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식이 없어 궁금하던 30대 초반의 탈북 청년이 오늘 이런 글을 보내왔다.  

“이세돌 구단과 알파고의 대국. 1승 4패로 이 구단이 알파고 슈퍼컴퓨터에 패했던 날입니다. 이 사건은 저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날 저는 배움이란 열정만으로 전전긍긍 이어가던 학업을 내려놓았습니다. 자퇴를 결정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바다로 왔습니다. 파도는 높았고 노동은 고되었습니다. 여름이면 더위에 허덕였고 겨울이면 칼바람에 떨어야 했습니다. 가끔 이론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이만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탈북민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청년이었는데, 경영학과에 다니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던 그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바다를 선택했다고 했다. 고향은 바다와는 거리가 먼 함경북도 무산이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산으로, 들로 나가야만 겨우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림에서나 본 여수바다로 내려와 어부의 일을 배웠다. 2년 반 만에 선장 면허를 취득했고, 서울과 여수를 오가며 투자 유치에 성공해 작은 어선도 한 척 구입했다. 그리고 유통법인까지 설립했다.

생선은 건강식품으로 우리 식탁에서 빠지면 안 되는 주요 품목이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수산물이 년 10조 원 규모니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고령화로 극심한 고통을 앓고 있다고 한다. 선원이 부족해 출항을 못하는 어선들이 항안에서 쓸쓸히 정박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생산이 줄어들고, 가격은 계속 치솟는다. 여러 경매인을 거친 수산물은 신선도가 떨어진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더 신선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생선을 고객의 식탁에 오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공동창업 멤버와 외국인 선원들이 함께 노력해 전남권 수산물시장 규모 3조7000억 중 10년 내로 10%를 그의 회사가 유통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 청년과 달리 우리사회에서 탈북민들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있다. 지난 7월31일에는 40대의 탈북민 여성과 6살 난 아들이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돼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당시 경찰은 두 사람이 숨진 지 적어도 두 달 이상은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모자가 굶어서 숨졌는지의 여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한국 복지행정에 사각지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가장 심각한 것이 탈북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전에 한 탈북민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북한에서 유명한 영재고등학교의 부교장(교감)을 지낸 교육자다. 아내는 일하러 가고 홀로 집을 지키고 있던 그는 “한국 생활 15년 만에 남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우리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아직 한국사람 집을 방문해본 적이 없어요.”

그는 오랜 교직생활을 한 사람이라 보통의 탈북자보다는 사교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럼에도 한국생활 15년 동안 누구의 집에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나이든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한국 사람들과는 교류 없이 탈북자들만 끼리끼리 살아가고 있어요.”   

그는 오래 전에 일자리를 얻는 것을 포기했다고 했다. 아파트 경비원이나 미화원 자리라도 얻으려고 이력서를 수십 번이나 냈지만, 어떤 연락이라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소식이 없어 찾아가면 돌아가서 기다리면 잘될 것이라고 똑같은 말만 하더라고요.” 그는 “기다리면 잘 될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거절이라는 남한의 어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탈북민들이 집회에 동원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쌀이나 화장지를 받을 때도 있다. 선거 때에는 노골적으로 ×번을 찍으라고 동원된다. 할 일이 없는 탈북민 노인들은 집회에 동원되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까지 한다. 3만 명에 지나지 않는 탈북민들은 한국민들과의 적응이 어려워 끼리끼리 지내기 때문에 몇 사람 건너며 서로 다 알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김일성 일가의 신격화에 맞춰져 있는 북한에서는 정의와 양심에 따라 살 수 없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북한 사람들의 가치관은 한국인들과는 다르다.

우리사회가 탈북민들을 왕따 시키는 이유는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남한 사람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같은 민족이라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국에 왔다고 마음을 열고 접근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다 보면 계속 호감을 갖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탈북민들은 말투가 직설적이다. 거칠고, 공격적이다. 수가 틀리면 쉽게 심한 욕설을 한다. 예의범절도 우리와 다르다. 잘못했으면서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해와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와 다르다고, 우리가 불편하다고, 거리를 두거나 모른 척하기에 그들은 중요한 존재들이다. 민주사회라면 소수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탈북민들이 통일시대에 귀중한 역할을 해야 할 인적자원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탈북민들이 남한은 왕따가 심한 사회라고, 그다지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제대로 된 통일은 상당히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은 탈북민들이 감시와 통제사회에서 살아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감시사회는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무엇을 단속해야 하는 사람이 한 건의 단속대상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만민이 서로 감시해야 하는 북한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가는 자칫 희생양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투박하고 거칠어진다. 게다가 평생 굶주려 살다보면 인성이 너그러워질 수가 없어진다. 

우리에게는 통일과 탈북민 이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탈북민들이 다른 외국인보다도 더욱 심한 왕따의 대상이 된다면 이것을 그대로 둘 일은 아니다. 정부는 탈북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 하는 대(對) 국민교육 교육에 나서야 하고, 공공기관이나 단체는 힘없는 탈북민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지 말고 앞장서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북한자유연합 대표인 미국인 수전 솔티 여사는 “탈북자보다 잔인하게 취급되는 난민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 정권의 붕괴와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위대한 자원은 바로 탈북자들이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남북의 주민들이 동질성을 회복해 함께 잘사는 것이 통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통일로부터 먼 지점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동질성 회복은커녕 목숨 걸고 찾아온 사람들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통일이라는 말은 실감 있게 와 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탈북민들을 정치 선전도구로 활용하지 말아야 한다. 탈북민 동원 집회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데 더욱 어려운 분위기만 만들어 놓은 꼴이 된다.   

글 앞에서 소개한 선장이 된 탈북청년은 남북한을 통들어보아도 매우 특이한 경우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다니다 4학년 때 학교를 떠난 것도 그렇고, 아무런 경험도 없던 바다를 선택한 것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찾았고,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의 자유를 실천했다. 탈북민들은 미래를 위해 죽음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먼저 통일을 실현한 사람들이다. 정부는 그들에게 그들이 각자 살아야 할 방식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들이 남한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모방하려고 할 때는 한없이 나약하고 천덕꾸러기가 되지만, 자신 스스로 길을 찾으면 경쟁력이 더없이 높아진다. 바로 그 길을 찾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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