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북서쪽 도시인 샌타클라리타의 소거스 고등학교에서 14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이 일어나 학생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북서쪽 도시인 샌타클라리타의 소거스 고등학교에서 14일(현지시간) 총격 사건이 일어나 학생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사진은 슬퍼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미국에서 또다시 총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총기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7시30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도시 샌타클라리타에 위치한 소거스 고등학교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해 16세 여학생과 14세 남학생 등 2명이 숨지고 3명이, 14~15세 여학생 3명이 부상을 입었다. 

CNN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16세의 아시아계 남학생으로 45구경 권총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스스로 머리에 총을 겨눠 중태에 빠져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LA카운티 경찰국은 “이날은 용의자의 16번째 생일이었다”며 범행 동기를 알아내기 위해 수사 중이다. 

비극적인 총격사건으로 어린 학생들이 숨지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총기규제 강화 여론도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건바이올런스’(Gun Violence)에 따르면, 올해(14일 기준) 총기사고로 사망한 11세 이하 아동은 177명, 12~17세 청소년은 662명에 달한다. 다수를 향해 총기를 발포하는 총기난사 사고 또한 무려 366건이나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408명이 숨지고 147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실상 매일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대선을 1년 앞두고 지지세 모으기에 열을 올리는 후보들도 총기규제와 관련해 입장표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스로드>는 총기규제에 대한 지지·반대 여론 사이에서 주요 대선후보들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지 알아봤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등 3인은 모두 총기규제 강화를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조 바이든, 버니 샌더스 등 3인은 모두 총기규제 강화를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 바이든·워런·샌더스 “총기규제 강화” 한목소리

총기규제와 관련해 최근 미국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안은 정부가 직접 총기를 다시 사들이는 총기 바이백(환매) 방식이다. 실제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3월 백인 우월주의자가 이슬람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해 5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구매가의 95%를 지불하고 총기를 되사는 바이백 조치를 시행했다. 2억800만 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1600억원)이 투입된 총기 바이백 조치로 현재까지 회수된 총기는 약 1만5000정.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저신다 아던(39) 뉴질랜드 총리를 만나 총기 바이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민주당 내 경쟁에서 3자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민주당 후보들은 총기 바이백에 대해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다만 이중 총기 바이백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총기 회수 의무화 지지자인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은 지난 9월 뉴햄프셔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나는 강제적인 총기 바이백을 지지한다”며 “거리에서 총기를 모두 치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강제적인 총기 바이백을 지지한 베토 오루크 전 하원의원(텍사스)가 대선 경쟁에서 하차하면서, 해리스 의원과 같은 의견을 가진 후보는 3~4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미국 사회에서 총기소유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를 고려할 때, 자발적인 바이백의 성과는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발적 바이백을 지지하는 후보들의 대안은 뭘까? 우선 총기구매자 신원조회를 통해 범죄자, 정신장애자 등에 대한 총기 보유를 불허하는 한편, 총기 면허를 소지한 사람에 한해 총기 소유를 허용하고, 보유한 총기는 정부에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바이든, 샌더스, 워런 등은 모두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 및 총기등록제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샌더스는 선거캠프 홈페이지를 통해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확대할 것”이라며 “총기 암거래를 근절하고 모든 총기구매에 대해 동일한 수준의 신원조회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또한 ‘총기 사고 확산을 막기 위한 바이든 플랜’을 통해 “모든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를 의무화하겠다”며 “공격용 총기 보유자에게는 총기를 정부에 팔거나 등록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차이는 있다. 공격용 총기를 보유한 경우에 한해 등록을 의무화한 바이든·샌더스와 달리 워런은 모든 총기의 등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바이든의 경우 총기면허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미국 내에서는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하라는 여론과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의 대립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자료=퓨리서치센터
미국 내에서는 총기 소유 권리를 보장하라는 여론과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의 대립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자료=퓨리서치센터

◇ 잇단 총기사고에도 규제 소극적인 이유는?

매년 수만명이 총기사고로 사망하고, 연 300건 이상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민주당 후보군 내에서도 총기규제에 대한 입장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에서 가장 진보적인 후보로 평가받는 샌더스조차 AR-15 반자동소총 등 공격용 무기의 강제적인 회수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보성향 후보들조차 총기규제에 대한 접근이 조심스러운 것은 미국인들에게 총기가 친숙한 물건일뿐더러, 일부에게는 ‘자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017년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총기를 가지고 있는 응답자는 30%, 총기를 보유한 사람과 함께 살고 있다는 응답자는 11%로, 미국인 10명 중 4명이 총기를 보유한 가정에 소속돼있다. 또한 총기보유자의 74%는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답했다.

총기규제에 대한 여론 또한 다수의 총기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점점 심각하게 양극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총기규제와 총기보유권리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각각 66%와 29%로 총기규제 지지여론이 더 우세했다. 하지난 2017년에는 51%와 47%로 격차가 줄어들며 박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총기보유자와 비보유자의 의견 대립도 심각하다. 총기 구매 시 신원조회를 강화하고 범죄자 및 정신장애자에 대한 총기 보유를 금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공격용 총기 소유 금지’에 대해서는 비보유자의 77%가 찬성한 반면, 총기보유자는 48%만 찬성했다. 대용량 탄창 판매를 금지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비보유자는 74%가 찬성한 반면, 총기보유자는 겨우 44%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총기를 소유할 권리와 총기규제 사이에서 여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되다 보니, 총기규제 지지성향이 강한 민주당 후보들조차 급진적인 대책을 내세우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군소 후보를 제외하면 강제적인 총기 바이백을 주장하는 후보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대선이 1년 남은 상황에서 워런, 샌더스, 바이든 등 유력 후보들이 굳이 총기규제 이슈와 관련해 차별화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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