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레넌 벽'에 설치된 홍콩 시위대 지지 대자보가 훼손된 모습. 사진=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서울대학교 '레넌 벽'에 설치된 홍콩 시위대 지지 대자보가 훼손된 모습. 사진=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뉴스로드] 홍콩 사태가 한중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 유학생들의 갈등이 악화하며 대자보 훼손 및 인신공격 등 극단적인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위대의 홍보물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등 홍콩 지지활동을 벌이고 있는 학생 단체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20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를 방문해 지난 18일 서울대에서 발생한 ‘레넌 벽’ 훼손사건과 관련해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레넌 벽’은 체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홍콩에도 지난 2014년 우산 시위 당시 이를 본뜬 벽이 세워진 바 있다. 현재 홍콩 레넌 벽은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 참여 시민들이 저항과 추모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홍콩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실상이 전해지면서, 국내 대학생들도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한양대, 연세대 등 여러 캠퍼스에 레넌 벽이 설치돼 홍콩 시위대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메시지를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대학에서 나타나는 홍콩 지지 움직임에 대해 중국 유학생들이 강한 반발심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 각 대학에 설치된 레넌 벽이 차례로 훼손되고, 벽에 붙은 홍콩 지지 대자보가 찢어지는 등의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아직 서울대 ‘레넌 벽’ 대자보 훼손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의 국적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부 대학생 커뮤니티에서는 훼손 현장에서 중국어가 들렸다는 목격담이 전해지고 있다.

홍콩 사태를 둘러싼 한중 학생들의 갈등은 폭력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15일 동국대에서는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붙이려던 재학생 이모씨(23)와 중국인 유학생 간에 시비가 붙어, 중국인 유학생이 이씨를 경찰에 신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만 경찰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폭행 정황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고려대에서도 대자보를 훼손하려는 중국인 유학생과 한국 대학생 간의 마찰이 발생한 바 있다. 19일 명지대에서는 한국 대학생과 중국인 유학생이 대자보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다 폭행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 행사에서 중국인 학생들이 행사 주최자들을 향해 중국어로 비난하고 있다. 사진=데이비스4홍콩(Davis4HK) 트위터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열린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 행사에서 중국인 학생들이 행사 주최자들을 향해 중국어로 비난하고 있다. 사진=데이비스4홍콩(Davis4HK) 트위터

◇ 美 교수, "중국인 학생들, 자유를 탄압할 자유 행사" 

중국인 유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현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지역매체 ‘새크라멘토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대학교(데이비스)의 학생 단체 ‘데이비스4홍콩’(Davis4HK) 소속 학생들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홍콩 민주화운동 지지를 위한 자체 행사를 진행하던 중 중국 출신 학생과 마찰을 빚었다. 중국 출신의 한 여학생이 곰돌이 푸 분장을 한 '데이비스4홍콩' 학생들에게 다가와 이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미국 언론을 속이고 있다며 비난했다는 것. 이 여학생은 데이비스4홍콩 소속 남학생 한 명이 휴대폰을 들고 영상 녹화를 시작하자 휴대폰을 뺏어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데이비스4홍콩’ 소속 학생 중 한 명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28일 홍콩인권법 상원 통과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던 중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와 서명이 안된 용지를 찢어버렸다며 학내 중국 출신 학생들의 반발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중국인 유학생들의 극단적인 반(反)홍콩 움직임에 대해 미국 현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펜실베니아대학교 역사학과 조나단 짐머맨 교수는 13일 USA투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칼럼을 기고한 뒤 지난 몇 주 동안 많은 중국인 학생들에게 항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짐머맨 교수는 “이들은 홍콩(시위대)과 자유주의적 서구인들이 중국의 안보와 통합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며 “중국 학생들은 우리 대학뿐만 아니라 여러 캠퍼스에서 홍콩 지지자들에게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짐머맨 교수는 “물론 그들은 (홍콩 시위대와 지지자들을 비난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그들이 미국에 사는 동안에는”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짐머맨 교수는 “하지만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면 그 권리는 인정받을 수 없다. 중국에서는 정치적 발언이 검열당하고 제한받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인 학생들은 자유를 탄압하는 체제를 지지할 자유를 행사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짐머맨 교수는 이어 “이들이 현재 자유로운 서구 국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의 교육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며 미국 내 교육기관의 책임 또한 지적했다. 짐머맨 교수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믿는다면, 방문자들과도 함께 민주주의를 실천해야만 한다. 결국 더 나은 체제가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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