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안의 한 누님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의욕이 많고, 마당을 쓸더라도 이웃의 대문 앞까지 시원하게 청소를 하곤 해서 주위의 칭찬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엔 가보지도 못했지만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독학을 해서 신학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억척스러웠던 누님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술주정꾼 남편으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살림을 꾸려가야 했던 삶이었다. 남편에게서 벗어나 변두리 도로변에서 화장지나 튀밥 같은 것을 펼쳐놓고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가 떠오른다. 무슨 일이든 꾀를 부리지 않는 데다 딸린 아이들도 많아 주위에서 일감도 많이 주선해 줬다. 그러나 너무 가난한 데다 여자 혼자 헤쳐가야 할 파도는 끊이지 않다 보니 세상이 무섭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아둥바둥 잡아야 할 줄을 놓쳐가면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이상한 증세가 심해져갔다.

그 만남 이후 수소문해서 밤늦게 그의 거처를 찾아갔다. 초행길이라 두 시간이 넘게 걸려 경기도 파주의 외진 마을로 찾아갔을 때 누님은 작은 셋방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삶에 지쳐 모든 희망을 버리고 말없이 누워있을 뿐인 늙은 여자.

우리사회에서 이런 여성을 만나는 것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둘이 사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한 달에 80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청소일을 하고 밤이면 십자수를 해서 납품을 하고, 주말이면 거리에 나가 행상을 한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제대로 된 일거리를 얻을 수 없다.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뼈 빠지게 일해도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 그녀는 친척들의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가난하기 때문에 가족이 해체되고,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물질적으로 박탈되어 간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재산이나 뾰족한 재주 없이 홀로 된 여성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으로 몰린다. 

지난달 20일 인천 계양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돼 큰 충격을 줬다(2019년 11월 20일). 40대 후반의 여성과 20대의 두 남매, 그리고 딸의 친구 등 네 명이 생활고를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들이 작성한 각자의 유서엔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악화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은 그러나 대당 평균가 3억원이 넘는 글로벌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가 8월부터 넉달간 세계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해 람보르기니의 스테파노 도메니칼리 회장이 한국을 방문한 날이었다. 서울 중구 제이그랜하우스에서 열린 ‘람보르기니 데이 서울 2019’ 행사에서 람보르기니 회장은 “올 들어 한국시장 판매량이 160대 가까워지고 있다”며 “한국은 여전히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일엔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70대 여성과 40대 딸 세 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생계 곤란이 이유였다. 경기도 양주, 의정부, 서울 관악 등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서민들의 생활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모양새다. 극심한 양극화의 사회다. 한쪽에선 먹을 것이 없어 삶을 포기하는데 다른 쪽에선 수억원대의 차가 세계 최고로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전국빈민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우리사회의 빈곤층은 700만 명에 이른다. 과거의 전통적 빈곤층은 물론 일부 농민, 장애인, 여성, 노인들이 새로운 빈곤층으로 편입되는 실정이라고 한다. 국책 연구원인 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빈곤통계연보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이 20%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5명 중에 1명은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들의 소득은 소득순으로 순서를 매겼을 때 한가운데인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2017년에 19%를 넘어선 뒤 결국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20%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사회의 가난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과거 우리사회의 가난은 희망이 있었고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의 가난은 그렇지 않다. 바닥에 몰린 사람들은 용빼는 재주 없이는 바닥으로부터 탈출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이제는 가난이 게으름의 문제만은 아니다. 얼마 전 택시를 탔더니 운전기사가 이런 말을 했다. “외국산 승용차에 접촉사고를 냈는데 판금·도색하는 데에만 수백만원을 물어줘야 했다. 우리네 차라면 삼사십만원이면 뒤집어쓸 사고였다. 세상은 점점 더 가난한 사람들이 밥이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가난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가난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무섭다.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도 그렇고, 한 번 늪에 빠지면 아무리 일해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월 20만원짜리 지하실 방에서 생활보호 자금을 받는 가정이 당대에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안락한 일상을 보내는 노인은 많지 않다. 압축 성장의 열매를 향유하는 그룹이 20%인데 비해 희망 없는 80%의 사회적 불안이 나날이 증대하고 있다. 빈곤층과 부유층이 그룹화돼 집단의 소모전 양상이 나타날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숱하게 나오고 있다. 정부가 양극화 해결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조세부담률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하면 우리사회의 여론은 반대가 찬성의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이라는 화려한 성장의 이면에 너 나 없이 정치를 증오하고 계층 간 대립각을 세우며 각박하게 늙어갈 것인가. 아니면 운동화와 책과 라디오와 낮잠을 즐기며 가난하면서도 풍요롭게 늙어갈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 진솔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부유층이라 한들 두루 편안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나 보증 없이 돈을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연전에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했을 때 인상적으로 본 것은 넘쳐흐르는 온화함과 따뜻한 미소였다. 그 온화함은 뛰어난 제도의 창안 이전에 다가오는 인간의 신뢰에 대한 영역임이 분명해 보였다. 가난은 제도만으로 물리칠 수 없다. 제도는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하층민들이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먼저 필요하다. 굶는 사람에 대한 이해, 애당초 인간답게 사는 것이 불가능했던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 도무지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사랑. 거기서부터 빈곤 문제의 해법이 시작돼야 한다.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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