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WTO 개도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결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고 WTO 개도국 특혜 관련 정부입장 및 대응방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08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에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하에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경제적 위상과 발전수준이 높은 국가들이 개도국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해 중국, 홍콩, 싱가포르, 멕시코 등 11개국을 지목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까지 이들 국가들이 개도국 대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독자조치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의 경우 ▲OECD 가입국 ▲G20 회원국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무역 비중 0.5% 등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유일한 국가다. 이미 브라질과 싱기포르는 개도국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대만과 아랍에미리트(UAE)도 WTO가 개도국 특혜를 철회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농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33개 단체로 구성된 ‘WTO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개도국 지위 포기는 통상주권과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

공동행동은 “농민단체들은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지만, 그럼에도 지위 포기 방침을 보이는 정부는 농민의 간절함을 짓밟는 것”이라며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은 한국 농업을 미국의 손아귀에 갖다 바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정책 규탄하는 농민들. 사진=연합뉴스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정책 규탄하는 농민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 1995년 WTO 가입 시 개도국 지위를 주장했으나, 1996년 OECD 가입을 계기로 농업 및 기후변화 외에는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선언했다. 그동안 개도국 특혜를 받아온 농업의 경우, 지위 포기 시 농업보조금 및 수입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정부는 개도국 특혜 포기가 국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지위 포기 결정이 향후 WTO 농업협상 타결 전까지는 영향이 없기 때문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현재 마무리 단계인 쌀 관세화 검증협상 또한 미국·중국·호주·태국·베트남 등 5개국에 국가별 쿼터를 배분할 뿐, 513%의 쌀 관세율을 계속 유지하기로 해 이번 결정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 포기를 계기로 공익형 직불제 도입 및 농업재해보험 품목 확대, 국내 농산물 수요기반 확장, 청년 영농후계자 육성 지원 등을 통해 농업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내 농업의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농업예산을 올해보다 4.4% 많은 15.3조원으로 편성했다.

홍 부총리는 “그간 주요국과의 FTA 체결 과정에서 정부는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보전’하는 차원에서 주로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향후 예상되는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차원에서 보다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농업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출발점으로 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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