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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식물 덕분에 먹고산다. 태양 에너지를 받아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하는 식물을 초식성 동물이 먹고, 그 초식성 동물을 육식성 동물이 잡아먹는 먹이사슬 구조를 지닌다.

식물성 색소인 엽록소가 태양 광선을 흡수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하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만들어서 포도당을 생산하는 과정을 광합성이라 한다. 전 세계 식물이 광합성으로 생산하는 포도당은 매년 약 1500억 톤에 달한다.

즉, 엽록소야말로 지구 생명의 근원이며 에너지원인 셈이다. 따라서 엽록소를 ‘녹색 혈액’이라고도 한다. 반면, 척추동물의 적혈구에 다량으로 들어 있는 색소 단백질은 헤모글로빈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색소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셈이다. 헤모글로빈으로 인해 척추동물의 여러 조직에 산소가 운반되며, 식물은 엽록소로 인해 생명의 근본 과정이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헤모글로빈과 엽록소는 거의 동일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단지 다른 것은 헤모글로빈의 경우 중심원소가 철(Fe)인 반면 엽록소의 중심원소는 마그네슘(Mg)이라는 점뿐이다.

이를 밝혀낸 이는 100여 년 전 독일의 화학자 리하르트 빌슈테터였다. 그는 엽록소에 관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1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872년 카를스루에에서 출생한 그는 뮌헨대학교에서 코카인의 구조를 연구해 1894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돌프 폰 바이어 밑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알칼로이드의 구조에 관한 연구했으며, 1902년에는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취리히대학과 베를린대학, 그리고 카이저빌헬름연구소의 유기화학부장 등을 거쳐 1916년 다시 뮌헨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리하르트가 엽록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05년 취리히대학의 교수가 되면서부터였다. 엽록소에 마그네슘이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리하르트는 마그네슘이 불순물이 아니라 엽록소의 필수요소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또한 그는 200가지 이상의 식물을 조사해 엽록소는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엽록소는 화학적으로 균일한 물질은 아니다. 즉 엽록소는 두 가지 녹색 색소의 혼합물인데, 이를 확실하게 증명한 이도 바로 리하르트다.

엽록소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순수한 상태의 엽록소를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이다. 리하르트는 이 숙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냈다. 하지만 그의 연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엽록소의 화학적 구조를 밝힌 일이다. 그는 엽록소가 알칼리와 사포니피케이션 반응을 하며, 피톨과 클로로필린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중 클로로필린이 바로 마그네슘을 포함하는 색소 성분이다.

그는 이 연구로 식물학 분야로서는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로 기록됐다. 사실 식물학은 생물학 분야에 속하므로 생리의학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식물 고유의 현상을 발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이는 없다.

그럼에도 식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광합성을 연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리하르트를 포함해 세 차례나 된다. 엽록소가 빛에너지로 물과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바꾸는 광합성 과정을 밝혀 1961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멜빈 캘빈과 광합성반응센터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해 1988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독일의 요한 다이젠호퍼와 로베르트 후버, 하르트무트 미헬이 그 주인공들이다.

리하르트는 안토시아닌 등 식물의 다른 색소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는 안토시아닌을 당 성분인 글루코오스와 색소 성분인 시아니딘으로 분리하고, 시아니딘의 화학적 구조도 밝혀냈다. 안토시아닌은 장미에서 적색이 되고 해바라기에서는 청색이 되는데, 그는 한 색소가 다른 꽃에서 어떻게 다른 색을 갖게 되는지도 밝혀냈다.

그밖에도 카로티노이드라 불리는 황색 색소를 순수한 상태로 만들어 연구했으며, 1930년대 들어서는 효소반응의 메커니즘을 연구해 효소가 생물 유기체가 아닌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천연 효소가 비단백질 물질이고 여겼던 견해는 1930년 반증되기 전까지 널리 인정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프리츠 하버의 요청으로 방독면 개발에도 관심을 가졌던 리하르트는 1924년 뮌헨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개인 연구를 했다. 반유대주의 압력이라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1938년 스위스로 망명한 그는 4년 후인 1942년 세상을 떠났다.

식물의 광합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엽록소는 활성산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등 인체 건강에서도 큰 효능을 발휘한다. 인체 내로 들어온 후 헤모글로빈으로 변하는 엽록소를 많이 섭취하면 산소 공급량이 증가해 기억력 저하 및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다. 엽록소는 그밖에도 채내 독성 및 노폐물 제거, 체질 개선, 면역력 강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벨상을 세 차례나 받았던 광합성에 대한 비밀은 아직 완전히 파헤쳐지지 않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광합성 과정에서 양자역학적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만 예측했는데, 2007년 실제로 그 같은 현상이 관찰됐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그레이엄 플레밍 교수팀이 초고속 시간 분해능 레이저를 이용해 광합성에 이용되는 색소분자들 사이에서 양자 결맞음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이 발견은 광합성의 효율이 왜 그리 높은지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식물이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최대 효율은 95%가 넘는다. 이는 기존의 화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현상인데, 광합성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면 인류는 에너지 변환 효율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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