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뉴스로드] 16일 시사회를 연 영화 ‘천문’이 개봉을 열흘 앞두고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다. 배우 한석규씨가 세종 역을, 최민식씨가 장영실역을 맡은 영화 ‘천문’은 조선 초기 두 사람이 손잡고 천체관측기구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오는 26일 개봉 예정인 ‘천문’이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 것은 약 100초 분량의 예고 영상에 나온 한 장면 때문이다. 예고 영상에는 세종이 천체관측기구 ‘간의대(簡儀臺)’를 허물고 불태우라고 명령하는 장면과, 장영실이 이에 항의하며 울부짖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고 영상을 본 영화팬들은 간의대가 철거된 것은 세종이 아닌 연산군 시기의 일이라며, ‘천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16일 시사회 후 세종 역을 맡은 배우 한석규씨가 “영화관계자들이 역사 왜곡에 대해 걱정이 많은데, 기록이 진실은 아니라는 말을 다시 한번 하고 싶다”며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사실이냐는 각자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더욱 커졌다.

<뉴스로드>는 영화 ‘천문’ 예고 영상에 나온 간의대 철거 장면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관련 연구 및 사료를 통해 알아봤다.

사진=영화 '천문' 예고 영상 일부
사진=영화 '천문' 예고 영상 일부

◇ 세종은 정말 간의대를 철거했나

간의대가 철거된 것은 영화팬들의 지적대로 연산군 때의 일이 맞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11년(1505년) “연산군의 명으로 보루각을 창덕궁에 옮기고, 간의대는 뜯어버렸다”(命移報漏閣于昌德宮, 撤簡儀臺)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당시 사료에는 간의대가 위치한 경복궁 주변의 인가를 철거하고 축성을 위한 장소를 물색 중이었다는 정황이 나와 있어, 이러한 공사의 일환으로 간의대 철거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중종실록에도 간의대를 수리하기 위해 나무와 돌을 옮기느라 궐내가 시끄러웠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는 연산군 재위기 간의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점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천문’은 연산군 시기에 발생한 간의대 철거 사건을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세종 시기로 끌어와 역사를 왜곡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천문’이 아예 없는 사실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시기와 맞지 않게 역사를 왜곡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문’의 간의대 철거 장면은 세종실록에 실제로 적혀 있는 내용을 토대로 영화적 과장을 더한 것에 가깝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간의대의 철거를 지시한 적이 있다. 다만 연산군 때와는 달리 간의대를 완전히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전하라는 내용이었다. 실록에는, 세종24년(1442년) 세종은 신하들을 불러 “간의대(簡儀臺)의 동쪽에 집터를 보게 하고, 마침내 간의대를 그 북쪽에 옮기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해는 장영실이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파손되는 사건으로 인해 파직당한 해다. 

세종이 간의대 이전을 지시한 이유는 간의대가 위치한 경회루 부근에 자신이 퇴위한 후 머물 ‘이궁’을 새로 짓기 위해서였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1443년 “임금이 아들에게 자리를 전해 주고서 아들 임금과 더불어 같은 궁에 함께 거처하는 것은 불가하다. 또 부왕(父王)이 이미 돌아가고 어머니가 계실 때 아들 임금이 어떻게 한 궁에서 모시고 있을 것이냐”라며 신하들에게 새 궁궐을 건설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세종이 자신의 머물 궁궐을 짓기 위해 공들여 만든 천체관측기구 간의대를 이전하려 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실록에 실제로 적혀 있는 사실이다.

오히려 신하들은 간의대를 굳이 이전할 이유가 없다겨 왕의 지시에 강하게 반발했다. 세종25년(1443년) 1월 14일에는 좌헌납 윤사윤이 “공사를 멈춰달라”고 요청했으며, 8일 뒤에는 사간원 우사간 신기가 “국가에 토목이 없는 날이 없어 재물의 소비와 백성의 피곤함이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 경솔하게 이미 있는 간의대를 헐어 버리고 구태여 급하지 않은 이궁을 지으려 하시니, 신하로서 잠자코 있을 수 없다”고 반대했다. 같은 해 2월 15일에는 사헌부에서 “간의대는 전하께서 하늘을 공경하시고 백성의 일에 힘쓰시는 처소로서 경홀하게 헐어 버림은 불가하다”고 상소를 올렸다. 

