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 등 2차대전 때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지난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나치의 학살이 자행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홀로코스트 등 2차대전 때 인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폴란드인) 아무도 독일을 욕하지 않는 거야. 왜? 힘이 없는 놈이 독일한테 계속 앙알거리고 버텨봐야 어린이가 어른한테 발길질로 한 대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는 그런 꼴이 된다 이거야." 

위는 지난달 26일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가 보은군이장단협의회 워크숍에서 200여명의 이장들을 모아놓고 한 발언이다. 정 군수는 이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들여온 돈 5억 달러가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하며, 일본에 배상을 재차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 군수가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로 든 것은 다른 피해국들의 사례였다. 독일 침략의 피해국 폴란드를 예로 든 정 군수는 폴란드가 독일과의 국력 차이를 고려해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며 “(폴란드는) 그런 무식한 짓(배상요구)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침략의 피해국들에 대해서도 “위안부 그거 한국만 한 것 아니다. 중국도 하고 필리핀도 하고 동남아도 다 했다. 그런데 일본이 다른 나라에 무슨 배상 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한국엔 5억불을 줬다”며 한국이 유일하게 일본에게 배상을 받은 국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등의 피해국가들은 일본·독일 등 추축국들로부터 배상을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을까? <뉴스로드>는 정 군수 주장의 진위를 알아봤다.

◇ 폴란드, 종전 후 독일로부터 영토 할양, 차관 등 배상 받아

결론부터 말하자만 정 군수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우선 폴란드의 경우 종전 이후 독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자금과 영토를 배상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추가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폴란드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체 인구의16%인 약 6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최대 피해국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침략국인 독일의 사과와 배상 문제는 폴란드에게 있어 매우 예민한 이슈다. 전후 초반은 정 군수의 주장처럼 폴란드도 독일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종전 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분리돼있던 당시,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폴란드 정부는 1953년 소련과 동독의 배상면제협정에 따라 동독으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포기했다. 냉전 구도 하에서 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여진 폴란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정 군수의 발언처럼 폴란드가 배상을 스스로 포기했다기보다는 포기하도록 강제됐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다.

게다가 배상을 포기했다고 해도 폴란드가 독일로부터 얻은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배상면제협정에서 나치의 억압과 잔학 행위에 대한 배상은 예외로 했기 때문. 또한 전쟁 중 독일에 의해 강탈당한 영토에 더해 동독 영토 일부를 할양받았다. 승전국인 소련이 점유한 폴란드 영토 일부가 전후에도 그대로 소련에 귀속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 결과 독일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 지류의 동부에 속한 독일 영토가 폴란드에 귀속되면서 오데르-나이세 선으로 폴란드-동독 국경이 확정됐다.

이후 서독과 폴란드 간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배상’이라는 명칭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금전적인 배상이 이뤄졌다.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세워진 전쟁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전쟁피해에 대해 사과했고, 양국은 ‘바르샤바 조약’을 체결하며 영토 분쟁을 해결하고 오데르-나이세 강을 양국 국경으로 하는데 합의했다. 또한 1975년 차관 10억 마르크 및 강제노역에 동원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의 연금 청구 상쇄 명목으로 13억 마르크를 제공하는 등 경제적 지원도 약속했다. 

◇ 강제노역 동원자 개인청구권 문제, 정부·기업 기금 조성으로 해결

하지만 독일의 배상이 모두 순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서독 또한 일본처럼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부정하며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 실제 1963년 강제노역에 동원된 한 폴란드인이 서독 정부에 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1953년 서독이 서방 국가들과 맺은 런던채무협약을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런던채무협약은 소련과 동독이 맺은 배상면제협정과 비슷하게 서독의 배상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폭스바겐, 지멘스, 바이엘 등 나치의 강제노역으로 수혜를 입은 기업들의 과거가 밝혀지고, 국제적으로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이 일어나자 독일 정부도 더 이상 배상책임을 부정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통일 후 독일은 2000년 정부와 기업이 각각 26억 유로를 출연해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설립하고 나치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 나섰다. 강제수용소 수감자에게 7670유로(약 990만원), 거주지에서 추방된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2560유로(약 330만원)가 지급됐으며, 폴란드의 경우 강제노역 피해자 48만명이 9억8000만 유로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 끝나지 않은 폴란드의 배상 논쟁

이 밖에도 독일 정부는 지난 1970년 브란트 총리의 바르샤바 방문 이후 반복해서 전쟁 피해에 대해 폴란드에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지난 1일 폴란드 중부 비엘룬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비엘룬 공격의 희생자와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 또한 지난달 1일 바르샤바에서 열린 바르샤바 봉기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용서를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내에서는 여전히 독일이 배상책임을 온전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 의회는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 주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의한 피해 배상금을 약 8500억 유로(약 1100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당시 피해 배상금 평가팀장이었던 아르카디우시 무라르치크 의원은 “독일이 폴란드를 6년간 점령하는 동안 600만 명의 국민이 살해당하고 엄청난 물질적 손실이 생겼다”며 “우리는 도시와 마을 파괴와 인구통계학적인 잠재력의 손실 등에 대한 정당한 보상액 규모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독일은 이에 대해 1953년 배상면제협정 및 1990년 통일 당시 지급한 1억5000만 마르크의 배상금을 이유로 더 이상의 배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폴란드는 1935년 배상면제협정은 소련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무효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은 폴란드에 대해 반복된 사과와 배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상책임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폴란드가 독일과의 국력 차이를 의식해 배상을 일부러 포기했다며, 배상 요구가 ‘무식한 짓’이라고 비난한 정 군수의 발언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반면 일본은 독일처럼 반복된 사과를 밝히기는커녕 전쟁범죄를 인정한 고노 담화 등 기존 입장을 뒤집은채 배상책임은 이미 다 이행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등 경제보복에 나선 상태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 노력을 기울이는 독일과 사과도 배상도 없이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일본을 동일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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