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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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고심 중인 가운데,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 파기가 유력한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지소미아 파기 시 한미일 공조체제에 금이 갈 수 있다며 섣부른 결정 대신 신중하게 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면서도 “협정을 연장하는 것으로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었는데 최근 일본과 신뢰가 결여됐고 수출 규제나 화이트리스트 배제와도 연계돼있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며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당도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하자 “이렇게 신뢰가 없는 관계로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생각이 든다”며 “의미 없는 일에 연연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여론도 지소미아 파기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에게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한 결과, 지소미아 파기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7.7%(매우 찬성 23.8%, 찬성하는 편 23.9%)로 반대한다는 응답 39.3%(매우 반대 19.8%, 반대하는 편 19.5%)보다 8.4%p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은?

이처럼 논란이 되고 있는 지소미아는 이미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됐으나 밀실·졸속 협상이라는 국내 비판여론에 부딪혀 체결이 연기됐다. 하지만 지난 2016년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하며 동북아 위기가 고조되자,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북한의 병력 이동 및 사회 동향, 북 핵·미사일 관련 정보 등을 공유하기 위해 당해 11월23일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한일 양국은 북핵·미사일 등에 대한 2급 이하의 군사비밀을 미국의 중개없이 직접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실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한일은 지소미아 체결 이후 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 2019년 2건 등 총 48건의 정보를 교환했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효력이 끝나기 90일 전까지 파기 통보를 하지 않으면 1년 더 효력이 자동 연장된다. 올해의 경우 지소미아를 파기하려면 오는 24일 전까지 일본 측에 파기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2일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단체가 2일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파기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지소미아 파기 시 한일 득실은?

군사전문가들은 지소미아가 비록 일본의 요구에 따라 체결됐지만 한일 양국에 상호 이익에 되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대북공작원 및 탈북자, 북중 접경지역의 인적네트워크 등 이른바 '휴민트'(HUMINT)를 통한 우월한 정보능력을 보유한 한국과, 고해상도 정찰위성 등 첨단 감시장비를 다수 보유한 일본이 서로 상대적 우위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대북 감시체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8일 JTBC 인터뷰에서 “일본은 군사용 정찰위성이 있지만 우리 군은 없다. 물론 아리랑 위성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일본에 비해 아직 해상도면에서 차이가 있다”며 “북한,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을 감시하는 능력이 우리보다는 월등히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지소미아의) 득실을 따진다는 건 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양국 다 상호보완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파기를) 결심한다면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소미아 체결 당시 반대 입장을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 또한 취임 이후 2년 연속으로 지소미아 연장을 결정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8월 24일 협정 갱신 전 군 당국에 양국 정보교환 내용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시했고, 그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지소미아 연장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2017년 당시 국방부는 연장 이유에 대해 “지소미아 체결 후 실제 정보교류 기간이 짧아 지소미아의 효용성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1년간 더 운용하면서 이 협정의 효용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후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년 뒤인 2018년에는 “한일관계와 국방·외교 측면에서 실익이 존재하고, 북한의 비핵화 및 평화정착 과정에서 한일 간 전략적 소통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연장 취지를 밝혔다. 

◇ 2017년 이후 정보교환 급감, 실효성 논란도

반면 지소미아가 일본의 경제보복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할 가치가 있는 협정인지에 대해서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지소미아를 파기한다고 해서 대북 감시체제에 구멍이 뚫리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한일 간 정보교환은 2017년(19건) 이후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의 경우 각각 2건씩 정보교환이 이뤄졌을 뿐이다. 게다가 협정문에는 상대국이 요구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조항도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 지난 2017년 3월22일 북한이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일본은 우리의 정보공유 요청을 거부했다. 

‘핫라인’ 없이 당사자가 직접 만나 비밀문서나 USB 등의 매체를 주고받는 식의 정보교환 수단 또한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실제로 협정문에는 정보교환 수단을 비밀문서 및 매체, 비밀장비, 전자전달 등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국방부에 따르면 한일 정보 전달 담당자가 1대1로 만나 문서 등을 교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위급 상황에서 핫라인 없이 양국 담당자가 직접 만나 문서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핫라인을 통한 신속한 정보교환이 어려운데 굳이 미국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정보교환 협정을 맺는 것이 무슨 실속이 있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실제 한미일 3국은 지난 2014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3자 정보공유 약정’을 체결해둔 상태다. 해당 약정이 한일 관계 악화시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설령 지소미아가 파기되더라도 한일 간의 정보공유 채널 자체가 막혀버리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 서명하기 위해 입장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주위로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거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1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한일정보보호협정 서명하기 위해 입장하는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주위로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거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익 관점에서 다양한 검토 필요

전문가들은 대체로 지소미아 파기는 극단적인 선택이며 마지막까지 사용을 보류해야 하는 카드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로 강경대응하기보다는 일본 경제보복의 부당함을 알리며, 한미일 공조 유지를 위한 미국의 중재를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인 전략이라는 것. 

실제 미국은 동아시아 핵심 동맹국인 한일 양국의 협력관계를 대북 공조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지소미아 파기와 관련해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은 지난달 18일(현지 시간) 미국의소리(VOA)를 통해 “양국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를 달성하고 지역 안정 및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섣불리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낼 경우 외교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연구위원은 8일 JTBC를 통해 “지소미아는 한일 양측 모두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사실 미국의 입김에 의해서 된 케이스라고 봐야 될 것”이라며 “일본의 노림수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 협정을 깨버리는 것을 이용해서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라는 인식을 미국 측에 심어주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소미아가 정보제공 의무 조항이 없는 협정이라는 점을 이용해 협정은 연장하되 정보공유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굳이 무리해서 파기 카드를 꺼내기보다는 협정은 연장한 채 일본 측에 공을 넘기라는 것. 일본의 경제보복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대신할 만한 현명한 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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