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6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6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한 과잉 진압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홍콩 정부가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복면금지법이 오는 5일 0시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람 장관은 “폭력이 홍콩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홍콩의 현재와 미래를 구해내야 한다”며 “우리는 이 법안이 복면을 쓴 시위대와 폭도들에 대한 억제 효과를 발휘하고 경찰의 법 집행을 도울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SCMP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복면금지법은 불법집회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 집회 및 시위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법안을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및 2만5000홍콩달러(약 380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번 복면금지법 시행 근거인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은 영국 식민지 시기인 1922년 제정된 것으로, 긴급 상황이나 공공 안전이 위협받을 경우 행정장관이 입법회 심의·비준 없이 시행할 수 있다. 긴급법이 시행되면 행정장관에게 법 위반에 대한 처벌 수위까지 결정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이 주어져, 사실상 계엄령에 가깝다. 긴급법이 실제 시행된 것은 지난 1967년 영국령 당시 대규모 반영(反英)시위가 발생한 이후 무려 52년 만이다.

복면금지법은 이미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집회가 아닌 공공장소에서의 복면 착용에 초점을 맞춘 법안으로 홍콩과는 도입 취지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의 복면 회합을 막기 위해, 프랑스는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무슬림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기 위해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 독일과 캐나다의 경우, 복면금지법의 적용 대상을 불법집회 참가자로 한정하고 있다. 

반면 홍콩의 경우, 송환법 및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로 홍콩 정부가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상황에서 시위 참가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어서 반발이 극심하다. 실제 지난 6일 다수의 홍콩 시민들은 복면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복면금지법 반대 집회에 나섰다. 일부 시위대는 까우룽퉁(九龍塘)에 위치한 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병영에 접금해 레이저로 건물을 비추는 등 항의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인민해방군 또한 "당신은 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기소당할 수 있다"고 적힌 노란 깃발을 내거는 등 경고 표시를 했으나, 다행히 군과 시민 간의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홍콩 시위를 이끌고 있는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긴급법에 따른 복면 금지는 홍콩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라며 “임의 체포 및 수색, 구금 연장과 인터넷 접속 금지 등 중국 중앙정부와 행정장관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긴급법은 송환법만큼이나 위헙하다”고 비판했다.

조슈아 웡 비서장은 이어 “추가 시위를 막기 위해 람 장관이 내놓은 해법은 대응 국제사회에 의한 경제·시민적 자유라는 홍콩의 진정한 이익을 극도로 침해하는 것”이라며 “중국 정부와 람 장관 모두 홍콩의 사업 환경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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