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는 울림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시는 눈부신 표현으로 사로잡고,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빠져들게 하는 시도 있다. 이것들 중 한 가지만 충족이 돼도 그 시집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광수 시인의 첫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에는 이 세 가지가 다 들어 있다. 마치 세 권의 시집을 한 권으로 묶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한 편 속에 세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는 시들도 있다. 그래서 읽는 맛이 각별하다.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 시인은 새롭게 눈에 띄는 광경을 보며 찬탄을 금치 못한다. 오래 전에 봐왔던 대상을 다시 보면서 예전과 다른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추억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을 때도 있고, 좋아하는 인물에 대해 품고 있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시인은 눈에 비치는 대상을 보지만 그것만 보지는 않는다. 해금강에 가서는 불쑥 인생의 허망함을 느낀다. “해금강에 가보라/강을 기대하다가/바다와 마주하는 그곳/바위와 파도가 얼마나 치열하게 만나/사랑을 나누는지 볼 수 있는 곳/세상 위에 나는 점 점 점/그곳에 가면 사는 일이/밀려드는 파도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안다”(「해금강」)고 노래하며 “그 어떤 치열함도 부질없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마른 풀들을 보면서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일찍이 내가/추위 가득한 벌판의 한구석에서/나무 십자가로 서 있을 때/너희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괴로워한 적이 있었다/칼날 같은 바람과의 싸움에서/너희들의 입술은 말라터지고/마지막 푸른 피 한 방울까지도/흘려버렸지만/나는 부끄러운 알몸조차 가리지 못한 채/윙윙 울 수밖에 없었다”(「마른 풀들에게」)고 노래하다가 “만약 너와 내가/우리들 적인 바람과 눈보라가 잠잠해/고통 없이 살 수 있다 하면/우리는 이미 쓸모없는 잡초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시집에서 가장 절절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이미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대목이다. “봄비 그치니 전날의 애인들이/꽃등을 켜고 마중 나왔다/수천수만의 애인들이/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폭죽처럼 터지는 봄밤이 눈앞이다/어찌할 것이냐, 몸은 벌써 떠나왔는데/저 애인들을 모두 껴안고 뒹굴 수 있는/뜨거움이 식은 지 이미 오래인데/마음 가득 봄밤을 더듬으며/중얼중얼 걷는다/무참한 봄”(「봄날의 애인들」)이라고 탄식한다.

이런 심정은 봄꽃만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가을 단풍을 보면서도 가슴이 무너진다. “가을 저녁 마음을 다쳐 끝내 몸살이다/까치밥으로 남은 홍시 하나/늑골 근처서 달랑거리다 툭,/온몸 적시며 식은땀으로 흥건하다/가을은 하필 늙지도 않고 찾아와서/내 낡은 관절을 쑤시며 콕,/첫사랑을 배신한 죄를 묻는가/모과 향 나던 젖가슴을 가진 여자가/마른 기침으로 찾아온 새벽/거봐라 하며 지나가던 가을이/아직 푸른 처녀의 허리에 손을 감아 콱,/붉디붉은 단풍들로 숨이 막힌다”(「가을은 늙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여러 갈래의 느낌의 줄기들이 뒤엉켜 있지만,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공통분모는 ‘그리움’이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광수 시인은 또래 시인들이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는 세월 동안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무게는 같지 않다. 그들의 시집에서 좋은 작품만을 추려 시선집을 묶은 것과 견줄 만하다. 그래서 오광수 시인은 첫 시집을 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시선집을 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시집의 제목도 한 행의 시다.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더 늦지 않게 사랑을 말해야 한다는 굳센 다짐이다. 그러니까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시인이 말하지 못하고 별러온, 이제야 말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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