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야만으로 가지 말아야
북한 야만으로 가지 말아야
  • 임순만(언론인)
  • 승인 2019.07.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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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을 향한 북한의 볼멘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간헐적으로 쏟아져 나오던 북한의 대남 불만이 25일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는 한층 더 강경하게 표출됐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조선당국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최신 공격형무기 반입과 합동 군사연습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남조선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도 한국 정부 압박에 가세해 “북한은 평양발 경고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주시할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자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현실을 실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도발이 예고된 무력시위라며 최근 한국군이 스텔스 전투기 F-35A 4대를 도입하고 다음 달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강행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북한의 불만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부터 꾸준히 표출됐으며 최근에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해 보인다. 북한의 입장은 한국이 한미동맹의 이익보다는 남북간 민족 이익의 관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적극 호응해 달라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지만, 한국 측의 쌀 지원을 거부하고, 무력시위까지 감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의 무기 도입과 한미훈련 등을 직접 비판하며 미사일 실험을 강행한 이상 당분간 남북관계나 북미 실무대화에서 미온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이는데, 변수는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여부다. 지난 21일 한·미 군 당국은 북미 실무협상을 의식한 듯 한미 합동군사연습에 ‘19-2 동맹’에서 ‘동맹’을 빼는 등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요구는 한국내부의 사정이나 국제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순전히 자신들의 입장만으로 생각하는 비외교적 처사다.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정부 차원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요구 및 대북 제재 강화를 촉구했다. 또한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와 외교안보라인 전면 교체, 안보상황 관련 국회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면 보일수록 다양한 세력이 들끓는 한국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워진다.  

북한은 이런 외교·대외정책이 단단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현대 외교에서는 통용되기 어려운 강경라인일 뿐이다. 북한은 고려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인내해야 할 것을 인내하지 못한다. 북한이 지금까지 벼랑끝 전술로 얻은 것은 핵개발로 엄청난 국력을 쏟아 부었으나, 이제 와서 영변핵시설 폐기 쇼를 연출하며 앞으로 전면 폐기하겠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형국이다. 2박3일간 하노이 행 열차를 타는 이벤트를 연출했지만, 회담 결렬이라는 참혹할 정도의 무시를 당해야 했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뭘 했다고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간의 노력은 철저하게 도로(徒勞)로 끝나기만 하는 형국이다.    

앞으로 진행될 북·미 실무접촉은 북측이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조치의 디테일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포괄적인 방식이 된다면 영변 핵시설 전부를 검증하게 전면적으로 완전 폐기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측에서는 영변 시설이 노후화됐기 때문에 협상 가치가 적고, 영변 핵시설 폐기는 불가역적 비핵화의 초기 단계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겉으로 큰소리를 치지만 수십 년째 핵협상에서 쫓기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동시 교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입장을 가진 한국의 중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국과 초보적인 신뢰도 구축하지 못한 북한이 핵 목록이나 신고가 없는 상황에서 영변 핵 폐기를 핵 프로그램 폐기라고 부를 수 없다는 미국 측의 지배적인 반대의견을 넘어설 길은 한국의 중재 없이는 전무해 보인다. 

원심분리기 2000개 이상을 가진 고농축 우라늄 생산시설과 연구개발센터 등 300동 이상의 시설·설비를 구축해놓은 핵 개발 종합단지인 영변은 미국으로서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미국이 제시하는 동시적·병행적 접근과 북한이 말하는 단계적·동시 행동의 원칙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출발점인 문 대통령이 밝힌 “영변 핵시설 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라는 동시 교환이다. 

북한의 현대 외교를 무시한, 상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일방 외교는 점점 자신들을 옥죄일 수밖에 없다. 도를 넘은 야만은 도움을 주더라도 오히려 더 심한 야만을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80년대 중후반 아프리카에 대기근이 번질 때 국제구호단체들이 손을 잡고 자비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 도움은 굶주린 아프리카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구호물자를 장악한 군벌은 더 막강해져 미군을 잡아 잔혹한 방식으로 죽였다.

북한은 현재의 지구촌에서 자체적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는 국가의 미래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조언할 수 있는 지성인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남한 정부처럼 민족적 관점에서 북한에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는 쉽지 않다. 모처럼 잘 지어지고 있는 밥에 불순물을 섞고 싶어하는 충동을 북한은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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