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 3
노을 · 3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10.11 1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인록,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 루 월터 프런트 선셋
박인록,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 루 워터 프런트 선셋

 

그대 떠난 곳은
나도 떠난 곳이나,

뒤돌아보면
정다운 노을 눈부시게

아직도 
남아있으니,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그대와 나.

 

너무나 힘들어 절망이나 고통 같은 힘듦만 있을 것 같은 과거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는 종종 과거로 자신을 데리고 갑니다. 이 과거의 창고를 뒤져 무엇인가 특별한 게 있는지 찾아도 봅니다. 이제는 갈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찾아보면 그때가, 그때의 그 기회가, 그때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현재를 버티고 일으키는 힘이 내재돼 있는지도 모릅니다. 

노을을 보려고 서해 먼 곳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바다는 간조에서 만조로 바뀌어 출렁이는데 하늘은 좀처럼 노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노을을 기다리지 못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어둠이 조금씩 자동차의 앞쪽으로 내립니다. 전조등을 켭니다. 그런데 백미러로 보이는 서녘은 이미 노을로 가득히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차의 속도를 줄이거나 갓길에 멈춰 노을을 연신 봅니다. 기다리다 보는 노을보다 기다리지 못하고 뒤로 간신히 보는 노을이 더 찬란했습니다. 

저 노을이 저렇게 곱다면 분명 조금 전에, 저곳에, 나도 함께 있던 그대도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떠나온 자리, 우리가 거쳐 온 시간이 비록 지금은 흘러갔지만 그 노을은 우리의 추억을 눈부시게 장식하겠지요. 그래서 언젠가는 그 아름다운 추억을 호명해 우리 앞에 줄세워 우리를 잠시 애틋한 기쁨에 잠기게 하겠지요. 

‘그대 떠난 곳은 / 나도 떠난 곳이나, // 뒤돌아보면 / 정다운 노을 눈부시게 // 아직도 / 남아있으니, //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 그대와 나.’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