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29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 오사카에서 양자 정상회담에 앞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6월29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일본 오사카에서 양자 정상회담에 앞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내가 선거에서 이긴다면 과연 중국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라. 협상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 동안 중국의 공급망은 붕괴되고 기업과 일자리, 자금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내년 말 재선을 노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빠른 시일 내에 무역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재선 이후 더욱 가혹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대선 승리를 가정하고 엄포를 놓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은 오히려 조급하고 여유가 없어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가상 맞대결에서 매번 10% 내외의 패배를 맞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중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은 지지율 상승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는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예측 가능한 상대가 당선되기를 기다리며 장기전을 준비할 수 있다. 중국이 특유의 ‘만만디’ 전략을 펼수록 대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트럼프 정부로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다는 것.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 美 제조업 부진, 무역전쟁 새 변수

“우리는 중국과의 협상을 매우 잘 해나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연간 6천억 달러 규모의 도둑질(ripoff)을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행정부를 상대하고 싶겠지만, 일자리와 기업들을 희생시키기에 (내년 대선까지 남은) 16개월은 너무 긴 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게 빠른 결단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길어질수록 중국 경제는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기축통화인 달러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은 허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에게도 큰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8월 미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7월(51.2)보다 하락한 49.1을 기록한 반면, 중국의 8월 차이신(財新) 제조업 PMI는 50.4로 전월(49.9) 대비 0.5p 상승했다. 장기 추세를 봐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지난해 7월부터 하락세를 보였던 중국 제조업 PMI는 올해 1월 최저치를 기록한 뒤 반등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 제조업 PMI의 경우 지난해 7월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PMI는 제조업체의 구매담당자들이 현재, 또는 향후 경기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구매담당직원은 자회사의 실적 데이터에 남들보다 먼저 접근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향후 경기 추이를 판단해 원자재 구입량을 조절한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 PMI는 경기전망을 판단하는데 핵심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PMI는 50 이상일 경우 경기 확장, 이하일 경우 경기 위축을 의미하는데, 지난달 미국 제조업 PMI가 49.1이라는 것은 미국 제조업 종사자들의 경기 전망이 어둡게 보고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도 무역전쟁이 계속될 경우 미국 경기가 둔화될 위험이 크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UBS의 세스 카펜터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를 발표하자 “이 조치로 인해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며 “그 결과 투자 및 가계지출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카펜터는 추가 관세 조치가 이어질 경우 소비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일반 가정의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으로 기업이 투자를 줄이면서 고용 또한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와 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결국 미국 경기의 둔화를 의미한다. 

카펜터는 여전히 미국이 경기침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면서도, 추가적인 충격이 가해질 경우 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카펜터는 이어 올해 말부터 실업률이 4.3%까지 상승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미국 경제가 정체 상태에 들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사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위터

◇ 트럼프식 일방주의 전략의 한계

“그동안 다른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중국에게 사기를 당해본 모든 ‘천재’ 여러분들께서는 내가 유럽 및 다른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상대하기 원한다. 하지만 기억하라. 유럽과 다른 국가들도 우리와의 무역에서 공정하지 못했다. 이는 곧 바뀔 것이다”

분명한 국력의 격차에도 미중 무역전쟁에서 미국이 상당한 곤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이슈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다른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고립상태로 몰아넣고 국제적인 무역질서에 순응하도록 압박하는 다자주의적 전략이 아닌, 힘의 격차를 통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양자주의적 전략이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순한 일대일 힘겨루기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복잡한 수싸움이라는 점이다. 전임 오바마 정부에서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를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적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전략을 펼쳤다.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닌 다자간 FTA를 통해 아태지역 국가들을 포섭해 초국가적 생산네트워크를 구성함으로서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겠다는 것.

이 때문에 중국 또한 TPP를 ‘중국 봉쇄전략’이라고 비판하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아시아태평양FTA(FTAAP) 등을 대응전략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자유무역이라는 국제 무역규범에 역행하는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한 중국이 국제경제협정에 담을 수 있는 컨텐츠는 매우 부실했고, 관세 자유화 외에 특별한 매력을 제시하지 못한 RCEP, FTAAP는 TPP와 달리 선언적 의미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TPP를 통해 중국을 미국 주도의 국제무역규범에 포섭한다는 다자주의적 전략은 폐기되고 관세를 무기로 한 양자협정이 주된 전략으로 채택됐다. 강력한 무역제재를 통해 오랜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함으로서 미국 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겠다는 것. 이는 오히려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를 수호한다는 강력한 명분을 중국에게 내주는 셈이 됐다.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미, 심지어 아태지역의 가장 강력한 동맥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FTA 재조정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국제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또한 1980~90년대 일본이 현재 중국과 같은 입장에 처한 상황에서 많은 양보를 했던 것은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 안보적 이유로 미국에 경제적 양보를 할 개연성도 없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처럼 미중 간의 무역불균형을 단순한 ‘도둑질’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현재 미중 양국의 산업·금융적 차원에서 긴밀하고도 복잡한 의존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대중 무역수지 불균형이 미국 내 일자리 감소와 제조업 침체를 가져왔다고 단언하기에는 양국을 묶고 있는 글로벌 가치사슬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 예를 들어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제3의 국가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중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는 무역수지라는 한 가지 지표로는 포착할 수 없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을 무역수지 균형이라는 단순한 렌즈로 파악함으로서 정작 중요한 국제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쥘 기회는 흘려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무역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내 경제의 피해와 그에 따른 기업가, 농업종사자들의 실망은 더욱 트럼프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내년 11월 대선을 기다리며 ‘만만디’ 전략을 취하는 중국을 상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협상을 승리로 이끌 새로운 변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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