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역에서
파주역에서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8.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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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실, 모라비아 시골 어느 간이역
이종실, 모라비아 시골 어느 간이역

 


당신은 기차가 온다고 하고
나는 기차가 간다고 합니다.

온다는 기차와 간다는 기차 사이에 
파주역이 있는 건가요.

기차의 뒤를 따라가는 기찻길
아지랑이가 봉긋 기적처럼 퍼지고,

봄바람이 불어 나무줄기는 
정갈한 초록무늬를 퍼뜨립니다.

간 기차는 다시 오고
온 기차는 다시 가는
파주역,

당신이 기차가 온다고 하거나
내가 기차가 간다고 하거나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당신과 나는 파주역이 보이는 카페에 있습니다. 당신은 기차를 '간다'고 하고 나는 ‘온다’고 합니다.

노자老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미를 아름답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추악의 관념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 선을 착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불선의 관념이 나타나게 됩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도덕경 제2장)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절대선, 절대악은 없다는 말일 수도 있고 자기만이 완벽하다고 고집하지 말라는 뜻도 되겠지요. 자기만이 최고, 절대, 완벽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포함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했는지 우리는 종교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전쟁, 민족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역사만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선거 때 상대의 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대화를 하다가 생각이나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와 언성을 높이거나 아예 등진 사람도 있습니다. 대부분 ‘차이와 다름’을 ‘나쁨과 좋음’으로 잘못 인식해서 그렇기도 하고, 서로의 ‘차이와 다름’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파주역 가차는 시간에 맞춰 오고 가고, 가고 오기를 반복합니다. 당신과 내가 마주보고 있으니 당신에게 '오고 가는' 기차가 나에게는. '가고 오는' 기차가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러니 기차가 '간다'고 하는 당신이나 '온다'고 하는 나는 결국  같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표현한 것뿐이겠지요.

‘당신이 기차가 온다고 하거나/내가 기차가 간다고 하거나/그 말이 그 말입니다.’

파주역을 기차는 가고 오고, 오고 갑니다. 당신과 나는 그런 기차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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