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텍사스 포트워스 경찰서가 공개한 경찰관 보디 카메라 동영상의 한 장면. 경찰관이 희생자 아타티아나 제퍼슨의 집 안을 플래시로 비춰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 텍사스 포트워스 경찰서가 공개한 경찰관 보디 카메라 동영상의 한 장면. 경찰관이 희생자 아타티아나 제퍼슨의 집 안을 플래시로 비춰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미국에서 백인 경찰에 의해 흑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28세의 흑인 여성 아타샤나 제퍼슨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새벽 2시 30분경 텍사스 포트워스의 자택에서 8살짜리 조카와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새벽까지 제퍼슨의 집에 불이 켜져 있고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와 어린 조카가 걱정됐던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공개한 보디캠 영상에 따르면, 경찰은 창문 안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비치자 “손을 들라”고 외친 뒤 바로 총을 발사했다. 제퍼슨은 조카와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경찰의 인기척을 느껴 움직이다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조카 또한 당시 상황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급하게 총기를 사용해 제퍼슨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경찰은 지난해 4월 임명된 백인 남성으로, 현재 수사를 받기 위해 행정휴가에 들어갔다.

미국 흑인 사회는 이번 사태를 두고 크게 분노하고 있다.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은 평범한 여성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불합리한 사실도 이유지만, 백인 경찰의 오인에 의한 흑인 살해 사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에는 백인 여성 경찰 앰버 가이거가 자택 위치를 착각해, 흑인 남성 보텀 진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자택에서 TV를 보며 휴식 중이던 진은 그를 침입자로 오인한 가이거에 의해 사망하고 말았다.

2017~2019년 미국에서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자 통계. 2019년은 7월 2일까지 집계한 수치다. 자료=스테티스타(www.statista.com)
2017~2019년 미국에서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자 통계. 2019년은 7월 2일까지 집계한 수치다. 자료=스테티스타(www.statista.com)

◇ 인종별로 살펴본 경찰 총기에 의한 사망 사례

그렇다면 미국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은 대체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일까? 몇몇 사례만으로는 전체적인 심각성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통계적인 수치를 찾아봤다. 독일의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미국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은 총 987명으로 이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인종은 백인(457명)이었다. 그 뒤는 흑인(223명), 히스패닉(179명) 기타(44명)의 순이었으며 미상은 84명이었다. 2018년 또한 총 996명의 사망자 중 백인(399명)이 가장 많았으며, 흑인(209명), 히스패닉(148명) 등의 순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자체 조사에서도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자 중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10월 14일까지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자 총 709명 중 백인은 29.9%(212명)를 차지해 가장 많았으며, 그 뒤는 흑인(147명, 20.7%), 히스패닉(16.9%. 120명)의 순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백인 사망자의 수가 가장 많지만, 이것이 흑인이 경찰 폭력의 주된 피해자가 아니라는 증거는 아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인구 중 백인 비중은 76.5%, 흑인은 13.4%, 히스패닉은 18.4%다. 올해 경찰 총격에 의한 사망자 중 백인 비율은 인구 비례로 따졌을 때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흑인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경찰 총격 사망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

럿거스대학교 사회학과 프랭크 에드워즈 교수 연구팀이 올해 8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에 비해 경찰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럿거스대학교 사회학과 프랭크 에드워즈 교수 연구팀이 올해 8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흑인 남성이 백인 남성에 비해 경찰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 흑인, 경찰 총구 마주할 확률 타 인종의 2.5배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경찰의 총구를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높은 것일까? 코넬대학교 사회학과 프랭크 에드워드 교수 등이 지난 8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흑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경찰 총격에 사망할 확률은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경찰 대치 중 사망한 사건들을 취합한 홈페이지 ‘페이틀 인카운터즈’(Fatal Encounters)의 2013~2018년 데이터를 사용해 인종·연령·성별에 따라 일생 동안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도가 어떻게 다른지 연구했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이 큰 집단은 20~40대의 젊은 흑인 남성층이었다. 백인 남성이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성을 1로 설정했을 때, 흑인 남성은 무려 2.5로 측정됐다. 백인 남성보다 흑인 남성이 경찰에 의해 사망할 확률이 2.5배나 더 높다는 것. 특히, 25~29세의 흑인 남성은 10만명 당 2.8~4.1명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백인(0.9~1.4명)의 세 배가 넘는 수치다. 두 번째로 높은 미국 원주민(1.5~2.8명)에 비해서도 현격히 높으며 가장 낮은 아시아계(0.3~0.6명)에 비해서는 10배에 가깝다. 

연구팀은 “모든 집단 중 흑인 남성 및 소년들이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돼있다”며 “우리 통계모델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1000명 중 1명 꼴로 경찰에 의해 살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형을 총격 살해한 전직 경찰관 앰버 가이거와 '용서의 포옹'을 나누는 브랜트 진. 사진=연합뉴스
형을 총격 살해한 전직 경찰관 앰버 가이거와 '용서의 포옹'을 나누는 브랜트 진. 사진=연합뉴스

◇ '흑인=범죄' 도식, 인종차별적 진압 태도가 문제

미국 내에서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흑인 사회는 실질적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광범위한 총기 소지 문화와 흑인 사회가 처한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문제의 뿌리에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 하지만 문제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찰들에게 뿌리깊이 박혀있는 ‘흑인=범죄’의 인종차별적 도식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지난 2일 자택을 착각해 흑인 남성을 총으로 쏴 죽인 백인 여성 경찰 앰버 가이거는 살인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예상보다 낮은 형량에 법정 밖에 모인 시민들은 야유를 쏟아냈지만, 정작 피해자의 동생 브랜트 진은 가이거를 끌어안으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해 감동을 자아냈다. 브랜트 진은 가이거에게 “당신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사랑하며, 어떤 나쁜 일도 바라지 않는다”며 “당신이 남은 삶은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를 원한다. 그러면 신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에게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민 브랜트 진의 행동은 미국 사회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선의와 용서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태도다. 경찰의 인종차별적 태도와 총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앞으로도 고달픈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