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받았다네. 이야말로 운명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말년에 협심증으로 고생하던 알프레드 노벨은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의사가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하자 노벨이 남긴 푸념 같은 말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바로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의 재료다. 그는 약간의 충격에도 폭발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무척 힘들었던 니트로글리세린을 다공체 구조를 지닌 규조토에 흡수시키는 아이디어로써 망치로 두드려도 폭발하지 않을 만큼 안전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의사가 그 같은 무서운 물질을 협심증을 앓는 노벨에게 권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다이너마이트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이 맛이 달달한 니트로글리세린을 수시로 먹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를 먹으면 협심증 환자들에게서 발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벨은 끝내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결국 1896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노벨이 의사의 마지막 처방을 거부했던 까닭은 니트로글리세린이 두통을 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약 80여 년 후 미국 툴레인대학 의대의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는 수업 시간 중에 한 학생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질문을 받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의 작용 메커니즘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알프레드 노벨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이그나로 교수 역시 협심증을 앓던 노벨이 니트로글리세린을 처방받았다는 일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그나로 교수는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고, 그날부터 니트로글리세린의 협심증 치료 효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1941년 5월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과학을 제외하고는 성적이 우수하지 않았으며, 머리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했다.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배움에 대한 절실함이 그에게 동기부여를 시켰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를 꿈꿨던 그는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해 약학을 공부하면서 이왕이면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후 미네소타대학에서 약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79년 툴레인대학 의대 약리학 교수가 되고 1985년에는 UCLA 의대 교수가 되었다.

사소한 호기심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격을 지닌 이그나로 교수는 한 우물을 파듯 오랜 시간 연구에 몰두한 끝에 마침내 니트로글리세린이 체내에서 일산화질소로 변환되고 혈관을 확장해 혈류를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혈관의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오랫동안 협심증 등의 심혈관질환에 사용되어온 니트로글리세린의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그동안 일산화질소는 환경에 안 좋은 오염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그나로 교수의 연구로 체내에서 생성되는 일산화질소는 혈액 흐름을 촉진해 인체에서 여러 신체 기관의 기능을 촉진시키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심혈관질환이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등의 서구인들은 환호했다. 또한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심혈관질환 치료를 위해 일산화질소 생성을 촉진시키는 신약 개발에 나섰다.

이그나로 교수는 생체 내부에서 잠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산화질소가 세포들 간의 신호전달 물질로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각자의 연구로써 발견한 로버트 퍼치고트 박사, 페리드 머래드 박사와 공동으로 199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미국심장협회는 일산화질소에 대한 발견을 심혈관계 의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일산화질소는 팔방미인 같은 물질이다. 심혈관질환의 예방 및 치료뿐만 아니라 인체 각 기관의 기능을 조절하며 박테리아 및 기생충을 퇴치하는 데도 이용된다. 또한 노화 예방에도 도움이 되며, 암세포의 성장억제 효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남성의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탄생이다. 글로벌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연구진은 일산화질소를 사용한 협심증 치료제를 개발하던 중 임상시험 과정에서 이상한 부작용을 발견했다.

니트로글리세린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실데나필을 복용한 남성 환자들에게서 성기의 발기 현상이 관찰된 것이다. 이후 화이자 연구진은 이 성분을 발기부전 치료제로 개발했으며, 그렇게 탄생한 약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일컬어지는 비아그라다.

비아그라는 하루에 약 50만 정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쳤으며, 개발의 주요한 단서를 제공한 이그나로 교수는 ‘바이그라의 아버지’로 불렸다. 비아그라의 등장은 전 세계적인 보양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쳐 남성의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남획되던 바다표범이나 순록 등의 수요를 줄였다.

하지만 이그나로 박사가 비아그라와 관련해 얻는 판매수익은 전혀 없다. 연구만 수행하다 보니 비아그라에 대한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그나로 교수는 자신은 과학자이지 사업가는 아니라는 입장을 매번 밝히곤 했다.

노벨상 상금으로 노란색 페라리 스포츠카를 샀다고 공공연히 밝힌 이그나로 교수는 마라톤 및 사이클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64세 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해 5년 동안 풀코스를 15차례 완주했으며, 자전거는 일주일에 300㎞ 정도를 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처럼 운동에 매달리는 이유는 일산화질소를 체내에서 생성할 수 있는 방법이 심박수를 증진시키는 유산소운동이라는 사실을 그간의 연구를 통해서 알아냈기 때문이다. 만약 알프레드 노벨이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의사의 니트로글리세린 처방을 아이러니가 아닌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