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교육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며 정시 비중 확대 등 교육 개혁을 강조한 이후 이 문제가 다시 교육계에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교육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특권을 되물림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상실감이 커지고 있다”며 “공정한 교육제도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교육 개혁 과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방향을 수정한 대입 정시 비중 확대가 모든 대학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자 이광호 청와대 교육비서관은 28일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정시비중 상향 제도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서울 일부 대학을 못 박아서 언급한 것”이라며 “모든 대학에 적용된다는 것은 오해”라고 일단 정리한 상태다. 이 문제는 교육부에서 정시비중을 발표할 11월 하순 다시 우리사회의 심각한 논쟁거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정시 확대는 수혜 계층이 강남 8학군 등의 고소득 자녀에게 몰리고 지방 학생들은 이런 혜택에서 배제되는 ‘금수저 전형’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수능 관련 교육 업체들의 주식이 대폭 오른 것만 보더라도 사교육 시장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수능문제풀이 중심 수업으로 학교 수업 황폐화·학원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걱정하는가하면, 그나마 수시확대로 숨통을 튼 지방학생들의 문턱이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교육개혁 발언 이후 정시확대를 찬성하는 여론은 지난 28일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63%의 찬성률을 보인 것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일선고교에서 진학지도를 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정시확대를 반대하는 여론이 60%로 나타났다. 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이 수시 위주의 입시제도가 균형을 잃고 있어 개편돼야 한다고 보는데 비해 진학지도 교사들은 수시 위주의 입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수시비중을 늘린 입시를 경험한 20대에서는 수시 위주의 학종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여론이 60%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수시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당국자들이나 교사들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지난 10년간 수시비율이 77%(정시 23%)까지 늘어났지만 학종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공정성에 있어서는 수능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소재 6개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종합전형안내서인 『학생부 종합전형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자를 만들었을 정도로 학생부 종합전형은 선발방법이 복잡다양하다. 그래서 재력과 정보력이 있는 부모는 학생부 종합관리를 위해 고액의 컨설팅업체까지 동원하는 등 공정의 가치가 심각하게 손상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정시 확대 방안을 철회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전형자료인 학생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부터 시작해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획기적인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묵은 논란이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체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대입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재력과 정보력이 있는 부모의 자녀들이 우수한 대학진학에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우리사회의 풍조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학생이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삶이 상당부분 결정된다고 보고 있고,  사실상 우리 사회가 그렇게 구조화되어 있다. 이런 틀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전체의 고통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의 대통령들과 주요 교육당국자들은 한국교육을 계속적으로 칭찬해왔다. “한국 학생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미국 학생들의 수업시간은 한국에 비해 한 달 정도 적어 21세기 경제를 준비하기에는 미흡하다”(2009년 3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은 한국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열을 배워야 한다”(2009년 11월). “한국에서 교사들은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교사를 같은 수준으로 존경할 때가 됐다”(2011년 1월) 등.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학부모, 교사는 알아줘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회원국을 포함해 세계 주요국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학업성취도를 조사하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PISA)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성적표는 세계 3위권 안에 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2015년의 조사에서도 순위가 조금 하락했지만 성취도는 상위권에 속해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에선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이다. 교육열이 심화되면 사교육 시장이 끓는다. 이 결과로 사회가 활력을 띄고 성장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교육열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사교육 시장이 지나치게 팽창하면 공교육의 몰락과 학생들의 학업흥미 감소로 인한 부작용과 사회침체가 오기 마련이다.  

PISA에서 높은 성적으로 보이고 있는 북유럽의 나라들과 한국은 그 방법론에서 대척점이 있다.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는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실시하는데 비해, 한국은 ‘경쟁과 차등적 보상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으로 치닫는다. 같은 반의 급우들이 경쟁자라는 인식을 같고 생활한다. 이런 경쟁교육은 커다란 효율을 산출해내기 어렵다. 우리의 교육에 대한 과욕과 성적 지상주의의 맹신은 열기를 넘어 국민 각자의 등에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부과한 듯한 형국이며, 이 엄청난 부하는 우리교육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그 질곡이 잉태하는 바, 백방(百方)이 무효로 나타나고 있는 출산률 저하 현상의 배경에 자녀 교육문제를 두렵게 여기는 젊은 부모들의 중압감이 깔려있다. 취학전 유아의 99.8%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42.7% 젊은 부부들이 교육문제 때문에 추가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는 교육개발원의 유아 사교육 실태조사 결과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부를 하는 참된 이유는 지혜롭고 인격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닦고 이치를 궁구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선비들은 사랑방 뜨락에 단정한 매화 한 그루를 심어 싸늘한 초봄의 화신(花晨)을 완상하되, 감성을 자극하는 발그레한 홍매(紅梅)가 아니라 파르르한 기운이 감도는 절제된 미감의 녹매(綠梅)를 보며 문자향(文字香)의 은은함을 깨우쳤다.

그러나 성적과 효율 위주로 치닫는 1등 지상주의는 교육을 즐거움이 아니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전투로 몰아간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대입시를 위하여 간단없이 학생부를 조작해주고, 명문 외국어고에서는 학생들의 외국 대학 입학을 위해 교육적으로 금지된 시험문제지 유출 및 입수를 시도하다 국제 망신을 당한 것이 한두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아주 소수의 비뚤어진 행동이 아니라 상당수의 학교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중하다. 그런 부정을 배웠거나 곁눈질로 알게 된 아이는 반드시 훗날 그 대가를 지불하게 돼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교수나 연구원이 된 박사들은 사정이 어려워지면 그들이 지닌 배타적 프로페셔널리즘을 발휘해 교묘한 허위문서를 만들어 나랏돈을 빼돌릴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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