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네, 정말 좋겠네
좋겠네, 정말 좋겠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12.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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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자, 숲, 2012. 25×25 Cm. 조합토 +테라시즐레타(2).
홍미자, 숲, 2012. 25×25 Cm. 조합토 +테라시즐레타(2).

자작나무 숲이라면 좋겠네. 
그것도 눈 쌓인 들판 끝이 없으면 좋겠네. 
새 떠난 새 둥지에 
해 하나, 별 하나, 달 하나 흐르는 구름 하나 
내렸으면 좋겠네. 

새벽도 노을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네. 
노동으로 허리 굽는 한낮도 
편안했으면 좋겠네. 

저녁밥 짓는 굴뚝 연기처럼 
한가롭게 시간이 가고 
아낙들의 바구니에 
먼 나라 소문이 향기같이 퍼지면 
나는 모자를 벗고 뜻없이 들었으면 좋겠네. 

음악처럼 타는 벽난로 
읽다만 책, 책갈피에 손가락을 끼우고 
이마에 명상의 빨간 불을 켜면 좋겠네. 
그리고 한 여인을 위해서 
밤늦도록 편지를 쓰는 시인이었으면 좋겠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세상 가득
눈이 내렸으면 내렸으면 좋겠네. 
입김으로 유리창의 성에를 녹이면 
보이는 세상으로 
처음의 눈을 밟고 걸어오는 그대를 
두 팔 벌려 맞았으면 좋겠네. 

좋겠네, 내가 우편배달부라면 
내가 나그네라면,
자작나무 숲, 눈길을 따라 
그대가 불 켠 하나의 집을 찾겠네. 
내 사랑의 사연을 그대 문틈에 끼우고 
수줍게 열떠서 돌아오겠네.

그리하여 꿈이라도 
그대와 긴 입맞춤을 할 수 있다면 
그대를 위해 한 뼘의 밭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린 시절 사랑의 혼미한 열로 여러 날을 지내다가 문득 깨어났을 때,
왔던 시 한편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쩌면 ‘그 사랑’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하여 꿈이라도 / 그대와 긴 입맞춤을 할 수 있다면 / 그대를 위해 한 뼘의 밭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 좋겠네, 정말 좋겠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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