나의 비논리와 좌충우돌을 모두 받아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덧보탠다면 팝업텐트 접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고 있을 때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해 방법을 알려주는 천사 표 여성 같은 이들을 만났기에 더욱 그랬다.  

과거 이런 여행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과 계획했던 여행의 시도가 한 두 번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여행이 평지를 출발해 계곡을 지나 산의 정상을 넘고 다시 계곡을 건너 먼 길을 향해 나아갈 때 끝내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이어졌던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불찰에 시달렸다. 내가, 혹은 상대방이 뭔가 불편해 했고, 파장을 드리웠고, 갈등했고, 그래서 계획이 틀어졌거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돌아온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그런 것을 넘어선 곳에서 이어졌다. 나는 역시 불찰에 시달렸으나 동행자는 나의 혼탁함을 다 받아주었다. 감정의 기복이 나타나기 쉬운 불편한 외지에서 결코 혼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감으로써 훗날 이런 길 떠남이 다시 이어질 것을 고대하며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느린 템포와 배려의 깊이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게으른 방랑의 호사스러움을 누린 7일간의 여행이 끝난 곳에서 현실은 각박하게 들끓고 있었다. 광화문에 불법 천막은 다시 등장했고 정치적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막말 수위는 한층 높아져 있었다.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의 지지율이 한 달 전보다 크게 내려앉은 43.1%로 나타났고, 한국갤럽은 7월 2주차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전주 대비 4%포인트 내린 4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이후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 정부의 잇따른 자극적 발언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한국의 일본여행 자제가 계속돼 누적 방문객이 줄면 아베 정권에 부담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 항공과 숙박, 요식업이 맞물려 있는 관광산업군 종사자들이 주요 지지층인 아베 정권은 2차 보복과 화이트리스트 삭제로 대응할 가능성은 분명해 보인다. 한일간의 갈등은 민간교류 영역까지 확산되고 있었다. 한일관계가 민간의 갈등으로 번지기 직전이었다. 신뢰 없는 서로간의 용심일 뿐, 누구에게 이득이 되기 어려운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동행했던 지인에게 카카오톡 문자를 보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휴대폰을 열어보았더니 그는 문자를 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참을성 없는 나는 “혹시 전화기를 분실한 것은 아닐까?”하는 미혹을 덧보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공간으로 간 그는 전화기를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 도서관에서 몇몇 자료를 찾아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미혹을 빌미로 전화까지 걸었던 나는 내 조급성과 부족한 내면의 폭을 돌아보았다. 그는, 나는, 우리는 며칠간(가능하다면 몇 주간이라도) 문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전화를 걸거나 받지도 않고, 살아야 할 자유의 당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진정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머나먼 여행을 마친 다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쌍계사 앞마당 벤치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치러야 했던 운명적 비극성 때문에 울컥해했고, 그때 나 역시 떨치지 못해 매양 가슴앓이를 해야 하는 여러 불순한 집착이 떠올라 벤치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그런 먼 여행 끝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넘어지고, 길을 잃고, 지치고, 상처를 추스른 다음 내게 주어진 것을 담담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각성으로 눈물을 머금고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온 그는 이제 다른 사람, 즉 ‘타자(他者)’가 되어있다. 그는 이미 새로운 차원의 신뢰를 터득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머나먼 길을 걸어 신뢰를 획득한 다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먼 길을 우회하고 에두르며 깨어나지 못하면 다른 객체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똑같이 집을 나서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습관으로서의 여행이 되지 않으려면, 동어반복인 언어를 위한 언어를 소지하지 않으려면, 구체성이 부족한 생각과 글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옛것을 혹독하게 극복하고 자신을 타자로 만나야 할 것이다. 길의 어느 지점에서 타자로 서게 되는 여행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약력>

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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