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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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드] 강력범죄 수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DNA 채취가 내년부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오는 2020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게되기 때문. 

DNA법은 살인·방화·폭행 등 강력범죄로 인해 구속된 피의자 및 수감자의 DNA를 채취·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수감자의 DNA 정보는 검찰청이, 구속피의자 및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DNA는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연에서 각각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한다. 

DNA 채취 및 감식은 그동안 미제로 남아있던 강력범죄 사건들을 해결하고,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들의 혐의를 벗겨내며 핵심적인 수사기법으로 활용돼왔다. 실제 검찰에 따르면 DNA 채취를 통해 해결된 미제사건은 지난 2010년 33건에서 2016년 7583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경찰이 DNA 관련 시스템을 구축한 후 지난해까지 DNA 일치판정으로 수사를 재개한 건수 또한 5679건에 이른다. 최근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 DNA법 8조가 불러온 위헌 판결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왜 DNA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일까? 문제는 DNA 채취가 강력범죄 해결에는 탁월하지만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현행 법을 악용해 집회 참가자 등의 DNA를 무분별하게 채취하며 노동·사회운동을 압박해왔다는 비판이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실제 검찰은 용산참사 철거민, 쌍용차 노조원들의 DNA 시료를 채취한 바 있다. 또한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발해 고공농성을 했던 김진숙씨,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회의실을 점거했다 특수감금 혐의로 유죄를 받은 한신대 학생들에 대해 DNA 채취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사기관이 DNA 채취를 시도할 때 대상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DNA법 8조는 검찰이 소명자료를 제출한 뒤 영장을 발부받아야 DNA 시료를 채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대상자가 DNA 채취를 거부하기 위한 반론 진술권, 영장발부 불복절차와 관련된 규정은 없다. 검찰이 일단 청구 이유를 소명하고 영장을 발부받으면 대상자가 DNA 채취를 거부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또한 DNA법 8조 3항은 채취대상자가 동의할 경우, 검찰이 대상자에게 채취거부권을 고지하고 서면 동의를 받은 뒤 영장 없이 DNA감식시료를 채취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문제는 구속피의자나 수감자가 수사기관의 압박 속에서 DNA 시료 채취에 대한 동의 요청을 거부하기란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6월 발표한 ‘DNA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영장에 의한 DNA 채취는 전체 채취 건수의 0.5%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실제 수사기관은 통상 디엔에이 감식시료 채취 출석 안내문을 발송할 뿐 이 안내문에는 최소한의 거부와 동의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으며 서면으로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준수되고 있지 않다”며 “DNA시료 채취 및 감식과 이용은 강제 수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장 없이 동의에 의하는 것은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제로 남을 뻔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DNA 수사가 내년부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연합뉴스
미제로 남을 뻔 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DNA 수사가 내년부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연합뉴스

◇ 해외에서는 DNA 어떻게 채취할까?

주요 유럽 국가들은 강력범죄 수사를 위해 수사기관의 DNA 채취를 허용하면서도 인권침해의 소지를 막기 위해 다양한 제한을 두고 있다. 우선 독일의 경우 ‘형사소송법’에 DNA 채취 및 감식, 관련 데이터베이스 운영 등과 관련된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에서도 DNA 채취 대상은 강력범죄 피의자로 제한되며, 채취 절차는 대상자의 동의 및 법원 명령에 따른다. 다만 DNA 채취가 지연되면 위험할 경우 검찰과 수사관의 명령으로도 가능하다.

DNA 채취대상자의 동의 여부는 서면으로 제출돼야 하며, 동의를 요청할 시 채취한 DNA 정보의 사용목적을 분명히 고지해야 한다. 또한 채취된 DNA를 감식하는 감정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며 대상자의 개인정보를 알아서도 안된다. 채취한 DNA는 분자유전학적 검사에만 활용되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면 즉시 폐기하고 신원확인정보 및 성별 외 사항에 대한 확인은 금지된다.

독일도 대상자의 서면동의 및 수사기관의 자체 판단에 의한 DNA 채취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수사기관에 의한 압박으로 비자발적 동의가 이뤄질 위험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재하고 있다. 일례로 독일 부퍼탈 주법원(Wuppertal LG)은 지난 2000년 수사기관의 주도와 필요에 따라 피의자의 동의가 발생하는 압박 상황을 지적하며, 이러한 경우 자발적인 동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유럽 주요 국가들의 DNA 관련 규정은 특히 개인정보의 관리 및 삭제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DNA법 13조에 DNA신원확인정보의 삭제 규정을 두고 있으나, 무죄·면소·공소기각·불기소처분 등의 경우로 한정된다. 또한 정보의 보관 기간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삭제절차 또한 ‘직권 또는 본인의 신청’에 따르기 때문에, DNA데이터베이스 운영주체에게 정보 삭제가 강제되는 것도 아니다. 

반면 주요 유럽 국가들은 DNA 정보 보관 기간이 대부분 명확히 규정돼있으며, 직권 또는 신청에 따르지 않더라도 혐의가 풀린 수록자의 정보를 강제로 삭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독일의 경우 성인 10년, 청소는 5년 주기로 재범위험성을 판단해 삭제 여부를 심사하며, 프랑스는 형확정 시 40년, 보호유치자는 석방 후 25년간 보관한다. 네덜란드와 스웨덴 또한 석방 후 각각 30년, 10년 뒤 DNA 정보를 삭제하고 있다. 

또한 검찰, 경찰, 국과수로 나뉘어 DNA 정보를 관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경우 영국 내무부 산하 국립치안개선청(NPIA), 독일 연방범죄수사국(BKA), 프랑스 국립과학수사연구원(INPS) 등 단일한 운영주체가 DNA 정보를 일괄 수록·관리하고 있어 불필요한 개인정보 활용의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 김병기·권미혁 의원 개정안, 1년 넘게 법사위 계류중

결국 헌재가 DNA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채취 절차’라는 부분적 요소에 대한 지적으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 사례를 참고해 법안의 효력이 상실되기 전 채취 절차의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한다면 내년에도 DNA 채취는 가능하다. 

실제 국회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안과 권미혁 의원안 등 두 건의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두 개정안은 모두 DNA 채취영장발부 과정에서 대상자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절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의견진술권을 부여했으며, 영장이 발부되더라도 채취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적부심사청구, 준항고 등의 불복절차를 마련했다. 

문제는 해당 개정안이 발의된 지 1년이 지나도록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라는 것이다. 패스트트랙, 조국 법무부장관 이슈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회 기능이 멈춰버리면서 개정 논의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기 때문. 당장 이달 말까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는다면 내년부터 DNA 채취가 불가능해져 강력범죄 수사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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