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청년취업 두드림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청년취업 두드림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일할 의지가 없는게 아니라, 나의 노동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대가를 받으면서 일하고 싶을 뿐인데요”

“일하고 싶은데 노동력 후려치는 곳이 너무 많아요. 몇 년 전 알바할 때만 해도 고용계약서 안 쓰려고 꼼수 쓰는 곳이 너무 많았어요”

“질좋은 일자리가 거의 없어요. 지금 한 업계에서 경력이 10년 넘었는데 업계 자체에 연차개념 들어온 지도 얼마 안됐어요. 월급이 250만원도 안 되는데 ‘과스펙’에 비싸단 소리를 듣고 ‘현타’ 심하게 왔었어요”

위는 최근 니트(NEET)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한 언론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이 기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7일 발표한 ‘청년층 니트의 특성 분석 및 비용 추정과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5~29세 니트족 비중이 2014년 16.2%에서 2017년 21.2%로 늘어났으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49.4조원으로 GDP의 2.7%에 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저소득층 청년에서 특히 니트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취업 지원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 고용, 직업훈련의 의지가 없는 청년층 무직자를 의미하는 ‘니트족’이라는 단어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은 날카롭다. 이들은 '니트족'이라는 시선에 대해 "우리에게 일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여건을 갖춘 일자리가 없다"고 항변한다.

원해서 니트가 된 것이 아니라는 청년들의 외침을 단순히 억울한 감정의 표출로만 보기에는, 이들을 둘러싼 ‘헬조선’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8명은 첫 직장에서 월 2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150만원 미만으로 한정하면 무려 45.3%다. 이는 지난해 기준 최저임금 7530원을 한 달 평균 근로시간(209시간)으로 환산한 급여 157만3770원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첫 직장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는 경우도 거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의 첫 직장 근속기간은 임금근로자 기준 17.3개월로 전년 동월 대비 0.6개월 짧아졌다. 첫 직장을 그만둔 이유도 보수, 근로시간 등 근로여건에 대한 불만족이 49.7%로 가장 높았다.

청년층(15~29세)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수 및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비중 추이(단위: 천명) 자료=한국노동연구원
청년층(15~29세)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수 및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비중 추이(단위: 천명) 자료=한국노동연구원

◇ 청년층 외면하는 최저임금제

청년구직자들을 실의에 빠뜨리는 저임금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취업 취약계층인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 특히 최저임금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복순 전문위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청년층(15~29세)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의 법정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는 지난 2012년 38만명에서 지난해 68만명으로 6년 만에 30만명이나 증가했다. 이는 임금근로자의 18.4%에 달하는 수치다.

김 위원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가 증가하는 것은 최저임금에 대한 관리․감독을 위한 제도적인 보완·강화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라며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층의 경우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등 부당한 처우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아 관리 감독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선진국 비해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커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분화된 고용시장도 청년 저임금을 야기하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한국고용정보원 김하영 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대졸청년층의 첫 직장 진입 및 이탈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대졸자는 2014년 기준 전체 대졸자의 10.4%에 불과했다. 반면 300인 미만의 중소규모 사업체 정규직 취업자는 34.3%로 가장 비중이 컸다. 비정규직 또한 대기업 6.1%, 중소기업 21.2%로 중소기업이 더 많았다.

문제는 청년 구직자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중소기업의 급여 수준이 대기업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 김 위원에 따르면 중소규모 사업체 정규직 임금은 대규모 사업체 정규직 임금의 76% 수준이었다. 이는 대규모 사업체 비정규직(77.1%)보다 낮은 수준이다. 

5인 미만의 소규모 영세업체로 한정하면 차이는 더 크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연구위원이 지난해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국제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5인 미만 영세기업 평균임금은 500인 이상 대기업의 32.6% 수준으로 일본(65.7%), 프랑스(58.9%), 미국(78.8%, 2015년 기준)에 비해 매우 낮았다.

상시근로자 500 이상 사업체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중 국제 비교. 자료=중소기업연구원
상시근로자 500 이상 사업체 대비 중소기업 임금 비중 국제 비교. 자료=중소기업연구원

◇ “첫 일자리 임금, 10년 이상 긴밀하게 연관"

물론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역량을 키워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나리오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간, “나 때는 말이야”를 달고 사는 ‘꼰대’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청년들은 첫 직장이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장기적인 인생계획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요셉 연구위원은 지난해 3월 발표한 ‘청년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와 청년고용 대책에 관한 시사점’ 보고서에서 “첫 일자리의 임금은 향후 노동시장 성과와 1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대졸 남성의 경우 첫 일자리에서 받았던 임금이 평균보다 10% 높을 경우, 경력 1~2년차의 임금은 약 4.5% 정도 높고 경력 11년차 이상에서도 약 3.8% 정도 높았다. 고용확률 역시 첫 입직기준 1~2년차에서 1.6%p 이상 높고, 경력 11년차 이상에서도 대략 1.2%p 정도 높다. 

대졸자의 경우 직장의 규모와 상용·임시직 여부가 중요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졸자의 경우 첫 직장 규모가 100인 이상일 때와 100인 미만일 때, 경력 10년 차까지 약 9~13%의 임금격차가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요셉 위원은 “(첫 직장의 조건과 향후 노동시장 성과의) 장기적 관계는 기업규모와 고용형태를 중심으로 나뉜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행기간(첫 취업기간) 장기화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상당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좋은 첫 일자리를 가지기 위해 ‘취업 재수’를 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중소기업 근로여건 개선이 우선

“취업시장에서 너무 눈을 높이지 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서 경험을 쌓으라”는 기성세대의 ‘충고’는 당장 차가운 노동시장을 헤쳐나가야 하는 청년들에게는 무의미한 ‘꼰대질’에 가깝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돼야만 10년 이상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선 취업부터 하고 보라고 다그치기에는 청년들의 미래가 너무 막막하다.

막막한 미래에 직면한 청년들의 취업 준비기간이 점차 늘어나는 것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안정적인 임금과 장기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취업문은 좁은데, 요구되는 ‘스펙’은 점차 높아진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사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2~3년이 훌쩍 지나가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수록 오히려 첫 직장의 근로여건은 나빠지기만 한다. 

이처럼 진퇴양난에 빠진 청년구직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구직자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중소기업의 근로여건을 어떻게 개선하느냐에 달렸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없이 무작정 빠른 취업을 독려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한요셉 위원은 “청년고용대책은 경력 초기 일자리특성이 장기적 영향을 갖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설계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며 “단순히 조기 입직 자체를 성과지표로 설정하는 것은 경력 초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효과성이 낮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들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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