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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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투기심리를 조장해 금융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기행위다” VS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벤처기업들의 자금 조달 경로를 틀어막아서는 안된다”

암호화폐공개(ICO)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의 문제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논쟁거리다. 반대 측에서는 ICO의 위험성이 막대한 금융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실제 신규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투자자를 모집하는 ICO가 일부 금융범죄자들에 의해 악용되면서, 암호화폐 개발업체가 투자금만 모은 뒤 잠적하거나 부실한 암호화폐를 상장시키고 방치하는 등의 피해가 다수 발생해왔다.

반면 일부 ICO 사기 사례로 인해 건전한 벤처기업들의 사업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는 ICO 지지론도 여전하다. 사업역량과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에게 ICO는 효과적인 자금조달처이기 때문. 이 때문에 ICO 지지자들은 정부가 ‘전면 금지’가 아닌 ‘적극적 개입’으로 태도를 바꾸기를 요청하고 있다. 촘촘한 규제를 통해 사기성 ICO를 걸러낼 수 있다면 금융피해 방지와 블록체인 산업 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ICO 규제와 관련된 논쟁은 암호화폐 열기가 한풀 꺾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뉴스로드>는 암호화폐 거래 비중이 높은 해외 주요 국가들의 ICO 규제 현황을 알아봤다.

◇ 암호화폐공개(ICO)란?

암호화폐공개(ICO)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계획을 공개해 자금을 공급해줄 투자자를 모집하고 보상으로 암호화폐나 토큰을 지급하는 자금모집행위를 의미한다. 블록체인 업계 외에도 벤처기업들이 흔히 이용하는 ‘크라우드펀딩’과 유사한 자금모집방식으로, 기업공개(IPO)와 달리 증권규제로 인한 비용 없이 신속하게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암호화폐 업계의 표준적인 자금모집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ICO가 증권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이 꼭 장점만은 아니다. 실체가 명확한 주관사가 공개된 회사의 실적을 기초로 자금을 모으는 IPO와 달리, ICO는 구체적인 실적 없이 사업계획만을 통해 자금을 모은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매우 높다. ICO와 마찬가지로 증권규제 없이 자금을 모집하는 일반적인 크라우드펀딩의 경우도 실물제품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다 중개자와 발행인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ICO보다는 안전한 자금모집 방식이다. 

이처럼 위험성이 높은 ICO를 아무런 규제장치 없이 방치한다는 것은 사실상 금융사기를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ICO에 대해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규제를 적용하거나, 아예 금지하고 있다.

◇ 적극적 규제 나선 미국

암호화폐 최대 거래국인 미국은 ICO를 허용하면서 적극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ICO에 대해 각 사안별로 증권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당시 SEC는 2016년 발생한 DAO 해킹사태와 관련해 DAO 토큰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발표하고, DAO가 ICO를 통해 DAO 토큰을 발행한 것은 미국 증권법 상 투자계약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즉, ICO가 투자계약으로 판단될 경우 증권규제가 적용될 수 있음을 선언한 것. SEC의 발표 이후, 암호화폐 업체들은 준비 중인 ICO가 DAO 사례와 마찬가지로 SEC에 의해 투자계약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는 암호화폐 업체가 스스로 증권규제를 준수하고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다.

SEC는 암호화폐 개발업체의 자발적인 규제 준수에만 기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위험성이 큰 ICO 사례에 개입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지난해 8월 SEC는 뉴욕연방법원으로부터 암호화폐 개발업체 플렉스의 공동창업자 도미닉 라크로아에 대한 긴급자산동결명령을 받아 집행한 바 있다. 라크로아가 상습적인 증권법 위반자이며, ICO를 통해 모은 15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용했다고 판단한 것. 이처럼 SEC는 피해가 발생하기 전 위험성이 높은 ICO에 직접 개입해 투자자 보호에 앞장서는 한편, 건전한 ICO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 

◇ 친(親)ICO 국가, 일본

일본은 ICO를 허용하면서도 상당히 완화된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미국보다 더 ICO에 친화적인 국가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14년 발생한 마운트곡스 해킹사태를 겪으며 암호화폐의 위험성을 제대로 실감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마운트곡스 사태 2년 뒤인 2016년 일본은 ‘가상통화’의 정의 및 교환업자의 등록·감사·감독 의무를 규정한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체계를 마련했다.

이어 2017년 10월 일본 금융청은 ICO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주의문을 통해 ICO를 정부의 규제시스템 안으로 포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주의문은 ICO를 통해 발행되는 토큰이 자금결제법 상 ‘가상통화’로 인정될 경우, 발행주체가 정부의 등록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금융청은 ICO를 통해 발행되는 토큰이 투자의 성격을 지닌 금융상품으로 인정될 경우 금융상품거래법 또한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제는 자금결제법 개정안이 ICO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법안이 아니라는 것. ‘가상통화’의 정의와 교환업자의 등록 의무 등을 규정한 법안으로 ICO의 위험성을 통제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한 자금결제법의 적용 범위도 ‘가상통화’의 정의에 대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사실상 실질적인 규제 없이 ICO를 허용하는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 금융위 “ICO 허용은 시기 상조”

적극적으로 ICO를 규제하는 미국이나 사실상 ICO를 방임 중인 일본과 달리, 한국은 ICO의 위험성을 인식해 전면 금지하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련 기관은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열고 증권발행 형식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금융위는 “ICO를 앞세워 투자를 유도하는 유사수신 등 사기위험 증가, 투기수요 증가로 인한 시장과열 및 소비자피해 확대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ICO 금지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처럼 ICO를 전면 금지한 국가로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지난 2017년 9월 ‘ICO 자금조달 위험방지에 관한 공고’를 통해 중국 내 ICO 관련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ICO를 통해 얻은 수익이 있을 경우 모두 반환하도록 고 암호화폐를 법정통화로 전환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ICO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처럼 국가별로 상이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ICO가 다시 허용될 확률은 매우 낮다. 이미 ICO 사기로 인해 막대한 금융피해가 발생한 사례가 많은 데다, 그로 인해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지면서 ICO가 자금조달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 ICO 관련 데이터 분석업체 ‘ICO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총 83회의 ICO가 시행되 총 3.4억달러가 모집됐는데, 이는 지난해 6월 ICO를 통해 모집된 금액(9억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CNBC에서 암호화폐 관련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암호화폐 전문가 란 노이너 또한 지난 6월 트위터를 통해 “ICO는 죽었다”고 단언한 바 있다. 

ICO 금지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도 확고하다. 은성수 신임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암호화폐가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가능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ICO 금지를 결정한 기존 금융당국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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