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왔으나 어두움은 오지 않았나보다. 길손처럼 찾아온 밤이지만 편안함이 없다. 아늑한 고요함도 없다. 불빛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어두움을 밀어냈다. 어두움이 없는 밤, 고뇌에 쌓여있다. 근심, 걱정, 불안초조 등 온갖 상념 때문이리라. 눈을 감아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도 칠흑 같은 어두움이 깔려있다. 희미한 별빛마저 없다.

다행히 멀리 희미한 불이 보인다. 가물거리는 불빛을 담은 초롱이였다. 어두울수록 등불의 존재가 커지나 보다. 초롱불에 의지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상념에 젖는다. 마음을 비우자. 생각을 지우자. 욕심을 버리자. 또 한해가 저문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빨리도 가버리고 있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 안타깝고 야속하다. 며칠 있으면 제야의 종소리로 2019년도 저문다. 종소리에 묵은해가 가고 종소리에 새해가 오고 있다. 

어둠이 내려오는 길목에 옹기종기 꽃송이가 피어나 아련한 꽃향기  남아 있는 ‘초롱꽃’을 생각한다. 전 세계에는 300여 종의 초롱꽃속(Campanula)식물이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초롱꽃, 섬초롱꽃, 금강초롱꽃 등 7종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밤길을 밝히던 초롱을 닮았다고 하여 초롱꽃이라고 한다. 초롱은 초를 넣은 휴대용 등(燈)이다. 제등(提燈)이라고도 한다. “제등행렬에 참여 하자” “청사초롱 불 밝혀라” 어둠을 밝히는 말들이다. 

초롱꽃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픔을 가진 ‘금강초롱’에 대하여 살펴본다. 초롱꽃과로 세계적으로 1속 1종만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 등지에만 서식하는 대한민국 특산종으로 8~9월에 자주색 통꽃이 핀다. 1909년 금강산에서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 하였는데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 이다. 속명 Hanabusaya는 을사늑약을 주도한 일본공사관 초대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이름이다. 일본강점기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화방초(花房草)라고 불렀으며 광복 후에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종소명을 아시아티카(asiatica)라고 하여 대한민국 특산종을 아시아산으로 원산지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나부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한반도 식물을 탐사하던 나카이가 은혜를 갚는다며 이런 만행을 자행하고, 명명자는 자기 이름을 붙여버리고 말았으니 통탄한 일이다. 

 

‘모시나물’ ‘풍령초’ ‘종꽃’으로도 불리 운다. 초롱을 닮았다는 이름도 잘 지었지만 꽃을 보면 볼수록 범종(梵鐘)같다. 그리고 꽃받침은 범종을 매다는 용뉴(龍鈕)를 닮았다. 용뉴는 포뢰(蒲牢)라 하는데 용왕의 셋째아들로 고래를 보면 울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범종이 잘 울도록 붙였다고 한다. 화경포뢰(華鯨蒲牢)는 나무공이에 고래(華鯨)를 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시대에는 밤 10시가 되면 우주의 28개 별자리에 밤새 안녕을 기원하는 28번 종을 치는데 ‘인정(人定)’이라하며 통행금지가 된다. 새벽 4시에 33번 치는데 ‘파루(罷漏)’라하며 통행금지가 풀린다. 제석천의 삼십삼천에게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보신각에서 범종을 33번치는 것도 같은 연유이다. 

꽃말은 ‘좋은 소식’ ‘각시와 신랑’ ‘청사초롱’이다. 2020년 새해에는 DMZ에 좋은 소식만 오고 갔으면 좋겠다. 진정한 평화가 와서 금강산에 가서 금강초롱을 만나보면 얼마나 좋겠는가. 금강초롱 꽃길을 걸어보는 꿈이 이루어지를 고대해본다. 태백산, 설악산, 금강산에 살고 있는 금강초롱들이 같이 만나도록 철조망이 사라지는 소원은 언제나 이루어질까.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성큼성큼 걸어서 북녘동포에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자. 남북의 선남선녀들이 각시와 신랑이 되어 청사초롱 불 밝혀 밤새 춤추고 노래하며 잔치를 열어보자. 새해에는 평화통일을 염원하여본다.

<필자 약력>

30여년간 야생화 생태와 예술산업화를 연구 개발한 야생화 전문가이다. 야생화 향수 개발로 신지식인, 야생화분야 행정의 달인 칭호를 정부로부터 받았다. 구례군 농업기술센터소장으로 퇴직 후 한국야생화사회적협동조합 본부장으로 야생화에 대한 기술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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