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시] 절망의 노래
[풍경이 있는 시] 절망의 노래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7.20 0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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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양호규, 한낮, 종이 위에 크레파스, 79×60cm
양호규, 한낮, 종이 위에 크레파스, 79×60cm

 

내 숨소리를 들으면 
망가지는 나를 엿볼 수 있으니
나는 이만큼 오래 살아온 것인가.

하늘은 푸르러 
오히려 내 눈을 멀게 하고
땅의 계곡은 
검고 긴 혀로 나를 휘몰아 간다.

싱거운 바람이 
들풀들의 줄기를 뜻도 없이 꺾고
가장 절박할 때에 이르면 
방점을 찍으며 소중히 여기던 삶의 흔적은 
부질없이 가벼운 것이리.

지금 가장 거추장스러운 것이 있다면 
느끼고 생각하는 살아 있다는 오감五感
이 높고 넓은 세상에 
어디 한 곳 나를 소멸시킬 장소가 없으니,

절망의 정점에서는 
스스로 몸 부비며 떨 뿐
나는 왜 나무처럼 뿌리도 내리지 못하면서
몸 털고 날아가는 새도 되지 못하는가.

성경의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잘 쓰는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헛되지도 이슬처럼 가볍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발은 번거로움으로 땀을 흘리고, 우리의 어깨는 빈약하나 무거운 짐을 감당합니다. 먹을 것을 찾아 어둠에 어슬렁거리는 동물이 되기도 하지만 사랑에 기뻐하고 이별에 슬퍼합니다. 질투에 번민하고 욕심에 탄식합니다. 어리석음에 치를 떱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보다 더 아득한 시간을 사는 별을 봅니다. 우주의 저 너머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이는 자기의 한 부분을 고통스럽게 잘라 나누기도 하고 하나뿐인 자기 목숨을 버려 한 목숨을 살리기도 하지요. 살아가는 일은 오욕칠정을 견뎌야 하며 생로병사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치뤄야 하는 일입니다. 이러지 않고는 생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위대합니다.

누구나 인생은 파도보다 더 많이 갈등하고 바람보다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니 누구의 인생이라도 우주의 별만큼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이 유행가처럼 통속적이고 가볍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깊고 넓은 바다와 늪을 건넜는지 모르는 겁니다. 자기의 눈물겨운 삶을 망각하거나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시 외면한 사람들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합니다. 이 말이 맞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슬처럼 순간적이라는 상투적인 말에도 인생은 유행가처럼 통속적이다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여기에는 인생을 다 견뎌온 사람들의 통찰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번민도 욕심도 오욕칠정과 생로병사도 지난 삶에는 가볍고 헛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오묘합니다. 헛됨에 진정한 의미가, 가벼움에 무거움이, 통속에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절망의 정점에서는 /스스로 몸 부비며 떨 뿐/나는 왜 나무처럼 뿌리도 내리지 못하면서/몸 털고 날아가는 새도 되지 못하’지만 바다의 끝에는 뭍이 있고, 어둠의 끝에는 밝음이 있듯이 절망의 끝에는 분명 희망이 있음을 압니다. 고통의 노래가 환희의 노래가 되듯이 절망의 노래는 이렇게 희망의 노래가 됩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절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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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 2019-07-20 15:14:28
마지막 문단이 눈길을 끄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기만 2019-07-20 13:06:29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시와 수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