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를 바라보는 후대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맨땅에서 나라를 일으킨 국부, 혹은 자유를 탄압하는 냉혹한 독재자. 그러나 이런 상반된 평가를 내놓는 이들도 한 가지 사실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리콴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싱가포르는 없었다는 것. 식수도 구하기 어렵던 조그만 도시국가가 화려한 금융의 중심지로 변모하기까지, 산전수전을 두루 겪은 이 노회한 정치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세계 각국의 미래를 예견하는 책을 한 권 펴냈다. 흥미로운 대목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우선 네 국가를 간략하게 짚어보도록 하자.

먼저 중국이다. 리콴유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중국에 도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국가의 중앙 권력을 중시하는 중국의 정치구조는 공산주의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분열은 곧 전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방 관료들의 악행에 대항하면서도 중심 권력에는 끊임없이 충성심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은 국민들의 참여를 아주 조금씩 확대하는 형태로 정치를 개혁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외적으로도 중국은 도광양회를 뒤로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따라서 태평양 해역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놓고 21세기 후반까지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 미국은 과거 중국의 어느 전성기에 비교하더라도 훨씬 매력적인 사회를 갖고 있다. 그 매력에 이끌려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영어는 중국어에 비해 훨씬 익히기가 쉬우며, 미국인들은 대부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은행에 돈을 묻어두기보다는 더 많이 빌리고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껏 많은 국가들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 대외정책을 펼쳤다. 물론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가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의 문제가 심각하며, 교육 시스템에도 큰 결함이 있다. 향후 몇 십년간 미국의 경제가 얼마나 순항하느냐에 따라 태평양의 힘의 균형 상태는 달라질 것이다. 

대서양 건너 유럽의 미래는 조금 더 암울하다. 리콴유는 재정통합 없는 화폐통합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유로화는 결국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유럽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은 방대한 복지정책과 경직된 노동시장이다.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가 탄생할 때만 해도 이 숭고한 프로젝트의 지속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세계화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일본과 중국, 인도의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했고, 공장이 해외로 이전되며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일자리가 줄어들자 임금이 줄어들었고, 세금도 함께 줄어 더 이상 정상적으로 복지지출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해고의 어려움, 엄정한 노동시간 등으로 기업들이 채용을 주저하게 되었다. 리콴유는 유럽이 ‘불가피한 쇠퇴’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회적 계약’이 타결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 문제이다.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현재의 낮은 출산율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또한 소모적인 갈등을 봉합하는 국익 차원의 커다란 합의가 필요하다. 내부에서 다투기보다 힘을 합쳐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면 한국인들은 훨씬 강해질 수 있다. 한반도의 상황은 당분간은 현상(status quo)를 유지할 것이다. 전쟁이나 통일이 이루어지기에는 당사국들의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 체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와 쉽게 소통할 수 있다면 북한 체제가 자체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책에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의 다양한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리콴유는 시종일관 경제의 활력과 영어의 중요성, 그리고 인재를 끌어들이는 사회의 매력을 강조한다. 이 세 가지를 갖춘 국가는 세계화의 흐름에 맞춰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는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은 세계를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작은 나라다. 변화의 조류를 기민하게 읽고 신속히 반응해야만 운신의 폭을 극대화할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면 리콴유의 통찰력이 담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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