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1998년 1월7일자에 지도로 표시한 북한의 원유탐사지역. 사진=연합뉴스
재일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1998년 1월7일자에 지도로 표시한 북한의 원유탐사지역.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평양이 기름 위에 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998년 11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온 뒤 이같은 말을 남겼다. 정 전 회장의 발언 이후 국내에서도 북한 석유매장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잊혀질만하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슈로 자리잡았다. 

북한 석유매장설의 배경에는 실제 북한에 유전이 존재할 경우, 남북 합작 개발사업을 통해 경제성장의 동력을 얻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가 놓여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남북관계가 진전된 지금에 와서도 북한 지하자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북한이 여전히 공식적인 자료를 발표하지 않고 있기 때문. <뉴스로드>는 북한 석유매장설의 실체를 검증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되짚어봤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북한 관련 부분. 자료=EIA 홈페이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북한 관련 부분.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북한에 확실하게 입증된 석유 매장지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자료=EIA 홈페이지

◇ 마이크 레고, “북한에 잠재적 유전 7곳 존재”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 발표된 가장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의 석유 매장량은 ‘0’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전 세계 국가들의 주요 정보를 담아 발간하는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지난해 1월1일 기준 북한의 매장된 원유는 전무하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또한 지난해 6월 “북한은 제한적인 석유 탐사를 수행해왔으나, 매장량이 입증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공식적인 관련 통계자료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구체적인 매장량이나 채산성은 알 수 없지만 북한 영토 내에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 북한은 지난 2004년 영국계 석유개발회사 아미넥스, 2013년 몽골계 석유개발회사 HB오일 등과 원유 탐사 및 개발 계약을 체결하며 석유 생산을 시도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제재로 인해 실패했으며, 아미넥스는 2012년, HB오일은 2016년 철수를 결정했다. 

북한 내 석유매장량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증거 또한 북한 내에서 원유 탐사에 나섰던 이들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아미넥스에서 원유 탐사 분야 최고책임자로 일했던 영국의 지질학자 마이크 레고는 지난 2015년 지구과학 전문매체 ‘지오엑스프로’에 “북한-탄화수소 탐사 및 잠재성‘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탄화수소는 탄소와 수소만으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대표적이다. 

원유 매장지로 추정되는 북한 재령 서부 대동강 유역에서 지난 2004~2005년 발견된 기름막(왼쪽)과 가스거품. 사진=지오엑스프로 홈페이지
원유 매장지로 추정되는 북한 재령 서부 대동강 유역에서 지난 2004~2005년 발견된 기름막(왼쪽)과 가스거품. 사진=지오엑스프로 홈페이지

레고는 아미넥스가 북한 정부와의 계약에 따라 원유를 탐사하는 과정을 진두지휘한 책임자다. 특히 아미넥스는 이전에 북한 정부와 계약을 맞고 원유 탐사에 나선 업체들과 달리 북한 전역에 대한 탐사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북한 정부로부터 1960~2000년대까지 이뤄진 북한의 원유 탐사 자료를 모두 제공받았다. 이 때문에 레고의 보고서는 상당한 신뢰성을 가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고는 보고서에서 “내륙 및 해저에 매장된 탄화수소 자원의 존재에 대한 풍부한 증거와 1970년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과거의 탐사 노력에 비춰볼 때, 북한에 상업적인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며 북한 영토 내에 상당한 양의 석유가 매장돼있다고 주장했다. 

레고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내 유력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역은 내륙 5곳(평양, 재령, 안주·온천, 길주·명천, 신의주 유역) 및 서한만, 동한만 등 총 7곳이다. 레고는 해당보고서에서 북한이 이들 유역 대부분에 탄성파 탐사를 시행했으며, 이를 통해 서한만 유역 3개 지층에서 원유가 매장돼있을 가능성이 큰 지층구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또한 레고는 내륙지역인 재령 유역 시추공에서 원유를 확인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은 지난 2004~2005년 재령 유역 서부의 대동강 부근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유와 가스가 지표면으로 유출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북한 내륙의 석유매장지로 추정되는 길주-명천 지역의 지층구조. 사진=지오엑스프로 홈페이지
북한 내륙의 석유매장지로 추정되는 길주-명천 지역의 지층구조. 사진=지오엑스프로 홈페이지

◇ CSIS 조셉 버뮤데즈, "아직 입증된 유전 없어..."

