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한 시민이 경찰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안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2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한 시민이 경찰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안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홍콩 시위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홍콩 경찰과 시위대가 연일 격렬하게 맞부딪히면서 일각에서는 유혈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태. 이미 지난 11일 한 여성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한쪽 눈을 실명한데다, 12일에는 시위대가 국제공항을 점거하고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시위가 되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분위기다.

문제는 이미 홍콩 정부가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음에도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홍콩 정부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의 입에서 해당 법안은 이미 죽었다는 발언까지 나왔지만 시위대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뉴스로드>는 홍콩 정부가 백기를 들었음에도 시민들이 시위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 '송환법'은 중국의 칼?

홍콩 시민 저항의 시발점이 된 것은 지난 4월부터 시작된 홍콩 정부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 시도다. 홍콩 법원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임신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홍콩인 남성 찬퉁카이(20)에 대해 절도 및 돈세탁 등의 혐의로 겨우 징역 29개월을 선고했다. 살인범이 홍콩인이지만 대만에서 범죄를 저질러 홍콩 내에서는 처벌 근거가 없는데다, 대만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찬퉁카이를 대만으로 인도할 수도 없었기 때문. 

이후 홍콩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에도 사안에 따라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송환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조약이 중국 반체제인사·인권운동가들을 탄압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 지난 2008년 중국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뒤 홍콩교육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미니 리는 지난 6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송환법은) 홍콩 사법체계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다”며 “송환법은 아무도 중국 본토의 법을 위반하는 말과 행동을 감히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백색테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홍콩은 중국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도피처이자 망명을 위한 중간경로 역할을 해왔다. 홍콩 시민단체들 또한 중국 인권문제를 비판하고 중국 내 반체제인사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홍콩의 민주화 세력은 19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탈출한 중국 운동가들을 제3국으로 망명시키는 ‘노랑새 작전’을 주도하며 지도부 핵심 인물들을 포함해 수백명을 탈출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홍콩은 중국의 민주화세력이 중국 바로 곁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근거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송환법이 통과될 경우 홍콩 내 민주화세력에 대한 강력한 위협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송환법을 통해 홍콩의 사법체계에 중국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줄 경우, 사소한 비판 발언조차 중국 본토 송환의 빌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홍콩 여성의 모습을 홍콩의 명보가 보도했다. 사진=명보 캡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홍콩 여성의 모습을 홍콩의 명보가 보도했다. 사진=명보 캡처

◇ 홍콩 정부 송환법 포기에도 시위 계속 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자 홍콩 정부는 결국 송환법 추진을 포기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6월 18일 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환법은 죽었다”며 사실상 법안 추진을 전면 백지화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대의 저항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홍콩 정부의 항복선언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송환법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람 장관은 기자회견 당시 “송환법이 죽었다”며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했지만 법안 폐기라는 구체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다. 과거 홍콩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네이선 로 데모시스토(香港衆志)당 전 의원은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람 장관은 송환법이 공식적으로 철회됐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요청했다. 마찬가지로 우산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인 조슈아 웡 또한 “입법 절차에 따라 홍콩 정부는 내년 7월까지 이 법안을 자유롭게 재가동할 여지가 있다”며 “향후 12개월간 그 위협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 홍콩 입법회 의원들의 임기는 내년 7월에 만료된다.

시위가 계속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 폭력 의혹이다. 지난 11일에는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경찰이 발포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안구가 파열되고 코뼈가 내려앉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음날 홍콩 시위대는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의미로 검은 안대를 두른 채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했다. 12일에는 홍콩 경찰이 시위대로 위장한 경찰의 잠복근무 사실을 시인하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은 시위 진압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진압 과정에서의 폭력 행사에 대한 독립 기관의 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나, 홍콩 정부는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콩대학교가 지난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18~29세 응답자 중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는 겨우 9%에 불과했다.
홍콩대학교가 지난 6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18~29세 응답자 중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는 겨우 9%에 불과했다.

◇ 홍콩 젊은층 반중정서가 시위 동력

송환법 사태가 촉발한 반중정서도 홍콩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는 원인 중 하나다. 중국은 홍콩 반환 이후 현재까지 ‘일국양제’ 원칙에 따라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 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 선거는 여전히 간선제로 치러지고 있으며, 홍콩 의회인 입법회도 친중파 의원들이 장악하고 있어, 홍콩이 중국 정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을 단순한 법안이 아니라 일국양제 원칙을 파기하고 홍콩을 완전히 중국 정부의 행정·사법적 영향력 아래 귀속시키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실제 홍콩대학교가 지난 6월 17~20일 18세 이상 홍콩 시민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경우는 겨우 11%, ‘홍콩에 사는 중국인’은 12%에 불과했다. 반면 홍콩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3%로     지난해 말 40%에서 크게 상승했다. 또한 “중국인인 것이 자랑스러운가”라는 질문에도 “아니다”(71%)라고 답한 응답자가 “그렇다”(27%)의 세배로 집계됐다. 중국 정부의 홍콩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도 긍정(23%)보다 부정(53%)이 두 배 이상 높았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젊은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산혁명을 주도했던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는 2014년 당시 겨우 17세, 21세에 불과했다.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이 큰 홍콩의 젊은층은 장년층에 비해 스스로를 ‘홍콩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홍콩대학교 조사 결과, 18세~29세 중 “중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답한 것은 겨우 9%에 불과했다. 중국 정부의 홍콩정책에 대해서도 부정평가가 71%에 달했다. 

현재 홍콩 시위를 젊은 사회운동가들과 대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는 데다, 이들이 송환법을 홍콩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를 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시위대가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며 연일 강경한 발언으로 시위대를 자극하고 있다. 게다가 대표적 친중파로 여겨지는 캐리 람 행정장관 또한 사퇴를 거부하고 있어, 홍콩을 둘러싼 시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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