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공화당 내 지지도가 94%인 나를 상대로 3명의 들러리들이 도전한다는 사실이 믿어집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진 경쟁자들에 대해 ‘들러리’라고 표현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이 발언은 매번 트럼프와의 가상대결에서 10% 내외의 격차를 보이며 이겨온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개혁정책을 내세워 인기몰이 중인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유력 후보 3인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발언은 바로 공화당 내에서 경선 참여를 선언했거나 검토 중인 경쟁자들에게 한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에서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주된 관심도 트럼프에 대항할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될 것이냐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경선에 나서겠다는 후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뉴스로드>는 비교적 국내 언론의 조명을 덜 받은 공화당 내 트럼프 대항마들에 대해 알아봤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 조 월시·빌 웰드·마크 샌퍼드, 경선 출마 선언

현재까지 공화당에서 당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조 월시 전 하원의원(일리노이)과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두 명뿐이다. 민주당에서 약 20명의 후보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에 비하면 후보군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 이 밖에도 마크 샌포드 하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이 경선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도전장을 던진 것은 웰드 전 주지사다. 웰드 전 주지사는 지난 4월 15일 성명을 내고 “모두에게 평등과 존엄, 기회를 보장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며 “나는 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경선 참여 의사를 밝혔다. 검사 출신인 웰드 전 주지사는 지난 1986년 레이건 정부 시절 법무부 형사처장을 지냈으며, 이후 1991년~1997년 매사추체츠 주지사를 역임했다. 

월시 전 의원의 경선 출마 선언은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지난 25일 ABC방송을 통해 경선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월시 전 의원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며 트럼프를 대신해 공화당을 대표하겠다고 말했다.

샌포드 의원은 아직 공식 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경선 출마가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4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하원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115번째 주지사로 당선, 2006년 주지사 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했다. 2009년 아르헨티나 여성과의 불륜 스캔들로 정치적 위기를 겪은 샌포드 의원은 2013년 텃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재선거에 출마해 하원으로 되돌아온 상태다.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사진=연합뉴스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사진=연합뉴스

◇ '네버 트럼퍼'의 외침, “공화당의 정상화”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 경쟁자 3인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공화당의 정상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통적인 공화당의 정책기조 및 가치관에 맞지 않는 돌연변이 같은 인물이며, 트럼프에 의해 변질된 공화당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경선에 출마했다고 밝히고 있다.

웰드 전 주지사는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을 ‘리노’(RINO, Republican in name only), 이름뿐인 공화당원이라고 비판하며 그가 공화당의 가치와 철학에 위배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한때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였던 월시 전 의원 또한 25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내가 트럼프의 당선을 도왔다”며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고 후회의 심경을 밝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공화당의 철학과 다른 행보로 많은 진성 공화당원들의 우려를 샀다. 무엇보다도 자유무역과 시장에 의한 조정,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의 보수적 정책기조와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주의적 무역정책과 양적완화를 위한 과도한 개입 등 독특한 경제정책을 펴왔다. 기존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중국을 비롯해 대미 무역흑자국에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은 공화당 후보라기보다는 오히려 샌더스나 워런 등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 성향의 후보와 비슷하다.

실제 웰드 전 주지사는 “트럼프는 경제적 차원에서 보수주의자로 볼 수 없다”며 과도한 재정확대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웰드 전 주지사는 “미국은 재정긴축 등 보수적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며, “나도 21차례나 세금을 내린 바 있지만, 동시에 재정지출도 줄였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 정부와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당선 이후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칭찬을 늘어놓는 등 공화당이 전통적인 외교상의 라이벌로 여겨온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다. 북한과의 협상과정에서 돌발적인 강경 발언을 하거나, 최근에는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는 등 즉흥적으로 외교·안보 상의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기존 공화당의 외교관과 배치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대중의 기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인종, 여성, 낙태, 이주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한 문제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조 월시 전 하원의원. 사진=연합뉴스
조 월시 전 하원의원. 사진=연합뉴스

◇ 트럼프 지지층 견고, 일부 공화당원 비판적 시각도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탈선한 열차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월시 전 의원과 웰드 전 주지사가 공화당의 정상화를 외치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보여온 행보에 대해 전통적인 공화당원들이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반영한 결과다. 

문제는 공화당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이들의 주장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우선 웰드 전 주지사의 경우 “나는 예산의 균형을 중시하는 진짜 공화당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지만, 공화당 지지층이 웰드의 비판에 공감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8월 미국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여론조사업체 ‘해리스엑스폴링컴퍼니’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연방재정적자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화당원의 79%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월시 전 의원의 경우 ‘트럼피즘’(Trumpism)의 수정을 외치고 있지만, 그도 트럼프 못지 않게 문제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걸린다. 월시 전 의원은 지난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슬람교도라는 음모론을 주장한 바 있으며, 시위 중 저격수에 의해 댈러스 경찰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제 전쟁이다. 오바마는 조심하라”는 발언을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2017년에는 “오바마는 흑인이라서 낮은 기준을 적용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도 수 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트럼프는 우리(공화당) 중에서 절대적으로 최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의 차별점을 부각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료=입소스
지난 8월 26~27일 트럼프 정부 국정지지율 조사 결과. 자료=입소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트럼프의 우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로이터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 26~27일 1115명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국정지지율은 무려 83%로 집계됐다. 트럼프 본인이 주장한 94%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른 경쟁자들이 도전장을 내밀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이 너무 견고하다. 

결국 ‘공화당의 정상화’는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자들이 꿈꾸는 ‘정상적인 공화당’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아틀란틱은 최근 공화당 내 경선 구도를 분석하는 기사에서 “네버트럼퍼(Never Trumper, 공화당 내 트럼프 비토층)들과 달리  대부분의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대안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들의 도전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제기했다. 워싱턴포스트(WP) 또한 ‘네버트럼퍼’의 표가 웰드 전 주지사와 월시 전 의원으로 양분될 것이라며 “조 월시의 경선 도전은 오히려 트럼프를 도와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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