반면 북한 석유매장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가 조셉 버뮤데즈는 레고가 보고서를 발표한 지 약 한 달 뒤인 2015년 12월,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북한의 석유 및 천연가스 탐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게재했다. 

버뮤데즈는 해당 보고서에서 “50년간의 탐사 및 시추, 해외투자와 원조 및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아직 상업적으로 개발할 가치가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버뮤데즈의 지적은 북한에 석유나 천연가스가 매장돼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정치적 이유에서 개발이 어렵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버뮤데즈는 해당 보고서에서 북한이 확실한 원유매장지를 찾아내거나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중국 및 주변 국가와의 해양 영유권 갈등 △채굴 장비 및 기술 부족  △재정적·정치적 위험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실제 북중관계는 북한 석유개발에 있어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다. 버뮤데즈에 따르면 중국 국영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지난 2005년 북한과 서한만 분지의 원유를 개발하기로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CNOOC는 해당 지역에 약 6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있다고 추정했지만, 이후 북중관계가 경색되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북한에 원유를 공급해온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석유를 생산할 경우, 북한 정권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서한만에 유전이 존재할 경우 중국 북동부 유전과 연결돼있을 가능성이 있어, 북한이 개발 시 중국 유전이 빠르게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치적 불안정도 대형 석유기업이 북한 원유 탐사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만약 상당한 양의 원유가 매장된 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개발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돌발행동이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성과를 포기해야 할 위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버뮤데즈는 “(북한이 석유생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대형 석유업체 및 정부 수준의 재정적·기술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 인권 및 핵·미사일 등 국제정치적인 이슈로 인해 이러한 지원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며 “이러한 문제 외에도 중국 및 한국과의 해양 영유권 분쟁이라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고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북한에서 루마니아산 굴착기를 사용해 원유를 시추하는 모습. 사진=38노스 홈페이지
북한에서 루마니아산 굴착기를 사용해 원유를 시추하는 모습. 사진=38노스 홈페이지

◇ 북한 원유매장량 세계 8위 추정 보고서

북한 영토 내에 석유 및 천연가스 등이 매장돼있다는 것은 원유탐사에 나섰던 여러 기업들의 자료와 관계자들의 발언을 통해 입증된다. 버뮤데즈의 보고서 또한 원유 매장 여부보다는 원유 개발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에 가깝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에 매장된 원유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중국이 추정한 서한만 유전의 원유매장량 600억 배럴과 아미넥스가 추정한 동한만 유전의 매장량 40~50억 배럴을 더하면 약 650억 배럴. 지난 2003년에는 북한 발표자료를 바탕으로 북한 원유매장량을 580-730억 배럴로 추정한 보고서가 국내에서 발간되기도 했다. 물론 정밀한 탐사가 필요하겠지만, 추정대로라면 세계 8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레고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 마지막 문단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북한은 내륙과 해저에 탄화수소가 매장돼있을 잠재성이 높으며, 선발주자의 이점을 취할 준비가 된 자들에게는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며 “안타깝게도 최근의 정세가 이를 억제하고 있지만, 서구 미디어에 퍼진 악명과 달리 북한은 공급이 부족한 에너지 시장과 함께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과 위험이 적은 탐사기회, 낮은 경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원유·천연가스 생산지인 동해 가스전은 2년 뒤인 2021년 수명을 다할 예정이다. 이는 불확실한 국제관계와 경제제재의 변수에도 불구하고 북한 원유 개발에 우리가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석유공사 또한 지난 1월 북한 서한만·동한만 지역 석유지질 특성 및 탐사 유망성 등을 파악하기 위한 초기 기술 검토를 마치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북한 석유개발이 정체된 남북관계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