세종실록 98권 일부. 세종이 1442년 12월 26일 간의대 이전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98권 일부. 세종이 1442년 12월 26일 간의대 이전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자료=국사편찬위원회

◇ 세종이 간의대 이전을 강행한 또 다른 이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간의대 이전 공사를 추진해 결국 1443년 7월 간의대를 원래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떨어진 신무문(神武門, 경복궁 북문) 인근에 재설치했다. 심지어 전국적인 가뭄으로 공공 사역을 모두 중단했음에도 간의대 이전 공사만은 계속됐다.

세종이 이처럼 간의대 이전 공사를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단순히 자신이 거처할 새 궁궐을 짓기 위해서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간의대 이전을 멈춰달라는 윤사윤에게 “간의대가 경회루에 세워져 있어 중국 사신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 것이 불가하므로, 내 본래부터 옮겨 지으려 했다”고 답했다. 

왜 세종은 중국 사신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간의대를 옮기려 했을까? 이는 천체관측기구인 간의대가 궁극적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역법’을 편찬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에서 들여온 ‘대통력(大統曆)’이라는 역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관측 위치 등이 다른 만큼 오차가 심해 세종은 이를 교정하고 좀 더 현지화된 역법을 만들고자 했다.

문제는 중세 동양에서 ‘역법’은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미국의 중국학자 네이선 시빈은 그의 저서 ‘Granting the Seasons’에서 동양에서 역법은 “황제가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로서 합당한 덕성과 능력을 가지고, 우주의 질서 속에서 안정된 국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즉, 역법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변방의 ‘제후국’이 함부로 손대면 외교적 문제로 발전할 위험도 있다는 것. 

연세대학교 천문대 이은희 선임연구원 또한 '칠정산외편과 세종의 국가경영'이라는 글에서 “고대 동양에서 역법은 천명을 받은 천자, 즉 황제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권한이었으며 새로운 역법을 선포하는 것 역시 그의 권위 안에 있었다”며 “그럼에도 세종은 그러한 관례를 깨는 도전을 하였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중국의 역법이 아닌 우리의 역법을 갖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간의대가 이전된 이듬해인 1444년 세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인 ‘칠정산’을 편찬한다. 이를 고려할 때, 세종이 역법 제작의 핵심인 천체관측기구를 명나라 사신이 쉽게 볼 수 있는 경회루 근처에 놔두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자칫 천자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

후대인 선조 또한 중국과 다른 조선의 역법을 가진 것이 명나라와의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까 두려워했다. 선조실록에는 1598년 선조가 "제후국에 어찌 두 가지 역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역서를 만드는 것은 매우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라며 "중국 조정에서 알고 힐문하여 죄를 가한다면 답변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서 '칠정산' 중 내편. 자료=국사편찬위원회
우리나라 최초의 역서 '칠정산' 중 내편. 자료=국사편찬위원회

◇ ‘천문’, ‘역사 왜곡’과 ‘역사적 상상력’ 사이

영화 ‘천문’은 이처럼 중세 동양에서 세종의 자체적인 역법 제작 시도가 가진 정치적·외교적 의미에서 출발해 역사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다. 논란이 된 간의대 철거 장면은 명나라와의 관계로 인해 세종이 느끼는 압력과 갈등을 강조하기 위해 간의대 이전 공사를 다소 과장해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천문’에 나온 간의대 철거 장면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다만, 제작진이 해당 장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단순히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역사 왜곡’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과도하다. 제작진이 전혀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닐뿐더러, 해당 장면으로 세종과 장영실의 업적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도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천문’이 고증을 철저히 했다면 궁궐을 짓기 위해 애써 만든 간의대를 이전하라며 신하들과 대립하고, 가뭄에도 공사를 멈추지 않는 세종의 모습이 그려졌어야 한다. 만약 ‘천문’이 이러한 부분을 배제하고 명나라와의 외교적 관계 때문에 간의대 철거를 고민하는 세종의 모습만 그렸다면, 이는 오히려 세종을 미화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영화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과도하게 미화하거나 폄하하려는 경우, 피해·가해 관계가 명확한 사건을 묘사하면서 가해자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경우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창작자가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2017년 영화 ‘군함도’의 역사 왜곡 논란과 관련해 “우리가 꽤 괜찮게 감동받은 장면들 좋다는 영화들은 대부분 허구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심 소장은 ‘암살’, ‘밀정’ 등 대중의 호평을 받은 영화에도 다양한 ‘허구’가 활용됐다며, 도덕적·고증적 측면에서 경직된 사고로 영화를 비판하는 분위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천문’을 제작한 허진호 감독의 전작인 ‘덕혜옹주’ 또한 ‘천문’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 사극이다. 허 감독은 당시에도 대한제국 황실을 과도하게 미화했다며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3년이 지나 새 작품으로 또다시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린 허 감독이 개봉 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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