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앨라배마주 주도 몽고베리에서 낙태금지법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앨라배마주 주도 몽고베리에서 낙태금지법 시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낙태는 인권이다”

지난 5월 앨라배마주에서 강력한 낙태금지법이 발효되면서, 낙태 문제는 미국 사회를 들끓게 만드는 핵심적인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 법안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경우 낙태를 금지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강간과 근친상간 등의 경우에도 낙태가 금지되며, 시술한 의사에게는 최대 99년형의 처벌이 부과될 수 있다. 

미국 내 보수층들조차 찬반이 엇갈리는 강력한 낙태금지법이 발효되자, 이에 반발해 여성에게 낙태를 비롯한 재생산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낙태권리행동동맹(NARAL)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낙태금지법을 발효한 앨라배마를 비롯해 각지에서 낙태권 옹호시위를 벌이며 주 의회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낙태가 중요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면서 2020년 대선을 준비하는 후보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낙태가 내년 대선을 판가름할 핵심 이슈로 부상할 것이 분명한 만큼, 후보들로서도 이에 대해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 <뉴스로드>는 낙태 논쟁과 관련하 각 대선 후보들이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알아봤다. 

민주당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무부가 주 정부의 낙태금지 시도를 사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대선후보 중 한 명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무부가 주 정부의 낙태금지 시도를 사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민주당 후보 ‘낙태권 보장’ 지지

전통적으로 중도·진보 성향의 지지층으로 구성된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은 대부분 낙태권을 보장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강력한 지지 입장을 이미 밝힌 상태다. 대선의 이슈로 조기 부상한 낙태 문제에 대해 선명한 입장을 내보임으로서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지지를 끌어모아보겠다는 것. 물론 여성 후보들이나 비교적 진보 성향의 남성 후보들은 이전부터 낙태 문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고수해왔다.

당내 경선 레이스에서 2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은 이미 미국 낙태 논쟁의 분기점으로 평가받는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샌더스 의원은 1972년 지역신문에 “정치인들이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는 주 의회가 완전히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는 버몬트에서는 특히 그렇다”며 낙태금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샌더스 의원은 지난달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도 자신이 제안한 단일 건강보험 법안(Medicare for All)에 여성의 재생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돌봄을 제공하고 현재 중단된 낙태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재개하는 내용을 포함하겠다고 답변했다. 

샌더스 의원과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또한 여성 후보인 만큼 낙태금지법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워런 의원은 지난 5월 “하원은 ‘선택’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하원은 국내 우파 이데올로기로부터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연방법을 통과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워런 의원은 해당 법안이 연방정부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주정부의 시도를 미연에 방지하고 건강보험이 재생산과 관련된 비용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TV토론회 이후 강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또한 낙태권 보장을 지지하는 후보 중 한 명이다. 앨라배마 낙태금지법 논쟁이 확산되면서 민주당 후보들이 너도나도 낙태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가운데, 해리스 의원은 주 정부의 낙태금지 시도를 연방정부가 사전에 통제하도록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목을 받다. 해리스 의원의 제안은 앨라배마와 같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 전력이 있는 주를 ‘사전승인’(preclearance) 명단에 등록하고, 해당 주 의회 및 정부가 낙태금지법을 발효하기 전 법무부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주 정부가 선거 자격을 제한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지난 1965년 시행된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해리스 의원의 제안은 미국 언론들로부터 “훌륭한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여겨지지만, 낙태 이슈에서는 당내 '비주류'에 가깝다.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여겨지지만, 낙태 이슈에서는 당내 '비주류'에 가깝다. 사진=연합뉴스

◇ 낙태반대론자 바이든, 최근 입장 바꿔

민주당 내에서 낙태와 관련해 다른 입장을 가진 후보는 없을까? 낙태금지법 반대가 민주당 후보들의 대세가 된 지 오래지만, 지지율 1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의외로 낙태 관련 이슈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과거 상원의원 재직 시절, 낙태 시술에 연방기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하이드 수정안’에 줄곧 반대 의견을 고수했던 전력은 독보적인 선두 자리를 수성 중인 바이든 전 부통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여성 및 진보적 지지층에서 의구심이 제기되자, 바이든 전 부통령은 최근 하이드 수정안에 대한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 6월7일(현지시간) 바이든 전 부통령은 “조지아주를 포함해서 여러 주가 극단적인 낙태금지법을 통과시키고 있다. 이들이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없애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하다”며 “건강보험은 권리라고 믿는다. 더는 하이드 수정안을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오랫동안 낙태 이슈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온 만큼, 여전히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입장 선회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있는 상황이다. 바이든이 하이드 수정안 반대 입장을 공식 발표한지 약 일주일 뒤인 6월13일, CNN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2006년 한 지역 언론과 가진 인터뷰 녹화영상 내용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나는 낙태를 선택이나 권리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며 “우리는 낙태시술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이 낙태 이슈와 관련해 민주당 내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랫동안 낙태에 반대하는 태도를 고수해왔지만,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랫동안 낙태에 반대하는 태도를 고수해왔지만,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서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 트럼프 "낙태 반대' 입장, 예외적으로 허용 주장도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의 낙태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낙태시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인 지난 2017년 1월, 낙태를 돕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자금 지원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2월에는 낙태 시술 지원 기관에 연방 정부의 가족계획 프로그램 '타이틀 엑스'(Title X)를 통한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이에 반발한 캘리포니아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앨라배마주에서 발효한 낙태금지법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트럼프 대통령도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나는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Pro-life)한다. 하지만 강간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예외이며, 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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