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 일기 ― 다산茶山에게
귀양 일기 ― 다산茶山에게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10.2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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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규. 꽃, 종이 위에 크레파스, 28x45cm.

 

철없는 임금은 
살 좋은 계집을 끼고,

의관을 갖춰
붕당을 만드는 신하들.

기러기 한 무리.
달빛 타는데,

추워도 한양 바람은
고기 냄새다.

검은 약사발이
어명을 실어,

언제
이 야윈 몸을 
붉게 적실꼬.

 

중국의 요堯임금이 천하를 50년 동안 다스렸는데 잘 다스려지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임금은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격양가擊壤歌’입니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편히 쉬며,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해 먹으니, 임금의 역할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리오.(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于我 何有哉.)’

이 노래에서 어느 구절보다도 ‘임금의 역할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리오’를 듣고 요임금은 자신이 정치를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졌을 겁니다. 

요임금은 임금이 누구인 줄 몰라도 되는 세상, 알 필요가 없는 세상이 정치가 제대로 된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격양가’는 ‘태평성대의 노래’라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정치 얘기를 빼면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라디오도 유튜브도 TV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정치인인 것처럼 정치에 대한 나름의 식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적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기도 하고 의절하기도 합니다. 대규모 정치적 시위가 매주 광장에서 열립니다. 

정치의 과잉은 정치의 부재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많은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소모적이고 위태로운 정치의 과잉을 정치인들은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현상을 남 탓으로 돌릴 뿐 자기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항변합니다. 자신의 정파와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지 않고 진심으로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침이면 일터에 나가고 퇴근하면 집에 와 편히 쉰다. 살림이 넉넉하니 물 마셔 목마르지 않고 밥 먹어 배고프지 않다. 이렇게 편하니 정치 얘기가 무슨 필요인가.’ 아마도 우리는 이런 ‘신新격양가’를 부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다산茶山은 자호, 조선 후기 유형원과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 18년간 전남 강진 등에서 귀양살이를 함)은 귀양살이 중에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조선의 암울한 정치 현실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검은 약사발이 / 어명을 실어, // 언제 / 이 야윈 몸을 / 붉게 적실꼬.’ 이런 불길한 꿈에 시달리지 않았을까요.

*목민심서 : 정약용이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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