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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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전두환 신군부가 12, 12 군사 구데타를 앞두고 일본에 사전 양해를 구한 내용이 담긴 문서가 공개됐다. 탐사전문매체 뉴스타파는 일본 외무성이 비밀해제한 1980년 전후 외무성 기록을 12일 공개했다. 이 기록은 1980년 전후 주한일본대사관과 부산총영사관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로 신군부의 동향과 5·18 등을 다뤘다. 

1981년 1월 주한일본대사 스노베 료조(須之部量三, 1977. 7.∼1981. 5. 재임)는 본국 외무대신 앞으로 ‘1980년 한국 내정 회고와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한다. 일 외무성이 공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극비’로 분류됐던 스노베의 자필 기록이다.

스노베 대사는 논문 저자인 박선원 현 국가정보원장 특보(당시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논문을 작성할 때 인터뷰를 통해 1979년 11월 말 보안사 안가에서 당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과 그의 측근인 주일한국대사관 수석공보관 허문도를 비밀리에 만났다고 증언했다. 당시 비밀회동에서 스노베 대사에게 허문도는 전두환이 새로운 체제를 창출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고, 전두환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려는 계획도 미리 알려주었다고 한다.

신군부는 일본의 양해를 구한 뒤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승화 계엄사령관 등 중립 성향의 군 간부를 숙청한다. 6개월 후 5,18 비극을 야기했고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을 밟는다. 스노베 대사는 이 과정에서 신군부를 물밑 지원했다. 이는 개인 차원이 아닌 일본 집권층의 의도를 스노베 대사가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1월 16일 스노베 대사는 관내정세 보고서에서 "권력의 공백 상태가 생겨난 가운데 기성 정치인의 권력 획득을 위한 여러 활동, 민주화의 급속한 변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움직임 등이 ‘흑백논리, 파벌의식, 극한대립’이라는 한국적 정치 풍토의 악폐를 일시에 분출시켜 미증유의 혼란과 대립(5월 중순 학생 데모, 그리고 계속된 광주소요)를 불러왔다. 이상의 정세 혼란과 대립이 결국 5월 17일 군의 정치 개입을 불러온 결과가 되었고…."라고 적었다. 보고의 논지를 보면 전두환 신군부가 주장한 정치 개입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1981년 1월 부산총영사관이 일본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당관 관내 광주에서 5월 18일 발생한 광주소요사건은 민간인 148명, 군인 22명, 경찰 4명 총 17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례에 없는 비극이나 다행히 5월 27일 계엄군의 효과적인 진압으로  질서와 평정을 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라고 5. 18 상황을 설명했다. 계엄군 진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보고한 것이다. 

문서에서 확인된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신군부와 일본은 12, 12 군사 구데타와 5.18, 이후 5공화국 출범까지 밀월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신군부가 거사 계획을 일본에만 알리고 미국을 패싱한 것도 들여다볼 대목이다. 이는 미국이 구데타를 용인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신군부가 미국 대신 일본을 뒷배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사전에 스노베 대사를 접촉해 구데타 계획을 알린 것도 이런 목적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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