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증폭기술 개발한 괴짜 과학도
DNA 증폭기술 개발한 괴짜 과학도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9.10.21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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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공룡 SF 영화 ‘쥬라기공원’이 개봉한 바로 그해, 이 영화에서 소개된 과학기술이 노벨 화학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중합효소연쇄반응(PCR: polymerase chain reaction)’ 기법을 개발한 미국의 캐리 멀리스다.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공룡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의 화석에서 추출한 DNA를 증폭해 멸종한 공룡을 부활시켰다. 이때 공룡 DNA의 각 부분을 증폭하는 기술이 바로 PCR이다.

PCR은 DNA의 양이 아주 적어도 원하는 특정 부분을 수만~수십만 배로 증폭할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이다. 또한 증폭에 걸리는 시간도 2시간 정도로 짧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장비로 간단히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20세기 후반 최고의 생명과학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기술 덕분에 DNA를 인위적으로 잘라내고 붙이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이 비로소 실용화될 수 있었으며, 인간 유전체 전체를 해독한 ‘휴먼 게놈 프로젝트’도 이 방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밖에도 PCR은 범죄자를 잡는 과학수사나 친자 감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PCR을 개발한 캐리 멀리스는 194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태어났다. 5세 때까지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며 성장한 그는 조지아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UC 버클리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멀리스는 DNA 분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관심을 끈 과목은 천체물리학이었다. 때문에 1968년 ‘네이처’ 지에 발표한 그의 첫 번째 논문 역시 천체물리학에 대한 가설을 다룬 것이었다.

그가 인체생물학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던 건 박사학위를 마친 후 일하게 된 캔자스 의과대학 시절부터였다. 이후 다시 버클리로 돌아가 UCSF에서 쥐의 뇌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DNA 관련 연구를 결심하고 1979년 생명공학회사였던 시터스 사의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DNA 관련 연구에 몰입한 그는 역발상적인 방법으로 PCR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유전자를 연구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특정 유전자의 DNA를 골라내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유전자를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람의 유전체는 약 30억 쌍의 DNA로 이루어져 있을 만큼 숫자가 많은 데 비해 자신이 원하는 특정 유전자의 DNA는 찾기 힘들 뿐더러 어렵게 찾더라도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멀리스는 유전체에서 특정 DNA를 분리해내는 방법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전체 유전체 중에서 특정 DNA 부분만을 증폭시키는 역발상적인 방법을 구상한 것이다.

시터스에 입사한 지 4년 만에 PCR에 대한 이론을 고안한 그는 2년 후 PCR 논문을 완성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사이언스’ 지를 비롯해 기타 유명 과학저널로부터 거절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7년에서야 그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는데, 이후 사이언스 지마저 그의 논문을 극찬할 만큼 호평이 이어졌다.

사실 멀리스가 처음 고안한 방법에는 단점이 하나 있었다. PCR로 DNA를 합성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최고 94℃까지 올려야 하는데, 대부분의 단백질은 그 같은 온도에서 성질이 변해 고유 기능을 잃게 된다. 때문에 한 번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매번 중합효소를 새로이 넣어주어야 했다.

이런 문제점은 일본인 미생물학자 사이키가 발견한 Taq 중합효소에 의해 해결될 수 있었다. 사이키는 뜨거운 온천물에서도 생존하는 호열성 세균인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의 단백질에서 높은 온도에서도 기능을 발휘하는 Taq 중합효소를 분리해냈다.

이후 수많은 연구실에서 PCR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캐리 멀리스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DNA 돌연변이 유발법을 개발한 마이클 스미스와 공동으로 1993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PCR은 과학이론적 업적이 아닌 기술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그런데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 멀리스는 무직 상태였다. 그는 PCR 기법의 개발 직후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가 거기마저 사퇴하고 여러 핵산 관련 회사에서 자문을 하는 프리랜스가 되었다. 

그의 행적을 이해하기 위해선 괴짜이자 이단아적인 그의 기질을 알아야 한다. 그는 자신이 PCR을 개발하게 된 까닭은 시터스에서 만나 결혼하게 된 세 번째 아내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녔다. 이후 그는 세번째 아내와도 이혼하고 네 번째 아내와 결혼했다 

UC 버클리에 다닐 때도 그는 말썽을 피우기만 하는 이단아였다. 그는 실험실에서 LSD를 합성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환각 상태에 빠진 덕분에 PCR을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과 1~2편의 논문만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 단 한 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않은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그밖에도 그는 알몸으로 서핑을 타는가 하면 과학자로서는 내뱉기 힘든 상식 밖의 주장을 전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특기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HIV가 에이즈를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이 아니라거나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만약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면 원시시대에 인간들이 많이 피운 횃불 때문에 빙하가 녹았어야 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요즘에도 그가 간혹 언론에 등장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가 아니라 그의 기이한 행적과 주장들이 전해질 때뿐이다. 어쩌면 PCR 기법을 만든 일등공신은 그의 이 같은 이단아적 기질과 그것마저 포용하는 사회 분위기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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