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최근 인종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2020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최근 인종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뉴스로드] 2020년 미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민주당 유력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연이은 말실수와 건강문제로 주춤하는 모양새다. 경쟁후보들에 비해 비교적 보수적인 정치성향으로 진성 민주당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인종문제 등과 관련해 연달아 말실수를 저지르면서 자칫 지지율이 역전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 바이든, “가난한 아이도 백인처럼 될 수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8일 아이오와주 데스모인스에 모인 시민들과 만나 교육과 관련해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던 중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이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가난한 아이들도 백인 아이들처럼 똑똑하고 재능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멈춘 뒤 “부유한 아이들, 흑인 아이들, 아시아계 아이들”이라고 덧붙였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곧바로 표현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이 인종차별적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있는 발언이다. 특히 이날 발언은 아이오와주 아시아히스패닉 연합(Asian & Latino Coalition)이라는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더 문제가 됐다. 실제 이 단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다녀간 뒤,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공식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해리스 의원은 지난달 말 TV토론회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과거 인종통합정책을 반대한 이력을 공격해 지지율을 대폭 끌어올린 바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 4일에도 샌디에이고 인근 모금행사에서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건 발생지를 휴스턴과 미시건이라고 말해 논란이 돼기도 했다. 실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곳은 텍사스주 엘파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이다.

8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데스모인스에서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유권자들과 만나 발언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사진=아이오와주 아시아·히스패닉계라티노 연합(Asian & Latino Coalition) 페이스북
8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데스모인스에서 아시아계와 히스패닉계 유권자들과 만나 발언을 하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사진=아이오와주 아시아·히스패닉계라티노 연합(Asian & Latino Coalition) 페이스북

◇ 바이든의 말실수가 치명적인 이유

바이든 전 부통령의 말실수는 일종의 캐릭터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유명하다. 부통령 재직 시절 욕설을 하다 마이크를 통해 노출돼 곤욕을 치른 적이 있으며, 한 공화당 의원을 “비명지르는 돼지”라고 비난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종종 나오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말실수를 ‘인간적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지나치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종종 말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이 친근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최근의 말실수들은 “친근한 바이든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대선 행보에 치명적인 악영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현재 민주당 내에서 중도·보수성향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정치적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2~3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모두 민주당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며 젊은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4위권인 해리스 의원도 유색인종·여성으로서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1~3위 후보보다 비교적 젊은 나이가 강점이다. 

반면 바이든 전 부통령은 중도·보수성향 진성 민주당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다. 그의 보수적 성향은 민주당 경선에서는 상대적인 강점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는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종·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뚜렷한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자칫 반트럼프 성향 유권자의 지지와 참여를 끌어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

최근 민주당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이 독보적인 가운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자료=리얼클리어폴리틱스 홈페이지
최근 민주당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이 독보적인 가운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자료=리얼클리어폴리틱스 홈페이지

◇ 바이든, 강제버스통학제도 반대

바이든 전 부통령은 1970년대 인종통합을 위해 시행된 강제버스통학제도에 반대한 이력이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달 TV토론회에서 해당 사실을 지적받자 “강제적인 정책 시행에 반대한 것뿐”이라며 인종통합에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는 상원 법사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1991년 대법관 후보 클레어런스 토마스의 성추행 혐의를 조사하면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피해자인 아니타 힐 법학교수에 대한 청문회 전후로 토마스가 발언할 기회를 달라는 공화당 측 요청은 수락한 반면, 힐 교수 측 증인은 청문회에 세우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올해 초에는 7명의 여성이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부터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고백해 미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과거 의원 재직 시절부터 연방기금을 낙태시술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하이드 수정안’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것도 여성계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에는 ‘하이드 수정안’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밝혔지만, 당내 경쟁자들보다 뒤처져있다는 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평가다.

결국 바이든 전 부통령의 과거 보수적 발언과 정치적 선택들이 이제 와서 커다란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 당시 정치·사회적 상황에 비추면 보편적이고 정상적이었던 선택들이 많은 부분에서 진보가 이뤄진 현재 유권자들에게는 고루하고 낡은 것으로 비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을 향해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며 “그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그가 후보가 된다면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라고 조롱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보수적 정치성향은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장점으로 꼽혔지만, 연이은 말실수와 겹치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아직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민주당원들의 지지는 확고하지만, 계속해서 보수성향이 부각되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실패한다면 당내 경선 구도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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