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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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일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경우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제기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 및 소재의 경우 대부분 대체 가능해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뉴스로드>는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인해  한국경제가 입을 피해가 실제로 어느 정도일지  전문가 의견을 통해 살펴봤다. 

◇ 화이트리스트 제외, 어떤 의미?

‘화이트리스트’는 전략물자 수출 시 통관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안보상 우호국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무기·에너지·화학·통신·전자·첨단소재 등 전략물자는 군사적 사용 가능성이 있어 안보적 차원에서 엄격한 수출허가 및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백색국가로 등록될 경우 이러한 엄격한 통관절차가 간소화된다. 즉, 백색국가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 신뢰할만한 국가이므로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해 번거로은 절차를 줄여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것.

구체적으로 백색국가는 일본으로부터 전략물자를 수입할 경우 일반포괄허가를 신청하게 된다. 일반포괄허가는 허가신청서 및 판정·총괄 책임자 등록증 등 세 가지 정도의 서류만 제출하면 되며, 신청서 제출 이후 통상 1주일이내에 3년의 유효기간이 주어지는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즉 3년에 한 번 포괄적으로 허가를 받으면 개별적인 품목에 대해서는 따로 행정절차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반면 화이트리스트에 등록되지 못한 국가의 경우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입한 물품의 용도와 최종 수요지 등을 관련 당국에 고지해야 하며, 신청서류도 늘어난다. 게다가 처리 기간은 최대 90일까지 늘어나는 반면, 유효기간은 오히려 6개월로 줄어든다. 반년마다 석 달이 걸리는 통관허가를 반복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 또한, 경우에 따라 일본 정부가 심사 절차를 까다롭게 해 수출 자체를 제한할 수도 있어, 일본으로부터 물품을 수입하는 국내 기업으로서는 안정적인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총 27개 국가를 백색국가로 지정하고 있었으나, 이번 조치로 인해 화이트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국가는 26개로 줄어들게 됐다.

자료=현대경제연구소

◇ 수출제한 품목 1100여개... 80여개는 대일 의존도 높은 '고위험군'

일본 정부는 이미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제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로 인해 새롭게 수출이 제한되는 품목은 어떤 것이 있을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일본 전략물자 통제목록은 크게 군용품목(무기류)과 산업용 전략물자로 나뉜다. 이중 산업용전략물자는 다시 WMD 관련(원자력, 화학·생물무기, 미사일) 물자와 재래식 무기 관련(첨단소재, 재료가공, 전자, 컴퓨터, 통신·정보보안, 센서·레이저, 항법장치, 해양, 항공우주·추진, 기타 군용품목, 민감품목)으로 나뉜다. 

한국은 그동안 백색국가로서 총 16개 품목에 포함되는 전략물자 수입 시 우대조치를 받아왔으나, 이번 조치로 인해 전략물자에 포함되는 약 1100가지 물품에 대해 우대조치를 받을 수 없게 됐다. 물론 일본이 생산하는 물품이 국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겠지만, 국내 기업의 의존도가 높은 물품의 수입이 제한된다면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현대경제연구소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에 따르면 유엔의 국제상품무역통계 품목번호(HS코드) 6단위 기준 수입품들의 대일 의존도를 분석한 결과 의존도 50% 이상인 품목이 253개, 90% 이상은 48개로 집계됐다. 90% 이상 품목 중에서는 광물성 생산품(97.3%)의 대일수입액이 10.9억 달러로 가장 높았으며, 화학 및 연관공업 생산품(98.4%) 5.4억 달러, 플라스틱·고무 및 관련 제품(96.2%) 5.1억 달러의 순이었다. 한일 경제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이상 국내 산업의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전략물자 수출제한 조치로 향후 수급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 중 대일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고위험 품목은 약 80여개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석유화학 제품, 공작기계, 철강·알루미늄 제품 등에 이러한 고위험 품목이 집중돼있는데, 이중 일부는 대일 의존도가 99%를 넘어선다. 설령 대체가 가능하더라도 단기적으로 다른 수급처를 찾는 과정에서 생산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높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국내 경제에 전반적인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5일 “섣부른 판단을 하기 어렵지만 백색국가 제외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공산이 높다”며 “일본의 전략물자 수출규제가 궁극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중 무역갈등 격화와 함께 글로벌 경기침체 리스크를 높일 수 있는 또 다른 잠재적 리스크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 김병연 연구원 또한 “수출은 단가와 물량의 곱이므로 당장의 부정적 영향이 선명하지는 않다”면서도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2.2%로 낮출 때에는 한일 무역분쟁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만약 한일 무역분쟁이 최악으로 진행돼서 전기 전자제품 생산물량이 10% 감소할 경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최악을 가정시 1.8%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이 이날 오전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가마우지 경제’ 체질 개선 기회 삼아야...

