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 이육사는 의열단 비밀요원이었다”
― 고은주 장편소설 『그 남자 264』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때 눈여겨보게 되는 사항이 있다. 고증이 제대로 되었는가. 그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는가. 
소설의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 요소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인물일수록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 잘못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은주 장편소설 『그 남자 264』에 나오는 이육사 시인도 행적이나 일화가 많이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이육사 시인에 대한 소설이 한 편도 나오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확실한 근거를 토대로 타당한 가능성을 곁들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육사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인물은 서울 종로 뒷골목에서 동해서점을 운영하는 여성. 육사의 절친이었던 신석초 시인이 육사에게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고 발언한 점과 “먼 발치에서 그 여성을 바라다본 일이 있다”고 한 말에 근거해서 설정된 인물이다.

이 여성은 우연히 서점에 들른 육사를 만나 그를 연모하게 되는 걸로 그려진다. ‘그 남자, 이육사가 나의 골방에 들어섰을 때부터 그 방은 내게 감옥이 되었다. 나는 그의 이름으로부터, 목소리로부터, 눈빛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수인이 되었다. 그가 내게 한 발자국만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이 대목이 그녀의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 

이육사가 이 여성과 어떤 관계로 발전할지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육사에 대해 모르고 있었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은 이육사가 의열단 단원으로 암약했었다는 것. 육사는 나라 잃은 슬픔에 빠져 울분과 번뇌로 삶을 탕진했던 그 시대의 유약한 문인들과 달랐다. 그는 펜으로 항거하는 데 한계를 느낄 때는 직접 총을 들었던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밀하게 행동했어야 했을 것이고, 그의 행적 또한 베일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유효적절하게 배치한 육사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이 소설에서 얻게 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이 절묘한 구성은 작품의 이해와 감상을 도우면서 동시에 육사의 삶이 그 작품들과 어떻게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탐색하게 해준다. 

1940년 1월에 발표된 「절정」에서부터 그의 시가 단단한 저항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점, 육사가 「청포도」를 쓸 때의 절박했던 심정, 또 「광야」의 ‘광’ 자가 ‘넓을 광(廣)’이 아니라 ‘빌 광(曠)’이라는 사실 등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사항들을 자세히 알게 해주는 부분도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육사의 뜨거운 생애를 다루면서도 과장과 흥분을 배제한 절제된 표현으로 육사를 에워싼 상황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작가가 압축해서 서술하고 밀도 있게 묘사한 부분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육사와 더 가까이 만나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게 해준다.

그의 삶과 문학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장면들은 동해서점을 운영하는 여성의 기록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 기록은 그녀의 조카에게 전해지고, 조카는 이 원고를 들고 실존 인물인 육사의 따님 이옥비 여사를 만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구성은 육사의 족적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지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던 걸출한 민족시인 이육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끝까지 일제의 탄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결기 있게 맞서다 순국한 이육사의 뜨거운 영혼을 우리 가슴에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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