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진=유튜브 채널 '이승만TV' 영상 캡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진=유튜브 채널 '이승만TV' 영상 캡처

[뉴스로드]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의 프롤로그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프롤로그에서 이 전 교수는 한국이 얼마나 거짓말로 가득 찬 사회인지를 강조하기 위해 위증죄, 무고, 보험사기, 민사소송 건수 등을 나열한다. 이어 이 전 교수는 세계적인 조사 결과를 봐도 한국이 ‘저신뢰 사회’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래는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 첫 두 문단의 내용이다.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입니다. 일본에 비해 172배라고 합니다.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430배나 됩니다.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무고 건수는 500배라고 합니다.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입니다. 보험사기가 만연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 자동차보험, 생명보험, 손해보험, 의료보험 등 보험사기의 총액은 4조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느 경제신문은 미국의 100배라고 했습니다. 민간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금도 사기에 의해 줄줄 새고 있습니다. 2018년 국정감사 때 밝혀진 일입니다만, 지적 재산권에 대한 정부지원금의 33%가 사기에 의한 지급이었습니다.

거짓말과 사기가 난무하니 사회적 신뢰의 수준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세계 70여 국가가 참가하는 세계가치관 조사에서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은 1985년에만 해도 38%였습니다. 그것이 2010년 26%로 줄곧 낮아졌습니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한국은 국제적 비교에서 저신뢰 사회에 속합니다. 서로 믿지 못하니 각종 소송이 난무합니다. 어느 사회운동가는 한국의 1인당 민사소송 건수가 세계 최고라고 탄식했습니다. 나라마다 사법제도가 달라 객관적인 비교는 어렵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사실인 듯 합니다. 이런 이야기에 대다수 한국인은 수긍하는 분위기입니다. 왜냐고요? 그런 사회에서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 교수의 주장에는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으나 "한국은 거짓말 문화에 지배당하는 저신뢰 사회"라는 주장에는 상당한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국이 위증이나 민사소송 건수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세계 최고의 거짓말 국가라는 주장의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보험사기나 신뢰수준에 대한 지적은 실제 통계적 수치와 완전히 어긋난다. <뉴스로드>는 한국이 세계적인 거짓말 문화를 가지고 있어 사회적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는 이 전 교수의 주장을 검증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 첫 페이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 첫 페이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위증·사기 난무하는 거짓말 국가? 사법체계 특수성 고려하지 않은 단순 해석

위증죄의 경우 한국이 일본보다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위증죄 발생 건수는 2212건, 검거 건수는 1977건, 검거인원은 2983명이다. 반면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위증죄 발생 건수는 8건, 검거 건수는 6건, 검거 인원은 5명이다. 굳이 인구 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국의 위증죄 건수가 일본보다 200~300배나 많다.

문제는 1년에 겨우 위증죄 6건이 검거된다는 일본 경찰청의 통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2007년 발표한 ‘위증방지를 위한 방안연구’ 보고서에서 “일본의 경우 위증죄에 대해 벌금형 규정이 없어 약식기소되는 경우도 없다”며 “일본의 경우 위증죄는 사실상 사라져가는 범죄”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위증죄에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약식기소도 가능하다. 한국의 위증죄 발생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차이가 한국의 거짓말 문화 때문이라는 것은 양국의 사법체계 특징을 고려하지 못한 논리적 비약이다.

지난 2016년 한 일본 경제잡지에서 한국을 세계 제일의 ‘사기대국’이라고 비난하며 이 전 교수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4만1523건. 같은 기간 국내에서 발생한 사기범죄는 24만4008건(검찰청 통계)으로 약 6배 가량 많은 수준이었다. 한국이 많기는 하지만 해당 잡지의 주장처럼 수십 배의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사기죄 발생 건수가 이처럼 차이나는 것은 위증죄와 마찬가지로 양국 사법체계 및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동희 경찰대 교수는 당시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사기라는 게 고소사건이 많다. 그런데 실제 죄가 되는지 수사해보면 검찰에서 기소까지 가는 비율은 20%가 채 안 된다”며 “(일본은) 법적으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소제도가 있지만, 실무에서 일본은 (고소장을) 잘 받아주지 않는다. 증거가 충분히 기소될 정도로 입증이 되어서 들고 오지 않으면 조사를 더 진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위증이나 사기 등의 범죄에 있어서 한일 양국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거짓말 문화'라는 추상적인 이유보다는 양국 사법체계 및 사법문화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한 채 한국을 세계적인 거짓말 국가라고 지칭한 이 전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 연방수사국(FBI)연 연간 보험사기 규모를 약 4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미 연방수사국 홈페이지
미 연방수사국(FBI)연 연간 보험사기 규모를 약 4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미 연방수사국 홈페이지

◇ 보험사기 총액이 미국의 100배, 사실과 달라

2014년 기준 보험사기 총액이 4조5000억원으로 미국의 100배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국내 보험사기 규모에 대한 이 전 교수의 설명은 맞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연 평균 보험사기 규모는 약 4조5000억원으로 이 전 교수가 제시한 수치와 일치한다. 

