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베이징 왕푸징의 NBA 플래그십 매장. 사진=연합뉴스
8일 베이징 왕푸징의 NBA 플래그십 매장.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불똥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미국 프로농구 리그(NBA)와 ‘스타크래프트’로 잘 알려진 게임개발업체 ‘블리자드’다. 이들은 내부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이 나오자 미중 양국의 눈치를 보며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다. 앞으로 벌어들일 ‘차이나머니’를 생각하자니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지만,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기 때문.

◇ 홍콩 시위 지지 발언에 스포츠업계 좌불안석

지난 4일 NBA 소속 휴스턴 로키츠의 대럴 모리 단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을 지지한다”(Fight for freedom, Standwith Hong Kong)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올렸다. 

중국은 모리 단장의 트윗에 즉각 반발했다. 중국농구협회는 성명을 통해 모리 단장의 발언을 비난하며 로키츠와의 협력관계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NBA 중계를 맡은 중국 국영방송 CCTV와 텐센트 홀딩스 또한 로키츠의 경기를 중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키츠의 스폰서인 운동복업체 리닝과 상하이푸둥개발은행도 지원을 끊겠다고 나섰다. 주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또한 모리 단장의 트윗에 강한 불만을 표하며 “양심이 있는 사람은 모두 홍콩특구정부가 홍콩의 사회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로키츠와 NBA 사무국은 진화에 나섰다. 모리 단장은 문제가 된 트윗을 삭제한 뒤 6일 해명 트윗을 올리고 “중국의 로키츠 팬 및 친구들을 공격할 의도는 아니었다. 나는 단지 복잡한 사안에 대한 하나의 의견을 말한 것 뿐”이라며 “내 트윗은 내 의견일 뿐 로키츠와 NBA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NBA 사무국 또한 7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성명서를 올리고 “모리 단장의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이 팬들을 모욕한 것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럴 모리 단장이 지난 4일 올린 홍콩 시위 지지 트윗. 사진=트위터 캡처
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럴 모리 단장이 지난 4일 올린 홍콩 시위 지지 트윗. 사진=트위터 캡처

비슷한 사태가 게임업계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5일 대만에서 블리자드 주최로 열린 아시아태평양 그랜드마스터 대회에 출전한 홍콩 출신의 ‘하스스톤’ 프로게이머 청응와이(활동명 블리츠청)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대를 상징하는 가스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채 등장해 “홍콩 민주화, 우리 시대의 혁명”(Liberate Hong Kong, Revolution of out age)라고 외쳤다. 인터뷰 이후 방송화면은 급히 광고로 전환됐고, 이후 해당 인터뷰 영상을 포함해 당일 있었던 모든 경기의 영상이 삭제됐다. 

게다가 블리자드는 블리츠청에게 향후 1년간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하고 상금을 몰수하는 등 징게 처분을 내렸다. 블리츠청이 올해 벌어들인 상금은 약 3000달러인 것으로 추정된다.

블리자드는 이어 성명을 내고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지지한다”면서도 “선수들과 다른 e스포츠 대회 참가자들은 공식 대회 규정을 따라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블리자드가 언급한 규정은 특정 집단이나 대중을 공격하거나, 블리자드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어떤 행위와도 연관될 경우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하고 상금을 몰수한다는 것. 블리자드는 웨이보를 통해서도 중국어로 된 성명을 내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중국의 존엄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블리자드가 주최한 그랜드마스터 대회에서 청응와이(활동명 블리츠청) 선수가 홍콩 지지발언을 하는 모습. 사진=트위터 캡처
블리자드가 주최한 그랜드마스터 대회에서 청응와이(활동명 블리츠청) 선수가 홍콩 지지발언을 하는 모습. 사진=트위터 캡처

◇ 중국 눈치 살피는 NBA·블리자드, 왜?

미국의 농구와 e스포츠계가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즉각 대응에 나서는 이유는 바로 ‘차이나머니’ 때문이다. 휴스턴 로키츠는 중국의 농구스타 야오밍 선수가 뛰었던 팀으로 중국 내에서 막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류현진의 LA 다저스나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한국 내 위상과 비슷한 셈. 이들은 중국 내 마케팅을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중국 자본의 직접적인 지원도 받고 있다. 

