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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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지난 18일 당정이 세입자 보호를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주택 세입자에게 임대 계약 종류 이후 계약 연장을 요구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 현재 상가 세입자에게만 보장되는 ‘계약갱신 청구권’이 주택 세입자에게도 주어질 경우, 법으로 보장되는 거주 기간은 기존 2년에서 최대 4년까지 늘어나 서민들의 주거권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당정의 이번 발표를 두고 반론도 제기된다. 세입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임대인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는 데다, 자칫 임대차 계약기간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인 전월세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 <뉴스로드>는 선진국의 세입자 보호제도가 사유재산권과 주거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지, 세입자 보호가 강화될 경우 실제 임대료 상승 위험이 있는지 알아봤다.

◇ 독일, ‘무기 임대차계약’이 관행

미국, 일본을 비롯해 서유럽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1960년대부터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주거 안정화의 핵심 요소인 임대기간에 대해서는 아예 임대인의 계약 갱신 거부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장기 거주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입자 보호제도를 갖춘 독일에서는 최단기간에 대한 규정이 없으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무기의 계약관계로 체결되는 것이 관행이다.

만약 ‘기간의 정함이 있는 임대차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서면으로 기간 특정 사유를 통지해야 한다. 이 또한 ▲기간만료 후 임대인 및 가족 등이 주거로 사용하려는 경우 ▲기간만료 후 해당 주택을 철거하거나 중대한 변경이나 수리를 하려는 경우 ▲기간만료 후 노무의무자에게 임대하려는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기간이 정해진 임대차계약이라 하더라도, 계약 기간 종료 후 2주 이내에 임대인이 계약 연장 거절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묵시적으로 계약이 연장된 것으로 간주한다. 

무기의 임대차 계약이 관행인 독일이지만 임대인도 계약의 종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임차인이 계약상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경우 ▲임대인이 주택을 본인 또는 가족의 주거 용도로 사용하려는 경우, ▲임대차관계 연장 시 임대인이 현저한 경제적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 특히 계약 연장으로 인해 미래 이익(임대료 인상, 주택 매각)의 상실은 ‘경제적 불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문화해, 임차인 보호제도의 실효성을 높였다.

◇ 프랑스, 퇴거 요청시 대체주거 제공해야

프랑스의 경우 최소 3년의 거주 기간을 보장하고 있으며 이보다 짧은 기간의 임대차계약은 무효로 취급한다. 다만 기간 종료 후에도 임대인에게 정당한 계약해지 사유가 없거나, 필요한 계약해지 예고절차를 준수하지 않으면 묵시적으로 계약이 갱신된 것으로 인정한다. 

프랑스에서 임대인이 기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려면 만기 6개월 전까지 해지통고를 완료해야 한다. 해지 사유는 ▲임대인 본인 및 가족의 주택 사용 ▲임차인의 귀책사유 등이며 독일과 달리 주택 매각도 사유로 인정된다. 다만 주택 매각을 이유로 해지할 경우 해지통고서에 매매가액 및 조건을 명시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임차인에게 매수를 제의하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또한 설령 본인이나 가족이 주거할 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려 하더라도 제한이 있다. 만약 임차인이 70세 이상이고 소득이 최저임금의 1.5배 이하일 경우, 임차인에게 대체주거를 제공해야만 퇴거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 다만 임대인 본인도 이러한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해당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 미국, 재산권 중시해도 계약 해지 절차는 까다롭게

재산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경우 서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임차인 보호제도가 약한 편이지만, 역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있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제도의 차이가 있지만, 가장 임대료가 높고 주거난이 심한 뉴욕주에서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뉴욕시 거주자의 경우 만기로부터 90~150일 이전, 뉴욕시 외 거주자의 경우 90~120일 전까지 갱신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발송하면 된다. 

계약 갱신 시 기간은 임차인의 의사에 따라 1~2년으로 정할 수 있으며, 계약조건 또한 기존 계약과 동일하게 유지돼야 한다. 또한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 뉴욕주에서 명시한 ‘정당한 사유’는 ▲임대인 본인 및 직계 가족의 주거를 위해 해당 주택이 필요한 경우 ▲임차인이 해당 주택을 주요 거주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재건축, 철거 및 다른 이유로 해당 주택을 임대시장에서 철수하려 하는 경우 등이다. 다만,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거절 사유에 대한 통지서를 정해진 기간 내에 전달하지 않을 경우, 임차인에게 계약 갱신 권리가 주어진다. 

자료=국토교통부
자료=국토교통부

◇ 한국, 세입자 60%가 2년 내 이사

이처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임차인의 장기 거주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보호장치를 통해 임대인의 재산권을 일부 제한함으로서 주거의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부할 경우 이를 제약할 방법이 없어 거주의 불안정성이 매우 높다. 

실제 국토교통부의 ‘2019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주택에 거주한 평균 기간은 자가보유자가 10.7년인 반면, 보증금 없는 월세 4.2년, 보증금 있는 월세 3.4년, 전세 3.3년 등의 순이었다. 현재 주택에서의 거주 기간이 2년 이내인 비율도 전세 57.1%, 보증금 있는 월세 60.1%, 보증금 없는 월세 55.9%로 세입자의 절반 이상이 2년마다 이사를 하고 있다. 

당정이 최근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겠다고 발표한 것 또한, 이같은 거주의 불안정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되면 최소 거주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면서, 계약 만기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에 휩싸였던 세입자들의 거주도 크게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 임대기간 연장되면 임대료도 오를까?

다만 이 경우 임대인들이 향후 계약기간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미리 전월세 가격을 급격하게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지난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최소 보장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자, 같은해 서울의 전세가격은 23%, 전국은 17% 가량 상승했다. 1990년에도 평균 16%의 상승률을 보이며 전세가가 급격히 뛰어올랐다. 

반면 당시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세와 함께 임차료도 함께 상승한 것이며 임대차계약기간 연장의 효과는 아니라는 반박도 나온다. 김윤섭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방안 토론회’에서 “2003년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으로 기간 보호 5년이 생겼을 때 상가임차료가 폭등한 실증례는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세입자 보호제도와 임대료 상승률 간의 인과관계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계약갱신청구권 보장이 향후 전월세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 서울연구원 박은철 연구위원은 지난 5월 발표한 ‘주거권 강화 위한 주택임대차 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임대료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임대차등록제가 하나의 패키지로 도입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독일의 임대료표 제도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독일은 민관이 함께 지역별 표준 임대료의 상하한선을 정해 과도하게 높은 임대료를 부과할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하거나 심할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 등의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선의로 시작된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시도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주거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당정은 다양한 해외 사례를 둘러보고 신중하게 정책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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