게다가 보험사기 규모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금감원이 지난 2011년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보험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보험사기로 인한 재정손실(추정)은 약 3조4105억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금감원이 추정한 2011년 보험사기 규모는 약 5조4568억원. 2017년 금감원이 다시 보험연구원에 연구를 의뢰해 조사한 결과 보험사기 추정액은 다시 약 6조2000억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보험사기 규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특이할 정도로 크다거나, “미국의 100배”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데니스 제이 전미 보험사기방지협회 총괄 상무는 지난 2015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보험사기 규모만 연간 800억 달러에 달할 것”이고 추정한 바 있다. 이는 당시 환율로 약 89조원에 달하며, 이 전 교수가 제시한 4.5조원의 약 20배에 달하는 수치다. 

미 연방수사국(FBI) 또한 매년 보험사기 규모를 약 40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비록 제이 총괄 상무의 추정치보다 절반 가량 적지만, 이 역시 보험연구원 추정치의 10배에 달한다. 미국과 한국의 인구가 약 6배 차이가 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1인당 보험사기 규모도 한국이 더 작다. 

유럽은 어떨까? 유럽 각국 보험협회의 연합체인 유럽보험협회(Insurance Europe)에 따르면 유럽의 보험사기 규모는 전체 지급액의 약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의 5.7%보다 높은 수치다. 물론 개별 국가들 중 한국보다 보험사기 규모가 작은 국가들도 존재한다. 영국은 보험사기로 인한 누수액이 매년 19억 파운드(현재 환율 기준 한화 2.8조원)에 달한다. 물론 우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한국이 특이사례로 여겨질 정도의 차이는 아니다. 

◇ 민사소송 건수 많은 이유는 비용 문제 때문

한국의 1인당 민사소송 건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주장은 사실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실제 한국의 민사소송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08년 408만33건이었던 민사소송은 2017년 482만6944건으로 약 20% 증가했다. 이에 따라 법관들의 부담도 상당히 늘어났다. 대법원에 따르면 판사 1인당 재판량은 2011년 589건에서 2014년 609건으로 20건 늘어났다. 이는 미국 연방법원 416건, 독일 210건, 일본 353건 (이상 2012년 기준)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문제는 단순히 민사소송 건수가 많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하고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민사소송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민사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이 지난 2017년 발표한 ‘기업환경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재판 접수부터 종결에 이르는 기간은 한국이 평균 290일로 일본(360일), 미국(420일), 독일(499일) 등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짧았다. 비용 또한 소송 목적 가액 대비 12.7%로 일본(23.4%), 미국(30.5%), 독일(14.4%)보다 낮았다. 

즉, 한국에서는 민사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민사소송 건수를 한국 사회의 저신뢰를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것은 무리수에 가깝다. 

2010년 세계가치관조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긍정, 부정 답변 비율. 자료=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2010년 세계가치관조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미일 3국의 긍정, 부정 답변 비율. 자료=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

◇ 한국은 저신뢰사회? 일본보다 신뢰도 높아...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 한국 사회의 신뢰 수준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는 이 전 교수의 지적은 맞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Most people can be trusted)에 한국 응답자들이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이 26%라는 언급도, 이 수치가 다인종사회인 미국(34.8%) 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맞다.

문제는 이 전 교수가 한국의 긍정 답변 비율이 조사대상 국가 중 몇 번째인지를 숨긴 채 비율만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 답변한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네덜란드 66.1%였으며 중국 60.3%, 스웨덴 60.1% 등의 순이었다. 한국의 26.5%는 60개 국가 중 21번째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체 평균도 23.8%로 한국은 이보다 2.7%p 가량 높다. 한국 사회의 신뢰수준은 조사 대상 국가 중에서는 평균 이상으로 다른 국가보다 저신뢰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해당 질문에 대해 일본은 35.9%가 긍정적으로 답해 13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일본이 한국보다 고신뢰 사회인 것일까? 여기에도 함정이 숨어있다. 세계가치관조사는 해당 국가의 사회적 신뢰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Most people can be trusted)라는 질문 외에도 가족과 이웃,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를 함께 조사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긍정적 답변 비율만으로 해당 국가의 신뢰 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굳이 이 중 해당 국가의 실제 신뢰수준을 파악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르자면 “처음 보는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2010년 기준 한국은 해당 질문에 긍정 답변한 비율이 19.0%로 60개 국가 중 33위였다. 반면 일본은 겨우 8.8%로 60개 국가 중 5번째로 낮았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 일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저서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 일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 논리에 내재된 허구성

한국 사회가 거짓말 문화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이 전 교수의 주장은 학문의 영역으로 이어진다.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에서 이 전 교수는 “이 나라의 국민이 거짓말을 일삼고,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게 된 것은 이 나라의 거짓말하는 학문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한국 사학 및 사회과학계를 비판한다. 이 전 교수는 “이 나라의 역사학이나 사회학은 거짓말의 온상”이라며 “거짓말은 주로 20세기 들어 일본이 이 땅을 지배한 역사와 관련해 거칠 것 없이 횡행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반일종족주의’의 프롤로그는 식민지 시기 수탈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하느냐를 두고 자신의 시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활용한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이다”라는 주장이 온통 잘못된 근거와 일차원적인 통계비교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은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거짓 학문이 거짓 문화, 거짓 정치를 낳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자료로 거짓 근거를 만들어낸 것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의 기반을 스스로 파헤친 것과 다름없다. 거짓 학문의 큰 책임을 지적한 이 전 교수는 먼저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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