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뉴스로드] 영상이나 사진에 조작된 자막을 입혀 만들어낸 ‘가짜뉴스’가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있다. 일부 가짜뉴스는 외신이나 전문가를 사칭하는 경우까지 있어, 자칫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중국의 아파트 붕괴 이유’, ‘중국의 부실공사’ 등의 제목의 이미지가 올라와 관심을 끌고 있다. 특정 영상의 일부를 캡처해 만든 이 이미지에는 한 아파트가 하부 구조가 완전히 절단된 채 쓰러져 있는 모습과 콘크리트 안에 나무로 된 심이 박혀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해당 이미지에는 “2010년 9월 지진도 아니고 태풍도 아닌 강풍에 아파트가 넘어가는 사건이 중국에서 발생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광경인데요... 이 아파트가 쓰러진 이유가 더 황당합니다. 이유는 바로 콘크리트에 철근을 넣지 않고 대나무를 넣어 지었다는 것인데요”라는 내용의 자막이 달려 있다.

해당 이미지를 접한 일부 네티즌들은 “대나무로 저 정도로 건물을 올릴 수 있나”, “아파트가 넘어졌는데 상부는 멀쩡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다수의 네티즌들은 “중국식 친환경 건축법이냐”, “중국의 부실공사 수준을 알 만하다”며 조롱조의 댓글을 달고 있다.

그렇다면 해당 이미지와 자막 내용은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실공사로 인해 아파트가 무너진 것은 맞지만, 그 외에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철근 대신 대나무를 사용한 것은 다른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며, 강풍에 의해 아파트가 넘어간 것, 심지어 사고 발생 일시가 2010년 9월이라는 것까지 모두 사실과 다르다.

2009년 상하이 아파트 붕괴사건을 소개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사진=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2009년 상하이 아파트 붕괴사건을 소개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사진=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실제 해당 사건은 지난 2009년 6월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발생했다. 상하이시 민항(闵行)구에서 건설 중이던 ‘롄화허파징위엔’(莲花河畔景苑) 아파트 단지의 13층짜리 건물 하나가 무너진 것. 다행히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단계여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에 있던 노동자 한 명이 사고의 여파로 사망하고 말았다.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사고 조사 결과 아파트 붕괴의 원인은 대나무나 강풍이 아닌, 뒤늦게 시작된 지하주차장 건설 공사로 밝혀졌다. 이미 아파트가 완공된 상태에서 건물 옆의 지반을 파내 주차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데다, 파낸 토양을 아파트 반대편에 쌓아두는 바람에 아파트 양 쪽의 하중이 달라져 지반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 게다가 사고 발생 전 며칠간 강우가 쏟아지면서 지반 약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콘크리트 기둥에 나무 심이 박혀 있는 사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사진은 지난 2010년 9월 중국 아파트 부실시공 문제를 다룬 국내 매체의 기사에서 처음 등장한다. 서울신문의 온라인 매체 나우뉴스는 지난 2010년 9월 9일, 현지 매체를 인용해, 허페이성 내 건설현장 8곳 중 5곳에서 부실공사가 이뤄졌으며 시공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철금 대신 대나무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같은달 9일 뉴데일리 또한 온바오닷컴을 인용해, 저질 콘크리트와 대나무로 만든 ‘두부 아파트’가 평당 7000위안에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만 상하이 부실시공 사건과 달리, 허페이성 사건은 관련된 현지 및 외신 보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철근 대신 대나무를 사용한 중국 부실공사 현장을 소개한 나우뉴스의 기사. 사진=나우뉴스 홈페이지
철근 대신 대나무를 사용한 중국 부실공사 현장을 소개한 2010년 나우뉴스의 기사. 사진=나우뉴스 홈페이지

<뉴스로드>가 이 ‘가짜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사용한 수단은 ‘구글 이미지 검색’ 뿐이다. 현지 통신원이나 전문가 인터뷰 등 공들인 취재 과정이 없더라도 몇 번의 클릭만으로 조작된 이미지 및 자막의 원본 사진과 보도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웹페이지에서는 2009년 상하이 아파트 붕괴 사건의 원인에 대한 조사 내용을 요약한 문서까지 첨부돼있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십성으로 소비되는 콘텐츠의 경우, 이처럼 간단한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나무 아파트 사진은 이미 확산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는 댓글을 찾기 어렵다. 팩트체크 전문기관이나 언론이 나설 수도 있지만, 온라인 게시판의 글까지 일일이 검증하기에는 시간과 인력이 부족하다.

물론 네티즌들이 직접 팩트체크에 나서는 희망적인 사례도 있다. 지난 4월에는 ‘선진국의 치매 연구 근황’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가짜뉴스가 직접 팩트체크에 나선 네티즌들에 의해 검증된 바 있다. 이 가짜뉴스는 BBC가 제작한 의료다큐멘터리 중 외과 수술 관련 에피소드 영상 일부를 캡처한 뒤, 가짜 자막을 붙여 미국 등 선진국이 치매 연구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렸다. 이는 곧 원본 영상과 관련 자료를 찾아낸 네티즌들에 의해 가짜뉴스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사태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유포자가 치매연구 가짜뉴스가 발각되기 전부터 수많은 가짜뉴스를 유포해왔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을 다룬 MBC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에 따르면, 유포자는 이전부터 '남북관계에 대한 일본 반응', '일자리를 인공지능에 빼앗기는 미래' 등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위장한 가짜뉴스를 다수 유포해왔다. 이미 수많은 거짓 정보에 속은 뒤에야 겨우 하나의 가짜뉴스를 막아낸 셈이다.

특히, 조작된 자막까지 달아 소비되는 '고퀄리티' 가짜뉴스의 경우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치매연구 가짜뉴스 유포자가 유포한 게시물의 경우 ‘여자가 남자보다 연애하기 쉬운 이유’, ‘차별과 편견은 인간의 본능’ 등 갈등을 조장하거나 혐오를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진국들이 치매연구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는 내용의 가짜뉴스. 사실과 다른 자막을 입힌 뒤 전문가 인터뷰를 위장하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선진국들이 치매연구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는 내용의 가짜뉴스. 사실과 다른 자막을 입힌 뒤 전문가 인터뷰를 위장하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가짜 자막은 온라인 커뮤니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태정 당시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의 발가락 절단으로 인한 병역면탈 의혹을 제기하면서, SBS 뉴스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SBS 뉴스 화면에 “저는 발가락 다친 경위 정확하게 기억 못해요”라는 자막을 추가했다는 것. 해당 뉴스를 직접 보지 못한 유권자의 경우 한국당이 추가한 자막을 SBS가 직접 제작한 자막으로 오해할 수 있어 논란이 됐다. 이처럼 가짜 자막이 단순 가십으로 소비되는 수준을 넘어 현실 정치를 왜곡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팩트체크 수단이 정교화될 수록 가짜뉴스 또한 진화한다. ‘아니면 말고’ 식의 단순한 거짓말을 넘어서, 전문가 인터뷰나 언론 보도, 다큐멘터리 등을 위장한 ‘고퀄리티’ 가짜뉴스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언론의 팩트체크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가짜뉴스의 홍수 속을 살아가야 하는 네티즌들의 신중한 태도도 필수적이다. 갈등과 혐오, 불안을 조장하는 가짜뉴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온라인 게시물을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누군가의 '의견'과 '주장'으로 바라보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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