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에 대해 공부할 때, 우리는 보통 그 역사와 문화를 먼저 들여다본다. 어떤 법과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 살피고, 소득수준과 교육수준도 따져 본다. 그러고 나서 현재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려 애쓴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시대적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공간 안에서 운신한다. 인물의 자잘한 특성보다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독재국가의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도자의 혈통이 신성시되고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대적 권위가 부여된다면, 바로 그 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건들을 겪었는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당면과제는 국경 너머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국가의 수수께끼 같은 독재자 김정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1984년 원산에서 태어났다. 김정일의 둘째 부인 고용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정은은 엄청난 크기의 놀이방에서 산더미 같은 장난감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냈고, 진짜 자동차와 진짜 권총을 갖고 놀았다. 요리사들이 대기하며 꿩고기 구이, 상어 지느러미 스프와 같은 요리를 만들었고, 특별히 선발된 가정교사에게 지도를 받았다. 또한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서양 문물을 경험하기도 했다.

흔히 사람들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극한 시점이 김정남이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에 입국하려다 실패한 2001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김정은은 그보다 일찍 내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이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몸이었고, 지병으로 모스크바에 거주했기 때문에 신분이 불안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고용희는 김정일의 평생 반려자 역할을 했고, 그 아들 김정은은 이미 10살 무렵부터 ‘대장동지’로 불리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노동당 고위간부들에게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통보한 것은 2009년 1월 8일. 그로부터 2년 만에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27세의 젊은 청년은 당과 군대, 인민의 지도자가 되었다. 

김정은은 크게 세 가지 전략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첫 번째는 바로 할아버지를 모방하는 것이다. 특이한 헤어스타일, 어마어마하게 튀어나온 배, 통 넓은 인민복. 모두 외부인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했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강하고 번영했던 김일성 시대를 연상시키며 고난 가득했던 김정일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두 번째로 김정은은 통제의 끈을 살짝 늦추며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만들었다. 장마당을 인정하지는 않되 비공식적으로 용인하기로 한 것이다. 현재 북한 주민의 40~80%가 개인적인 장사로 돈을 버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소련이 붕괴하기 전 헝가리, 폴란드 같은 국가를 웃도는 수준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공포정치를 통해 잠재적 도전자들을 제거했다. 인민군 차수인 리영호가 종적을 감췄고, 그 후임자인 현영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특히 자신의 이복형 김정남을 지지했던 장성택은 공개적으로 처형당했다. 정치국 확대회의장에서 끌려나와 체포당하는 장면이 이례적으로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된 것이다. 자신의 권력에 도전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확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내부적으로 통치기반을 확고히 다진 김정은의 시선은 이제 세계무대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위협을 멈추라는 경고를 보내고 싶었고, 이를 위해 모든 국가자산을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집중시켰다. 그리고 2017년 두 번의 핵실험 성공으로 핵 자주노선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비록 한때는 한반도 정세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지만, 김정은은 결국 미국 대통령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푸틴, 시진핑과도 나란히 어깨를 견주었다. 

김정은은 이미 본인을 세계적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다. 남한이 주는 돈 몇 푼에 비굴하게 회유 당했던 아버지 때와는 달리, 자신이 이끄는 북한은 진정한 군사강국, 사상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남한에서 보내오는 쌀도 더 이상 굽신굽신 받을 필요가 없고, 이산가족 상봉도 굳이 할 이유가 없다. 금강산 관광 역시 제재해제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남한 관광객을 받아봐야 애초에 큰돈이 되지 않는다. 관광은 유엔의 제재대상이 아니기에,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민의 문화휴양지’를 개발하여 중국 관광객을 받는다면 쏠쏠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송두리째 뒤바뀐 안보환경 속에서 이제 조선반도 정세는 북측이 주도한다.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져 있기에 남측이 별스럽게 매달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아직 김대중, 노무현 시대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정은의 북한이 김정일의 북한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상황이 끊임없이 변하는데 전과 같은 처방을 반복한다면 효과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초조한 마음에 이리 뛰고 저리 뛰기보다 냉정히 판을 읽으며 다음 수를 찬찬히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 그 첫걸음은 바로 김정은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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