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긴박하게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외교 관련 책들을 손에 잡게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교부 조세영 차관이 민간인 시절 펴낸 『외교외전』을 재미있게 읽었다.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외교관의 이사부터 복장, 의전, 조직 내 알력관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럿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리걸 마인드(legal mind)에 대한 꼭지였다. 1961년 5월,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장면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총사퇴하자, 윤보선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하루 만에 하야 선언을 번복하는데, 이는 쿠데타 세력이 간곡히 부탁한 까닭이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당시 외교부 사무차관이었던 김용식이 박정희를 급히 만나 현재 유일한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외교적으로 무정부상태가 된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결국 10개월 뒤 미국과 일본이 박정희 정권을 합법적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에야 윤 대통령은 물러날 수 있었다. 김용식의 리걸 마인드가 국제법적인 혼란을 막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국제법적 논리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위안부 문제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는지를 두고 한국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5년 8월에야 뒤늦게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을 총정리하여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기존 입장과 어떻게 양립되는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일본으로부터 ‘계속 골대를 옮긴다’는 비판마저 받게 되었다. 물론 외교에서는 국제법보다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선진국의 외교는 모두 탄탄한 리걸 마인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만 시의적절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외교관은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정부는 1993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더 이상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한국에서 할 테니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후세에 교육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라고 불렀다. 그리고 성의 있는 조치를 해달라고 구차하게 부탁하는 대신,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한국이 해결했으니 일본은 알아서 할 일을 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태도 변화에 자극을 받은 일본 정부는 그로부터 5개월 뒤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고노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자구조치의 문제점은 피해자의 의사가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일본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한 상황에서 보상마저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냉정히 따지면 국제사회에서는 국가가 자력으로 국익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국제 분쟁에 휘말린 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최종적으로 국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없으면 그 국민은 기댈 곳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를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면 이는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훌륭한 정책 결정자라면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회의하며 최선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외교는 총체적 난국을 맞았다. 미국의 우산 아래 경제 발전에만 집중하면 되었던 전략적 황금기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커다란 판들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제는 안보 이슈가 곧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을 냉정히 인식하고, 그에 맞춘 전략을 다시금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저자가 힘주어 말하듯 한반도의 미래는 한국 외교의 어깨에 달렸다. 

임하영('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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