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뿔론論
고뿔론論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1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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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 대비, 아크릴+스테인리스+페인트, 621x415x35mm

 

잠복기—며칠 혹은 그 이상
두통과 오한을 동반한다.

목과 코를 막히게 하고
관절을 쑤시면서 그 놈은
살아있는 세포 속에서 증식한다.

주사와 약을 쓰지만
특효약은 아직 없다.
좋은 음식과 편하게 쉬는 것이
최상일 뿐
아직 원인을 모른다.

자꾸 못 살게 굴면
가면을 쓰고 번식하는 
바이러스—
잘못하면 합병증이 온다.

머리가 좋은 의사들은
실험하고 연구하지만
고개를 가로젓는다.

가깝고 정다운 사람에게
이유 없이 옮기는 돌림병,

이 고뿔을 
나는 내 시라고 부른다.

감기〔고뿔;감기의 옛말〕는 200여 종 이상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호흡기계의 감염 증상입니다.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된 지 1~3일 후에 증상이 나타나며, 콧물, 코 막힘, 목 부위의 통증, 기침과 근육통이 흔하게 동반됩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키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합니다. 신선한 식품을 섭취하고 수분을 섭취하며 충분한 휴식이 최선의 방법이라지요.

감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환자의 코와 입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재채기나 기침을 통해 외부로 나오게 되면 그 속에 있는 감기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존재하다가 건강한 사람의 입이나 코에 닿아 전파됩니다. 대개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치유됩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감기[common cold]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   *   *   *   *   *   

시상詩想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들어옵니다. 그것을 잠복의 며칠 동안 한 단어, 한 구, 한 행의 언어, 언어의 소리, 언어의 의미로 증식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어떨 때는 근심을, 어떨 때는 불면을, 어떨 때는 깊은 사색을, 어떨 때는 절망을 동반합니다. 시인에게 시는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걸리는 감기와 같은 것이라서 시의 콧물, 시의 코 막힘, 시의 통증, 시의 기침과 근육통을 앓습니다. 시인에게도 시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피하는 방법으로는 시를 쓰지 않는 일이 있겠지만 시를 쓰지 않는 시인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지요. 

시인에게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200여 종 이상의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감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이 수많은 이유 때문에 오히려 시를 쓰는 이유를 명쾌하게 찾을 수는 없지요. 그러니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이유는 아무리 조심해도 ‘그냥 걸리는 것’ 감기처럼 ‘그냥 쓰는 것’이라는 게 그나마 맞는 답이 되겠지요. 

이렇게 ‘감기처럼 만들어진 내 시’가 감동으로 동감으로 위로로 감기처럼 전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깝고 정다운 사람에게 / 이유 없이 옮기는 돌림병 // 이 고뿔을 / 나는 내 시라고 부른다.’ 이 ‘고뿔론論’은 내가 시를 쓰는 소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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