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재현 회장 아들 이선호씨. 사진=연합뉴스
CJ그룹 이재현 회장 아들 이선호씨.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지난 1일 인천공항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씨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공항 세관이 이씨의 짐에서 마약을 발견한데다 소변검사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지만, 검찰은 당일 조사후 이씨를 귀가 조처했기 때문. 검찰은 5일 이씨가 인천지검 청사에 자진 출석해 구속을 요청한 후에야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재벌 3세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서도 검찰의 불구속 결정에 대해 날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마약은 구속수사가 원칙인데 돈 있는 놈은 그게 아닌가보다”라며 “마약 대량 밀반입이면 감옥에서 5년은 썩어야 하는 수준인데 불구속이 말이 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형사범죄와 달리 마약사건에 대해서만큼은 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통념이 세간에 널리 퍼져있다. 마약범죄는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큰 만큼 체포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피의자의 소지품을 영장 없이 압수 수색할 수 있는 등 사전영장주의의 예외가 폭넓게 인정되는 범죄다. 하지만 최근 연이은 재벌 3세 및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사건을 보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사례를 빈번히 발견할 수 있다.

“마약 수사는 구속이 원칙”이라는 주장과 달리 실제 마약사범의 구속률은 20~22% 수준으로 그다지 높지 않다. 대검찰청의 ‘2017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7년 마약류사범 1만4123명 중 구속은 2763명, 불구속은 1만1360명으로 구속률은 19.6%였다. 이는 2016년(20.7%)보다 1.1%p 하락한 수치다. 

물론 다른 형사사건에 비해 마약사건의 구속률이 높은 편인 것은 맞다. 대법원이 펴낸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 형사공판사건 1심 26만2612건 중 구속된 상태로 진행된 경우는 2만8727건으로 약 10.9%였다. 하지만 마약사범 중 구속되는 경우가 5명 중 1명이라는 사실은 구속수사가 원칙이라는 통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2017년도 마약류별 단속 현황. 자료=대검찰청
2017년도 마약류별 단속 현황. 자료=대검찰청

그렇다면 마약수사에서 구속과 불구속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형사소송법 70조는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을 때 △도망하거나 도망의 염려가 있을 때를 구속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즉, 마약범죄뿐만 아니라 모든 형사사건에 적용되는 구속수사 원칙은 △혐의가 분명한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가 △도주의 우려가 있는가의 세 가지다. 이에 더해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또는 참고인 등에 대해 해를 끼칠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재벌가 자제 및 유명 연예인들의 마약사건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기준에 따라 구속과 불구속이 엇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남양유업 창업주의 손녀 황하나씨는 법원에서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경우다. 황씨는 자신이 잠든 사이 지인이 마약을 강제로 투약했다고 주장하는 등 본인에게 제기된 혐의를 일부만 인정한데다, 경찰로부터 출석 통보를 받은 뒤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등의 행태를 보였다. 법원이 황씨가 도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데는 이러한 부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대마초 구입 및 흡연 혐의로 체포된 현대그룹 3세 정현선씨와 SK그룹 3세 최영근씨는 황씨와는 달리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지만 증거인멸의 우려 때문에 구속된 경우다. 정씨는 휴대전화에 설치한 보안 메신저앱 ‘텔레그램’을 통해 대마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찰 조사과정에서 휴대폰을 해외에서 잃어버렸다고 진술해 의심을 샀다. 또한 정씨가 머리를 염색한 것도 체내성분검사를 빠져나가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최씨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1년간 약 18차례에 걸쳐 대마를 구입해 투약해 마약투약 상습범의 혐의를 받고 있었다는 점도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하일(로버트 할리)씨의 경우 이들과는 정반대로 체포 후 이틀만에 석방된 경우다. 하씨의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수원지법은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자료가 대부분 수집돼 있고 피의자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영장에 기재한 범죄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혐의를 모두 인정한 만큼 도주의 우려도 적고, 증거가 이미 입수된 상태라 증거인멸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씨의 경우도 하씨와 비슷한 사례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씨는 1일 검찰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순순히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항 세관에서 이씨가 소지한 마약을 적발한 만큼, 증거도 모두 입수된 상태. CJ그룹 이 회장의 장남으로 주거도 확실해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다른 재벌 3세들의 마약사건과 달리 크지 않았다. 

이같은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이 이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현행 법의 구속사유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점은 법조계 내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의 사법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구속사유를 더욱 구체화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이승주 검사는 지난 2018년 발표한 ‘현행 구속사유 해석을 둘러싼 혼란과 그 개선방안’ 논문에서 “‘도망의 염려’와 ‘증거인멸의 염려’라는 조항은 추상적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매우 크다”며 “형사소송법상 어떤 경우 ‘도망의 염려’가 있는지,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는지 참고할만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검사는 이어 “구속제도 운영의 정당성, 예측가능성, 형평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사유를 다변화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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