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감 따는 건 공관병 업무" 육군 규정은?
[팩트체크] "감 따는 건 공관병 업무" 육군 규정은?
  • 장소라 기자
  • 승인 2019.11.0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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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의 영입 추진 보류와 관련, '공관병 갑질'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의 영입 추진 보류와 관련, '공관병 갑질'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감 따는 것은 사령관의 업무가 아닙니다. 공관에 있는 감을 따야 한다면 공관병이 따야지 누가 따겠습니까?”

“일부에서는 왜 공관병이 너희 자식이냐고 비난합니다. 남의 자식 데려다가 왜 부려 먹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려 먹는 게 아닙니다. 편제표에 나온 대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편제표를 바꾸어야 합니다”

‘공관별 갑질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의 기자회견 내용 일부가 논란이다. 박 전 대장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논란 및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공관병 갑질에 대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것을 갑질이라 할 수 없고 스승이 제자를 질책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듯이, 지휘관이 부하에게 지시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반박했다.

박 전 대장은 공관병에게 감을 따거나 골프공을 줍게 시킨 것도 사실이 아니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공관에 있는 감나무에 열린 감을 따는 것은 공관병의 업무라고 주장했다. 

육군규정 제120호 일부. 자료=군인권센터
징병의 사병화 금지 관련 내용이 기술된 육군규정 제120호 일부. 자료=군인권센터

◇ 육규 120호 52조에 '과목 수집 금지' 규정

그렇다면 박 전 대장의 말대로 감을 따는 것은 상관이 부하에게 지시할 수 있는 적절한 업무 범위에 포함되는 것일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박 전 대장은 공관병을 부려먹은 게 아니라 편제표에 나온 대로 임무 수행을 지시했을 뿐이며, 그것이 잘못됐다면 편제표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2017년 당시 육군 규정 제120호 ‘병영생활규정’ 49조에는 “편제표에는 미반영돼 있으나 평시 부대관리를 위한 필수 소요 직위(복지시설, 숙소관리병 등)는 반드시 장관급 지휘관 승인 하에 전투 근무지원 소대 등의 편제병력을 활용해 겸무보직으로 운용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또한 51조에는 공관근무병의 업무 범위를 ▲공관시설 관리 ▲지휘통제실과 연락 유지 ▲식사준비 ▲그 밖의 공식적인 지시임무 등으로 규정했다.

‘공식적 지시임무’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상관이 장병에게 감 따기를 지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해당 규정은 이러한 사적 업무 지시를 방지하기 위해 예외를 뒀다. 육규 120호 52조에 따르면 ▲부대활동과 무관한 임무부여 및 사적 지시행위 ▲어패류·나물 채취 및 수석·과목 수집 ▲부대 및 관사 주변 가축사육 및 영농활동 등은 지시할 수 없다. 공관에 열린 감을 따는 것은 공관병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

“공관에 열린 감을 공관병이 따지 누가 따겠나”라는 박 전 대장의 발언은 군에 대한 그의 인식이 군 장성에 대한 과잉예우가 당연시됐던 오랜 과거에 머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육군 규정에도 나와있듯이 공관병은 애초에 편제표에 존재하는 보직이 아니며, 장성의 편의를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특권에 가깝다. 실제 미군 등 해외에서는 공관병이나 운전병과 같은 보직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확대된 과도한 군 장성에 대한 예우가 민주화 이후까지 남아있었던 셈. 

저출산으로 인해 전투병력이 줄어드는데 군 장성의 개인 업무에 병력을 낭비하게 된다는 점에서 공관병이라는 보직의 필요성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박 전 대장의 논란이 불거진 뒤 지난 2017년 9월 30일 공관병 제도는 전격 폐지됐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에 대한 수원지방검찰청의 불기소 이유서. 자료=군인권센터
박찬주 전 육군 대장 부부에 대한 수원지방검찰청의 불기소 이유서 중 일부. 자료=군인권센터

◇ 군 장성 ‘갑질’ 처벌 어려운 이유

공관병 갑질 논란은 박 전 대장 이전에도 수차례 반복된 문제다. 지난 2005년에는 2군사령부 예하 특공여단장 신모 준장이 선물용 멸치상자를 잘못 보관했다는 이유로 당번병 김모 상병을 폭행해 물의를 빚었으며, 2015년에는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이 사적으로 관용차량을 사용하고 운전병에게 집안일을 시켜 논란이 됐다.

문제는 군 장성의 ‘갑질’에 대한 처벌 근거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실제 신 준장은 폭행으로 인해 2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으나, 그마저도 징계가 유예됐다. 반면 피해자인 김 상병은 근신 10일의 징계를 받고 취사병으로 보직이 변경됐다. 최 총장은 갑질 외에도 예산 부당 집행 등의 혐의까지 받고 있었으나 ‘엄중경고’ 처분만을 받았을 뿐, 보직을 유지했다. 최 총장은 이후 군 검찰에 의해 직권남용 및 횡령 혐의로 입건되고 나서야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전 대장 또한 지난 4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군형법상 가혹행위 등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당시 군 검찰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는 자기 직무 범위 내에서 그 권한을 남용해야 성립하는데, ‘갑질’은 직무 범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군 검찰은 박 전 대장의 부당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폭행이나 얼차려를 시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해 1월 군 내 직권남용 및 사적 업무 지시에 대한 징계 근거를 담은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해 1월 군 내 직권남용 및 사적 업무 지시에 대한 징계 근거를 담은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 일명 ‘박찬주법’ 발의됐으나 상임위 계류 중

결국 현행법은 ‘갑질’이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처벌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군 내 갑질 문제 해결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으나, 박 전 대장의 ‘공관병 갑질 논란’이 발생한 지 2년이 넘도록 별다른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지난해 1월12일, 군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상관이 직권을 남용해 부하에게 의무가 아닌 일을 하게 하거나 부하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관이 지위를 이용해 부하에게 직무와 관계 없는 사적 명령 또는 지시를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내 징계위원회 개최 시 최소 3명 이상의 선임자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 군인사법에 대한 개정안도 다수 발의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서열 3위인 박 전 대장에 대해서는 아예 징계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는데, 민간위원을 위촉하거나 국무총리실이 징계위원회를 여는 등의 대안을 제시한 것. 지난 2017년 8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김병기 의원, 자유한국당 김영우·김학용 의원,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 등이 유사한 법안을 발의했다.

군형법·군인사법 개정안은 모두 박 전 대장이 촉발한 갑질 논란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반영해 군 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여전히 소관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군형법 개정안은 발의 4개월 후인 지난해 5월28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으나 공무원 직권남용에 대한 형법 123조와 중복된다는 점, 죄의 무거움에 비해 처벌이 과하다는 이유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군 인사법 또한 징계위 구성 방법에 대한 이견이 커 의결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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