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 자살과 언론보도의 상관관계
모방 자살과 언론보도의 상관관계
  • 장소라 기자
  • 승인 2019.10.2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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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자살보도 묘사가 공중파 3사보다 더 구체적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지난 14일 설리의 비보가 전해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전화 전화·사이버 상담 건도 증가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정도입니다”

한국생명의전화 관계자는 18일 모방자살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같은 우려를 전했다. 14일 배우 겸 가수 설리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이후 우울감과 자살 충동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상담가들이 체감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 

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이날 발표문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잘못된 자살보도를 보고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며 언론 보도가 자칫 자살의 문턱에 선 사람들의 등을 떠밀게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유명인의 자살 사건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가 모방자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뉴스로드>는 언론 보도가 모방 자살과 실질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관련 연구를 통해 알아봤다.

◇ ‘베르테르 효과’는 실재하나?

‘모방자살’은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 따라서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흔히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린다. 1774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우울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서 유래된 ‘베르테르 효과’는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됐다. 필립스는 2차 대전 이후 약 20년 간 언론에 보도된 유명인의 사망 사건을 조사한 뒤, 각각의 사건 이후 자살 사건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한국 또한 유사한 연구결과가 다수 나와있다. 삼성서울병원 전홍진 교수 연구팀이 2005년~2011년 자살한 유명인 13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들의 자살 소식이 처음 알려진 후 한 달 간 자살자 수가 하루 평균 6.7명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자살예방센터 또한 지난 2013년, 유명인의 자살사건 이후 2개월간 자살자 수가 평균 606.5명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자살건수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필립스의 논문 일부. 사진=JSTOR.ORG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1974년 유명인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뒤 자살건수가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필립스의 논문 일부. 사진=JSTOR.ORG

◇ 자살 보도 늘수록 자살률도 증가

유명인의 자살은 매체를 통해 확산된다. 그렇다면 유명인의 자살과 그에 따른 모방자살 사이의 매개로서 언론 보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홍보학부 김병철 교수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자살 보도가 잠재적 자살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자살사건 보도량과 내용 모두 ‘잠재적 자살자’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선 김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주요 신문 및 방송사 11곳의 자살 관련 언론보도 2548건을 선별해 자살 상담 건수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는데, 방송3사를 제외한 8대 주요 신문의 자살 보도량이 늘어날수록 상담 건수도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자살 관련 보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95건의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43.1%가 자살 보도에 나오는 자살자 혹은 자살 행위에 대해 이해심이나 공감을 표했으며, 특히 7.1%는 자살 충동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살 보도가 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것.

◇ 전문가 "자살 기사’가 ‘자살 지침서’ 될 우려 상존"

특히, 언론 보도에 자살의 동기나 방법 등이 자세하게 설명된 경우 이를 읽는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상담 과정에서 죽은 유명인의 자살 방법을 언급한 경우는 28.4%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자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담긴 언론 보도가 자칫 자살에 대한 학습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연세엘정신건강의학과 송윤주 원장이 201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이후 서울 3차 종합병원 및 경기도 2차 종합병원에 내원한 자살 시도자를 분석한 결과 최씨와 같이 목매기를 시도한 경우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자살의 동기와 장소, 자살자의 연령이나 성별을 언급하든 상담자도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어 김 교수의 논문에는 “얼마 전 TV에서 시험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을 봤다. 저도 그걸 보고 살고 싶지 않았다”라고 고백하는 한 상담자의 사례가 소개돼있다. 이는 자살 동기에 대한 단정적 보도의 경우 잠재적 자살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자살 충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 자살 보도 줄면 자살률도 감소, ‘파파게노 효과’ 입증

그렇다면 반대로 자살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줄어들 경우 자살률이 감소하는 ‘파파게노 효과’도 실재할까?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공동연구팀이 지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12개 일간지 및 방송3사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직접적 보도 건수와 월별 자살률을 분석한 결과, 매체와 상관없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중, 주요 일간지의 자살 사건 보도량이 전년 대비 11% 가량 감소한 2012년의 경우 자살사망률은 11.4% 감소했다. 연구팀은 “2012년 자살률이 감소한 것은 치명적인 자살 방법인 목맴의 뚜렷한 감소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유명인사의 자살 기사가 감소함으로써 치명적 자살 방법에 대한 인지적 접근이 다른 해에 비해 낮아졌고, 이것이 자살률 감소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사망한 배우 겸 가수 설리의 영혼과 접신했다고 주장하는 한 무속인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해당 채널은 비난이 이어지자 문제가된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 영상을 올렸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난 14일 사망한 배우 겸 가수 설리의 영혼과 접신했다고 주장하는 한 무속인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논란이 됐다. 해당 채널은 비난이 이어지자 문제가된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 영상을 올렸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공중파 방송과 일간지 자살 보도의 차이

자살 보도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특이한 점은 매체에 따라 실제 자살률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달랐다는 점이다. 김병철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중파 3사의 자살 보도는 자살 상담 건수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공동연구팀의 논문에서도 일간지가 방송사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신문과 TV의 자살보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문의 경우 TV와 달리 인터넷 검색이나 스크랩 등을 통해 보도 이후에도 다시 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TV의 자살 보도는 시간의 제약이 있어 세세한 내용을 담기 어려운데, 신문 기사의 경우 자살의 배경과 원인, 방법 등 상세한 정보를 담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큰 차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단순히 보도량의 차이뿐만 아니라 기록성과 보존성을 강점으로 하는 신문 고유의 특성 때문에 자살 보도가 수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매체별로 구체적인 보도 내용을 비교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당 연구가 발표된지 이미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언론생태계도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우선 급격하게 증가한 인터넷매체는 선정적인 자살 보도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유현재 교수는 2012년 발표한 논문에서 “자살예방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에서 요구하는 권고사항들은 인터넷 매체와 전통적 신문매체를 막론하고 그다지 엄밀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면서도 “인터넷 매체를 통해 공급되는 자살관련 기사들이 자살의 방법에 대한 상세 표현과 자살자의 신상 소개, 기사 표제의 선정성 등 측면에서 전통적 인쇄 매체에 비해 더욱 자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유튜브, 스트리밍서비스 등을 활용한 1인미디어의 확산도 모방자살을 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이다. 최근 배우 겸 가수 설리의 죽음이 알려진 뒤 유튜브에는 한 무속인이 자신에게 설리의 영혼이 접신해 자살 이유와 죽기 전 못다한 심정을 말해줬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영상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또다른 유튜버는 자신이 설리의 전 남자친구였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올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재 두 영상은 모두 삭제된 상태이며, 무속인 영상을 올린 채널은 18일 논란에 대한 사과 영상을 올렸다.

현재 자살과 관련된 언론 보도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통한 자율적 규제에 의존하고 있을 뿐, 별다른 규제 수단이 없다. 방송의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 따라 제재가 가능하지만 신문과 온라인 매체는 유가족 등이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제재 수단이 언론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튜브 등을 통한 ‘자살 컨텐츠’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살보도와 모방자살의 상관관계는 이미 실증적으로 밝혀진 사실이지만, 규제 수단은 사실상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른 비극이 일어난다면 ‘베르테르 효과’의 재발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 자살 충동을 야기하는 선정적 보도를 막고 유가족과 잠재적 자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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