휴스턴 로키츠와 NBA의 중국 매출 의존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지만, 중국 내 NBA 시청자 수는 연간 5~6억명을 상회하며 중계권료 또한 연간 3억 달러에 달한다. CNN에 따르면 중국 현지 사업을 운영하는 NBA차이나의 가지는 약 4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알리바바의 공동 창업주 차이총신(蔡崇信)이 브루클린 네츠의 지분을 인수하며 100% 중국 자본으로만 구성된 팀이 탄생하기도 했다.

블리자드 또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무엇보다 블리자드 지분의 4분의 1이 중국 자본의 소유다. 중국 IT업체 텐센트는 지난 2013년까지 블리자드 지분의 4.9%를 소유했으나 2015년 4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지분이 약 25%까지 늘어났다. 

또한 블리자드가 중국에서 올리는 수익도 적지 않다. 게임전문매체 ‘피씨게이머즈’(PCgamers)에 따르면, 블리자드가 올해 상반기 올린 수익의 12%(3억9600만 달러)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나왔다. 한국에서도 블리자드의 인기는 높지만, 시장 규모를 고려할 떄 이중 대부분이 중국에서 올린 수익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해, 블리자드는 이미 지난해 중국 기업 넷이즈와 손잡고 자사 대표게임 ‘디아블로’의 모바일 버전인 ‘디아블로 이모탈’을 개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블리자드 본사에 새겨진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라", "모든 목소리가 소중하다"라는 문구에 직원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종이를 붙여 가려둔 모습. 사진=트위터 캡처
블리자드 본사에 새겨진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라", "모든 목소리가 소중하다"라는 문구에 직원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종이를 붙여 가려둔 모습. 블리자드 본사의 홍콩 시위 관련 입장에 대한 내부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트위터 캡처

◇ 본토에서 부는 역풍, “NBA·블리자드, 중국에 영혼 팔았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중국 시장을 의식해 재빠른 대처에 나선 NBA와 블리자드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되면서 정치권까지 확산된 것.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당)은 6일 자신의 트위터에 “휴스턴 로키츠의 평생 팬으로서 대럴 모리 단장이 홍콩 시위대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억압적 조치를 일깨워준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부끄럽게도 NBA는 큰 돈을 쫓느라 물러서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민주당) 또한 “이번 사태는 중국이 미국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제 미국 시민들은 중국을 비판할 경우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블리자드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민주당)은 “블리자드는 중국 공산당을 기쁘게 하기 위해 얼마든지 굴욕을 감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블리자드 직원들 또한 “모든 목소리가 중요하다”, “전지구적으로 사고하라” 등 본사에 적혀있는 격언을 종이로 가리며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경영진을 조롱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홍콩 시위를 상징하는 우산을 쓴 채 본사 외부에 모여 본사 방침에 항의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진퇴양난에 빠진 NBA 사무국은 다시 미국 여론 달래기에 나섰다.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는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과 중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며, 그러한 차이를 판단하는 일은 NBA의 역할이 아니다”라며 모리 단장의 홍콩 지지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블리자드는 아직 중국 관련 조치에 대한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우스파크 제작진이 중국의 검열을 비판한 에피소드를 제작한 뒤 발표한 사과문. 사진=사우스파크 공식 트위터
사우스파크 제작진이 중국의 검열을 비판한 에피소드를 제작한 뒤 발표한 사과문. 사진=사우스파크 공식 트위터

◇ “자유보다는 돈”, 사우스파크의 조롱

이번 사태는 미국인들에게 심각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장 중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됐기 때문. 

특히 NBA는 다수의 흑인들이 선수로 뛰고 있는 리그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해왔다. 애덤 실버 커미셔너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반대하는 한편,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진보적인 리그가 ‘차이나머니’에 무릎 꿇는 모습은 많은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한편, 이런 와중에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우스파크’ 제작진이 중국을 상대로 발표한 사과문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리즈는 최근 중국의 검열제도와 헐리우드의 중국 의존성을 비판하는 에피소드를 제작한 뒤 중국에서 시청이 금지된 상황이다.

제작진은 지난 7일 사과문을 올리고 “NBA와 같이, 우리는 마음 속으로부터 중국의 검열을 환영한다. 우리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며 “시진핑 주석은 곰돌이 푸와 닮지 않았다. 위대한 중국 공산당이여, 영원하라”라고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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