반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비록 단기적인 타격은 피할 수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대체불가능한 품목은 거의 없는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 경제의 대일의존도를 낮추고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이번 조치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산업의 경우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3분기까지 소재 재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소재 재고가 떨어질 때까지 국내외에서 일본을 대체할 소재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국내 기업들은 이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소속인 한 반도체 엔지니어는 지난달 30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속된 말로 엔지니어를 갈아 넣는 상황이 되겠지만 두 달 안에 모든 부분이 정상화 될 것”이라며 “대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엄청 귀찮고 어려워서 못했던 건데 오너가 바꾸라고 지시를 했으니 한다”고 말했다. 

SK그룹 계열 반도체 소재 회사인 SK머티리얼즈 또한 최근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을 본격화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SK머티리얼즈는 올해 말 샘플 생산을 목표로 최근 설비 개발에 착수했다.
실제 양대 반도체 생산업체가 대체 공급처를 찾아내고 대일의존도를 줄일 경우 일본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은 소재 공급처를 변경할 경우 공정 전체를 다시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업체를 바꾸는 경우가 드물다. 만약 이번 사태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다른 공급처를 발굴한다면, 다시 일본 소재 생산업체로 되돌아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대일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키움증권 이동욱 연구원은 지난 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결론적으로 석유화학 섹터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며 “톨루엔·자일렌 등 일부 모노머의 일본 수입 의존도가 큰 것은 합작사 투입에 필요한 물량으로 일본의 규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범용 제품이라 전세계 어디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이어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 이슈 등으로 최종 고객·수요처들의 인식 변화가 발생해 국내 화학 업체들의 소재 사용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한번 소재의 대체가 있으면, 기존의 일본 업체들이 누렸던 기득권이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또한 국내 기업들의 중요 소재 공급안정성 확보를 위해 예산을 투입할 방침이다. 정부는 5일 20대 품목 1년, 80대 품목 5년 내 공급안정화를 통화 100대 품목의 조기 공급안정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R&D 7.8조원(총사업비 신청기준), M&A 2.5조원 이상, 금융지원 29조원(공급여력), 특별지원 6조원 등을 지원하고 규제특례 근거 또한 확대할 방침이다.

반대로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중요한 고객을 잃은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명확하다.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 일본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지난 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단기적으로는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피해를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계적인 모든 전기기기 메이커가 타격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전기기기 메이커가 일본 정부에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다”며 “계속 일본의 수출 제재가 이런 상태를 유지하게 되면 향후 5년 뒤에는 일본 전체의 반도체 산업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대체품을 찾기까지 단기적인 타격을 피할 수는 없지만, 국내 기업과 정부가 공급안정성 확보에 성공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태를 대일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2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에서 “우리는 우리의 수출이 증가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마우지 경제체제로부터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며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가마우지 낚시법’은 목에 끈을 묶어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한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가로채는 방법이다. ‘가마우지 경제’라는 김 차장의 표현은 우리 경제가 높은 대일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계속 일본의 가마우지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국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화이트리스트 사태가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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